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들고 다녀라, 읽어라]
고재국 목사
마 25:1~13
저는 용인에 있는 양지라는 지역에서 작은 시골 교회를 담임하고 있습니다. 죄패는 제가 제일 잘난 줄 아는 것인데, 2019년 5월 목욕탕 세미나에 아무 생각 없이 왔다가 목회의 빛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큐티를 통해 코로나 기간 동안 매일 큐티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었고, 교회가 안정을 찾고 부흥하게 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사라, 들고 다녀라, 그리고 읽어라.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큐티인을 사고, 들고 다니고, 읽어라 입니다. 큐티와 열 처녀의 비유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열 처녀의 비유는 매우 단순하지만, 결말은 매우 엄중합니다. 열 처녀는 모두 신랑을 맞으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열 처녀는 신랑 신부의 들러리들을 말하며, 들러리로 쓰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처녀여야만 했습니다. 열 명의 들러리 중 다섯 명은 등과 기름을 준비했고 다섯 명은 등만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신랑이 오니 두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첫째,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던 미련한 들러리들의 등이 꺼져갑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기름을 나누어 달라고 요청하지만, 지혜로운 들러리 들은 냉정하게 거절합니다. 그러나 미련한 들러리들은 포기하지 않고 나가서 원하는 양의 기름을 구해왔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당시 기름을 구하는 것은 매우 쉬웠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기름을 준비해 왔지만, 혼인 잔칫집의 문이 닫혀버렸습니다. 기름을 구해 온 이들의 수고와 헌신이 있었지만, 그 수고와 헌신을 주인이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아무리 신랑이 더디 온다고 해도 신랑 신부를 맞으러 나간 들러리들이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없었다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왜냐하면 들러리로 부름을 받은 것은 바로 신랑 신부의 결혼식에 등을 밝히기 위함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길을 밝히는 들러리로 부름을 받으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언제 올지 모르는데 과연 내게 기름이 충분하게 있는지 그것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진리의 등, 말씀의 등을 밝히고 우리 가정과 내가 섬기고 근무하는 직장에서 등불을 밝힐 때 기쁨이 충만해질 줄 믿습니다.
둘째, 기름이 무엇일까요?
열 명의 들러리를 보면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습니다. 공통점은 모두 amp#9312 처녀 들러리 amp#9313 신랑을 기다렸다 amp#9314 졸고 잤다 amp#9315 깨어났다 amp#9316 등을 준비했다. 이렇게 다섯 가지입니다. 다만, 차이점은 한편은 기름을 넉넉히 준비하였고, 다른 한편은 넉넉하게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한 가지 차이점 때문에 혼인 잔치에 들어가기도 하고 못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즉, 공통점이 백 가지, 천 가지 있어도 기름 한 가지 없으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기름은 바로 믿음을 뜻합니다. 현상이 본질을 대신할 수 없듯이 다른 것이 다 있어도, 헌신과 대단한 수고, 업적이 있어도 믿음이 없이는 천국에 갈 수 없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청소년 사역을 객기와 호기로 십 년 정도 했습니다. 얼마나 열정이 넘치는 목사였던지 스스로 제일 잘난 줄 알았고, 원래 하려고 하려던 사역은 아니었지만, 하다 보니 청소년 선교단체가 구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운영하는 것이 쉽지 않아 재정이 마이너스가 되었고 사모가 직장생활을 해도 감당이 안 되어서 항상 어려웠습니다. 저는 믿음과 기도로 성령에 감동되어 열심히 사역을 하는데 왜 이렇게 어렵기만 할까 낙심이 되어 있던 어느 날, 청소년 선교사역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큐티를 하게 되면서 그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캠프를 하면 청년들이 회개도 하고 눈물도 흘리고 방언이 터지고 사역의 열매도 있었고 청년들의 수고와 헌신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속았습니다. 그런 현상이 없었으면 '아, 내가 믿음이 없구나, 뭐가 잘못됐구나' 알았을 텐데 현상이 있었기에 몰랐습니다. 저는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믿음이 없이 나 자신을 위해 사역을 했다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마태복음 7:22-23을 보면,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주님의 일, 하나님의 일을 했지만 믿음이 없으면 주님께서 인정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십니다. 주님을 위해 일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 일했기 때문이며, 자기 체면과 인정받고 박수받고 높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힘으로 할 수가 없으니 예수의 권능과 예수의 이름을 끌고 와서 예수그리스도를 수단으로 삼아 버린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미련한 들러리도 수고와 헌신했고 형식도 다 갖추고 신랑을 기다렸지만 믿음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셋째, 믿음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언제 준비해야 할까요?
믿음은 선물로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대로 주시니 충분히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시는 분은 주님이시며, 나는 받을 준비를 해야 하고, 주님이 선물로 주시려는 그 믿음을 얻어 믿음의 분량을 채워가야 합니다. 또한 말씀을 배우고, 듣고, 묵상하고, 날마다 큐티하며 그 말씀으로 나를 다림줄 하지 않으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분량을 소유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언제 준비해야 할까요? 바로 지금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봉사하지 말라. 헌신하지 말라. 기도하지 말라. 예배드리지 말아라. 큐티하지 말아라.'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중에 해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절박하고 급박한 문제 앞에서 말씀을 더 앞에 두십니까? 아니면 그 말씀보다 문제를 더 앞에 두십니까?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이 우선되지 않으면 내일도 말씀은 우선되지 않습니다. 나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고, 내게 닥친 급박한 문제부터 해결하고 큐티하겠다고 스스로 속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반드시 그날이 오는데 그날엔 미련한 다섯 들러리들처럼 큰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아무리 시급하고 절박한 문제가 있다고 할지라도 날마다 말씀 앞에 나를 세우며 말씀의 다림줄로 나의 믿음의 분량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분량이 되었는가 체크하시고, 부족한 부분은 내일이 아닌 오늘 채워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게 할 때 반드시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서 혼인 잔치 그 집 문 앞에 섰을 때, 우리 하나님께서 맞아 주실 때 잘했다 칭찬받으며 영광의 자리로 들어가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