[성령의 지금]
행 24:24 ~ 27
최고의시간은성령의지금입니다.그러므로성령의지금,현재이시간무엇을해야할까요?
첫째,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들어야 합니다.
벨릭스가 바울을 불렀다고 합니다. 자기 환경을 위로해주며 자기 환경에 도장을 찍어줄 말을 듣기 원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들으러 다니지만, 욕심 때문에 십자가로 들을 마음, 즉 순종할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벨릭스의 모든 환경이 너무 찬란했기 때문입니다. 드루실라, 벨릭스 커플은 모든 것을 갖춘 부부같이 보였지만 진실을 아는 사람들의 시선과 마음 한 곳에 불안함과 죄책감,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결혼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고 거룩입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떤 것도 그 이상일 수 없습니다. 안 들렸지만 그래도 그들이 듣고 싶어 한 것만으로도 이 상황에서 바울이 전한 복음과 상황이 이천 년 동안 우리에게 정말 복음이 되고 있습니다. 내 생애 해석되지 않는 고난, 이해되지 않는 아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놓였다면 바로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듣게 하기 위함인 줄 믿습니다.
둘째, 의에 대하여 들어야 합니다.
오늘 특별히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했다고 주제만 적혀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의와 절제와 심판을 구속사 복음으로 설명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연결고리 삼은 다윗은 콩가루 집안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완전 콩가루 집안인 벨릭스 편에서 공감해주면서 이 의를 전했습니다. 잘난 척하면서 복음을 전하면 안 됩니다. 남의 여자를 빼앗은 벨릭스와 남편이 있는데 불륜 행위를 하고 음란을 행하고 결혼한 드루실라가 이 이야기를 듣고 있으며, 결국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벨릭스는 깨달아야 했고 돌이켰어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까지 들으니까 바울에게 '지금 가라' 했습니다.
셋째, 절제에 대하여 들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알아야 절제를 할 수 있습니다. 절제에 대한 가르침은 음행과 연관이 많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자리에 놓고 있는 것이 다 음행입니다. 나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밖에 모르기에 자기가 잘나서 절제를 모릅니다. 그러니 몸이 하나님의 성전인데, 여기다 음행을 들이붓고 술을 들이붓는 것입니다. 정말 영육은 일원론이 맞습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가장 마지막 열매가 절제입니다. 진리의 성령님을 의지하여 날마다 가만가만 오늘 말씀 듣고 그 말씀만큼만 자기를 절제하는 것이 최고의 비결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여야 진정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성품이 아무리 좋아도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바로 이것이 악인입니다. 지식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벨릭스는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안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도 예수의 의를 모르기 때문에 절제를 모르니까 이혼, 재혼, 삼혼 마음대로 하는 것이고 합리화를 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주 안에서의 바른 생활과 의로움이 임합니다.
넷째, 장차 오는 심판에 대해 들어야 합니다.
의를 모르니까 절제를 못 하고 마지막으로 심판이 오게 됩니다. 이 설교를 들은 벨릭스가 두려워했다는 것은 찔림이 있었다는 것이며, 심판 때문입니다. 악하게 살다가 그저 이 땅에서 사라지는 존재라면 내가 악을 행해도 겁낼 것이 없습니다. 악인에게는 그러나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벨릭스는 '지금은 가라' 입니다. 마지막 말씀을 들을 기회, 회개할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그렇다면 벨릭스와 드루실라는 왜 바울의 말을 들어도 회개에 이르지 못한 것일까요? 그렇게 돈 많은 그가 초라한 노인의 강론을 듣고 돈을 받을까 하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렇게 가두어 놓으면 동료들이 보석금을 가지고 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어디나 끝에 돈이 있습니다. 결국 우리도 돈을 좋아하니까 수많은 죄를 회개하기보다는 그것을 숨기고 이 상황에서 나를 잘되게 해주거나 위로해주는 말만 듣기 원하고, 또 나의 환경에서 돈을 내려놓으라고 하니까 예수님을 고백하기 싫습니다. 이 상황에서 죄고백과 심판을 말하면 다 두려워 떠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벨릭스든 드루실라든 그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가장 추한 죄악 가운데 있는 사람이라도 주님의 말씀이 필요하다는 구속사적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이번 주에 부모가 없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저는청주에있는그룹홈에서살고있어요.우리들교회집사님이사회복지사로일하게되시면서큐티인으로예배를드리기시작했고,큐티인은원장님이늘구입해주세요.온라인으로주일예배,수요예배,청소년예배,큐티수련회,그리고각종예배를다드리게되니까김양재목사님을만나는것이소원이되었어요.그래서저는큐티상으로우리들교회에가서목사님만나는것을받게되어7개월만에목사님을뵙는다고생각하니까너무황홀해서잠까지설쳐가며주일을기대했습니다.저는부모님이안계세요.그래서시설에서살다보니까상처가있는데선생님과친구들과매일큐티로예배를드리며속마음을이야기하다보니까아픔이치유되는것같아너무감사합니다.성령의화해설교를듣고깨달음을얻었는데큰시설에있을때원장님과선생님들에게고통을받아서용서하지못할사람들이었지만용서는하나님의특권이라고하시니용서할마음을달라고기도하고있습니다.부모님은나를버리셨지만,영적인부모인하나님과목사님감사합니다.루마니아우크라이나터키에선교집회가셨다고해서너무걱정되어서안전을위해기도했습니다.오셨다는말씀을듣고안도의한숨을쉬었습니다.한달에받는용돈이조금있는데요.목사님께뭘드릴까고민하다가목사님께서늘눈물콧물흘리시는것이기억에남아손수건을준비했습니다.'라고씌어있었습니다.저는이아이가성령의지금을순종하고잘살아내고있어서최고입니다.그런데이아이가지적장애3급입니다.진짜고난이축복입니다.
이 모든 것이 지금 적용해야 하는 일입니다. 차차 하지 하면 멀리멀리 성령님이 가실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지금 들어야 하고, 지금 영접하고, 지금 적용해야 하고, 지금 큐티해야 합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한 사람. 나를 불러주는 한 영혼에게 전도할 시간이 곧 성령의 지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