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고백]
행 24:10~20
여러분은 살면서 어떤 고백이 가장 감동스러우셨나요?저는 남편에게 사랑의 고백은 못 받았어도 가장 좋은 성령의 고백을 받아냈습니다.오늘은 성령의 고백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사과로 시작하는 고백입니다.
더둘로의 고발에 대해 바울은기꺼이 변명을 합니다. 기꺼이는 신약에 한 번밖에 안 나온 단어로 굉장히 기쁘게,기분 좋게 변명했다는 뜻입니다.바울의 목적은 언제나 복음을 전하는 것이기에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어 너무 기뻐하는 것입니다. 변명하다의 원어는아폴로 게오마이로 여기서 영어apology가 파생되었다고 합니다. 아폴로 게오마이는 말로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즉,감정을 표출하거나 폭력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인 논리로 자신을 지키는 것을 말하는데,그것은 논리적으로 막 치열하게 다투면서 이기는 게 아니라 바로apology,사과하는 태도로 자기를 지키는 것입니다.고발당했을 때 기꺼이 변명하는 것이 무엇인지 예를 들자면, '당신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오해에요.오해하게 해서 너무 죄송해요.그런데 제가 의도한 것은 그게 아니었거든요.'바로 이렇게 사과하는 태도가 기꺼이 복음을 증언하는 것입니다.그러니까 어떤 무서운 고발을 당해도 내가 죄인으로 사과의 마음을 가지고 고백을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고백입니다.자기 부인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만이 이렇게 성령의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바울은 가이사랴 벨릭스 총독의 재판장에서 절대로 변론하지 않으며 상대를 공격하지 않고 사실만 설명합니다.소요를 일으켰다고 한 것에 대해'예루살렘에 온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유대인의 법인 결례를 일주일간 지켰는데,이를 본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다.성전에서 어떤 소란도 일으키지 않았고,그럴만한 시간도 없었다.'고 상대가 잘 이해하도록 설명합니다.있는 사실 그대로,사과하는 태도로 변명하여아폴로 게오마이로 자신을 지킨 것입니다.
둘째,죄의 자백이고 공동체 고백입니다.
이제 바울은 자신을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로 고발한 것에 대해 팩트 체크에 들어가는데,그 전에 중요한 고백을 합니다.그것은 바로 바울이 그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믿는다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그래서 자신이 그 도를 따라 유대인들의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서와 선지서에 기록된 구약을 다 믿는 신실한 유대인이라는 것을 주장합니다.바울은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 있었고,그 소망은 의인과 악인의 부활에 대한 믿음이었기에 담대하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바울은 의인의 부활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천국의 축복을 누리지만,악인의 부활은 평생 죄에 매여 사망을 월급으로 받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그런데 부활 신앙에 관심이 없으니 아무도 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본문14절에내가 당신들에게 고백한다에서고백은호몰로게오인데호모는 하나,동일함이고, 로게오는 말하다는 뜻입니다.그러니까 같은 말을 하는데 혼자 하는 말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함께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말합니다.성령의 고백은 내가 하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가 하시는데,자기 생명을 접붙여 몸으로 연결된 지체를 통해,즉 목장과 교회를 통해 내 속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호몰로게오라는 것입니다. 고백에는 또 다른 뜻인동의하다,시인하다가 있습니다.성령의 고백은 자백과 같습니다.우리의 자백은 성령의 고백이 되어서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십니다.그러니까 우리가 목장에서 나의 죄를 나누는 것 자체가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바울은 박해 가운데 계속된 고백을 통해 기독교를 알립니다.이렇게 오늘날까지 복음이 전해졌으니 핍박과 박해는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전할 수 있는 비결 중 비결입니다.
셋째,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고백입니다.
더둘로의 마지막 고발은성전을 더럽히려 했다는 것입니다.이에 대해 바울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쓴다고 했는데, 힘쓴다는 말은 운동선수나 군인이 열심히 훈련하는 것을 말합니다.매일 매 순간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도록,선한 양심에 찔리는 일이 없도록,열심히 연습하고 훈련한다는 것입니다.주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대로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적용을 한다는 말입니다.그러면서 자기 민족은 나를 죽이려고 작당했지만,도리어 어려움에 처한 민족을 돕기 위해 구제헌금까지 마련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대비시킵니다.이것을 여기서 밝히는 것은,이것이 바로 양심에 거리낌이 없도록 힘쓴 일이기 때문입니다.이게 왜 중요한가 하면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항상 돈이 있기 때문입니다.구제 헌금을 그렇게 힘들게 가져왔는데도 유대인의 요청으로 결례를 행했으니,이런 사랑으로 소요를 일으킬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그리고 아시아에서 온 어떤 유대인들이 나를 그렇게 괴롭혔는데,진짜 나를 성전에서 봤으면 증인으로 나오라고 그래라,그런데 지금 안 나오지 않았느냐 합니다. 18절에서 내가 성전에서 결례 드리는 것을 다들 보았다고 했는데,여기서보았다는휴리스코로,주의 깊게 보지 않아도 일주일 동안 성전만 갔다 오면 바울을 다 볼 수 있었다,한 번만 보아도 다 알았다고 합니다.이에 대해 더둘로나 대제사장은 한마디 변명도 못 합니다.왜냐하면 증거가 없기 때문입니다.바울의 변명은 냉철하고 논리적이며 사과를 하면서 온유했기 때문에,이천 년 동안 승자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공동체 고백으로는 부부목장 목자님의 나눔을 소개하겠습니다.이 목자님은 화가 많고 돈 좋아하는 아내가 너무 싫어진다고 합니다.부부 목장 예배를 연달아3주 본인 집에서 드리자고 아내에게 상의했더니,아내가 힘들 것 같다고 했습니다.그래서 목자님이 한 주는 부목자님 댁에서 드리자고 부탁하시며,저녁은 각자 먹고 다과만 준비하기로 했다고 합니다.이 얘기를 들은 아내는 자신과 상의하지 않았다고 화를 내며,나는 밥을 하고 부목자는 왜 밥을 안 하냐며 아내 힘든 것은 생각을 안 하느냐며 싸웠다고 합니다.목자님은 그 후 말씀 묵상을 통해 아내를 정죄하고 비판한 죄인임을 깨닫고 아내에게 일곱 번 엎드리는 적용으로 일곱 번 칭찬하시겠다고 합니다.목장에서 이렇게 솔직한 나눔을 하며 내 죄를 보고 고백하며 거리낌 없이 가는 것이 성도의 황홀한 인생인 줄 믿습니다.그래서 사랑의 고백을 받지 못해도 사명 감당하며 성령의 고백을 하며 갈 때,최고의 고백을 받아내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