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악세서리쯤으로 여기는 목사]
남기윤 목사
창 37:23~36
이번 14회 목욕탕 목회자 세미나 강의 중에 김양재 목사님께서 '이 시대 목사님들이 구원을 액세서리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지나가는 말씀으로 하셨는데 제게는 크게 와 닿았습니다. 오늘은 목요일 큐티 본문인 창세기 37장 말씀 묵상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첫째, 구원을 액세서리로 여기던 그때 큐티 목회를 만났습니다.
23절에 나오는 채색옷은 바지가 땅에 끌릴 정도의 길이와 손가락까지 다 덮는 긴 소매의 옷입니다. 당시 유목민의 겉옷은 길이와 소매가 짧은 일 하는 옷인 데 비해, 채색 옷은 관리자나 귀족이나 왕족이 입던 옷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그를 보자마자 채색옷부터 벗기고 구덩이에 던지는데, 여기서 벗기다의 원어 파샤트는 급습하다, 침입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제가 큐티 목회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요셉이 입었던 이 채색옷을 빼앗아 입고 있는 사람이 저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저는 구원 때문이라 했지만, 사실은 목회적 성공,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목사, 숫자적 성장 추구라는 채색옷을 입고자 했고, 그것이 삶의 의미였습니다. 제가 그렇게 구원을 구덩이에 던져버리고,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아 치우고, 액세사리쯤으로 여김을 깨달았습니다. 30절 말씀에 르우벤이 요셉을 못 찾자 '나는 어디로 갈까?'라고 하는데, 구원을 액세사리쯤으로 여기는 목회의 끝은 감격도, 기쁨도, 자유함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길과 빛이 안 보일 때 만난 것이 큐티 목회였고, 여러분의 실패와 절망과 죄와 고난과 상처로 점철된 묵상 간증들이었습니다. THINK 양육을 받으면서, 일생을 저의 빈 배에 목회적 성공을 채우기 위해 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주님께서 그렇게 저의 빈 배에 올라와 주셨습니다. 성도들이 들어야 할 말씀이라고 말씀을 휘두르는 목사에서 내가 들어야 할 말씀이 들리니 죄가 보이고, 죄로 인정하기 시작하자 아팠고 원망했던 일들이 사실은 있어야 할 인생의 사건들로 해석되게 해주셨습니다.
둘째, 큐티 목회는 옳아서 합니다.
저는 2017년 7회 목회자 세미나에 처음 참여해서 이번까지 총 6번을 참여했고, THINK 양육도 총 4번 받았습니다. 그런 제게 주변에서는 '왜 큐티 목회를 하느냐?'라고 묻습니다. 저는 그 질문에 '옳아서, 이게 맞아서 한다.'고 대답합니다. 제 전공과목은 목회적인 성공에 속아서 살아온 열심 공장 공장장입니다. 교회를 개척한 후, 18개월 동안 성도가 없어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4명의 아이가 있는 가족의 생존 문제가 있었기에 목회적인 성공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를 위해 병든 열심으로 살았고, 그러다 보니 탈진과 공황장애가 목회와 삶의 결론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큐티 목회를 하면서 신앙생활이 단순하고 간결하고 확실해졌습니다. 말씀이신 하나님 앞에 사는 이 삶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삶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마가복음 1장 35절에 새벽에 예수께서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말씀이신 하나님께 묻고 들으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4절 말씀처럼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일이, 가라고 하신 방향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고 가시는 방향이 됐습니다. 아버지께서 붙잡으라고 하신 그 방법이 예수님의 방법이고 가장 좋은 인생과 가장 위대한 인생도 그날 말씀을 따라 사는 인생인 줄로 믿습니다. 그 결과는 요한복음 8장 29절 말씀처럼 우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오늘 나에게 하신 그 말씀으로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일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그분의 말씀 앞에 서서 그분의 말씀을 붙잡을 때 그 은혜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셋째, 가만가만 훈련으로 은혜를 누립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21일 동안 새벽 큐티 학교를 진행하며 일대일로 짝꿍을 지어 매일 큐티 나눔하고 단톡방에 올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짝꿍을 바꾸는 형식으로 큐티를 정착시켰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가만가만 오늘 말씀이 뭐라고 그러셨지 하면서 그날의 큐티 말씀을 생각하고, 삶의 사건들을 해석하고 반응을 선택하고 결정하는데, 우리 교회의 한 청년이 이것을 가만가만 훈련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작년 여름에 파송한 미얀마 선교사님 가정으로부터 급한 카톡이 왔습니다. 코로나와 내전 소문에 긴급한 상황이라 판단해 공항에 가까운 곳에 와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게 한국에 돌아올지 여부를 묻는 것이란 생각이 들자 가만가만 오늘 말씀이 뭐였지?를 생각했습니다. 당시 큐티 본문은 행14:1-18절 이런저런 반대를 일상으로 여기게 하시는 성령의 권능이었습니다. 내 감정과 현실과 상황이 주인이 될 때 사건 앞에서 쉽게 포기하지만, 말씀과 성령님이 주인이 되면, 이런저런 반대를 일상으로 여기고 머물게 되는 성령의 권능이 임한다는 그날의 큐티 말씀을 선교사님께 보냈습니다. 선교사님은 살아계신 하나님, 말씀이신 하나님이 함께하실 것을 믿고 순종한다는 신앙의 고백과 함께 선교지로 돌아가셨다는 답장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렇게 가만가만 훈련으로 큰 은혜를 누리며 갑니다.
저는 현재 4명의 자녀의 아버지인데, 전도사로 사역하던 시절 당시 4살인 아들을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먼저 잃었습니다. 그 후 사역을 내려놓고 열방 대학의 DTS 훈련 중 하나님을 용서할 수 없는 제 마음을 직면하고 근처 숲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제게 힘드냐?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부드럽고 따듯한 음성에 화가 나서 아들 잃은 제 마음을 아시냐고 덤볐습니다. 그런 제게 하나님께서는 기윤아, 그래도 너는 네 손으로 아들을 죽이지 않았잖니? 내 손으로 내 아들 죽인 그 마음은 어떻겠니?라는 마음을 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살릴 수 있었지만, 저와 여러분의 구원 때문에 아들이 죽어가는 걸 그대로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았습니다. 아들을 잃은 저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되어 그 숲에서 하나님과 함께 한참 동안 울었습니다. 이렇게 귀한 구원을 구덩이에 던져버리고 목사인 제가 온갖 채색옷에만 관심을 두고 온갖 목회적인 성공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 살아온 것을 회개합니다. 더 이상 부자, 성공, 안정감이라 하는 채색옷을 쫓는 인생이 아니라, 나의 모든 고난과 상처가 약재료가 돼서 모든 이들에게 이 구원을 전하고 나눌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