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고발]
행 24:1~9
법적인 고발이 아니더라도 지적이나 공격을 받거나, 자신을 스스로 비난하는 내면의 소리도 고발이라 할 수 있습니다. 로마 총독 벨릭스에게 전달된 바울이라는 성령의 편지가 온 세상에 펼쳐지기 위해 고발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 고발에 성령이 임하시니 최고의 은혜로 바뀝니다. 오늘은 서로서로 정죄하는 모든 고발이 성령의 고발로 바뀌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성령의 고발은 세상으로 내려가는 고발이 아닙니다.
바울을 죽이고자 하는 유대인의 박해가 계속될수록 바울의 변론도 이어집니다. 바울의 변론은 고난 가운데 있는 초대교회에 힘을 주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성령의 편지가 되기 위해 수많은 반대를 직면하며 수 없는 변론을 해야 합니다. 아나니아 대제사장은 자기 수하의 장로들과 헬라어를 잘하는 유대인 변호사 더둘로와 팀을 이루어 총독에게 바울을 고발합니다. 그런데 대제사장과 그 일행들이 함께 내려왔다라고 합니다. 영적이 아닌 세상으로 흘러 내려갔다, 세상적인 방법으로 했다라는 뜻입니다. 또한, 주어가 여럿인데 동사는 단수입니다. 이는 모든 획책의 주범인 대제사장만 주어로 지칭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은 원래 예배를 준비하며 성전에 있어야 하지만, 바울을 죽이겠다는 증오심으로 닷새 길을 내려와서 이방인 법정에 들어갔습니다. 힘과 권세, 변호사를 고용할 능력이 있으니 예배의 자리를 박차고 내려갔습니다. 그래서 권세가 없고 누군가 고발을 해도 박차고 내려갈 환경이 안 되는 것이 축복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자리를 지키고 목숨 걸고 가정과 예배, 목장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결국은 누군가를 회개케 하는 성령의 고발이 됩니다. 고발의 단어 엠파니조는 눈에 띄도록 드러내다라는 뜻입니다. 또한 재판장 앞에 우리를 위하여 예수께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다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즉 바울을 고발한 사건이 도리어 바울을 알리고 자랑하게 되었고 바울을 변호하기 위해 예수께서 나타나시는 성령의 고발로 바뀝니다. 그래서 세상 방법으로 내려가지 않고 가만히 내 자리를 잘 지키면 주께서 변호하시며 성령의 편지인 나를 알리십니다.
둘째, 말에 걸려 넘어지면 세상의 고발로 끝납니다.
아나니아가 대표하는 유대인 전체가 원고이고 이미 뇌물을 챙긴 벨릭스가 재판장인, 공정할 수 없는 재판에 바울이 피고로 섭니다. 원고 측 변호사 더둘로는 고상하고 품격있는 단어로 돈밖에 모르는 벨릭스를 칭송하고 바울에게는 전염병이라는 죄 패를 붙여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로 소요를 일으켰고 성전을 더럽게 하려 했다고 고발합니다. 더둘로의 유창한 연설로 바울은 전염병 같은 자로 각인됐고 리더 그룹의 결정에 유대인들이 다 동의하며 증인을 자처합니다. 바울이 이방인과 어울려 유대인의 정체성을 훼손한다고 비난한 그들이 자기 유익과 이권을 위해 이방인 총독에게 동족 바울을 고발합니다. 우리를 향한 고발도 이렇게 공격하는 말을 동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잘 참다가도 말 한마디, 단어 하나에 걸려 분을 폭발하고 같이 고발하면 우리가 당하는 고발은 세상의 고발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증인으로 서야 내가 받는 고발이 성령의 고발로 바뀝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또 교회에서 하나님이 전하시려는 뜻과 의도가 무엇인가 생각하며 넘어가면 좋겠습니다.
셋째, 천하에 흩어진 백성들에게 알리는 고발입니다.
5절에 바울의 죄를 고발할 때 우리가 보니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보니는 휴레스코로 대충 봐도 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을 대충 봐도 전염병 같은 자임을 알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바울이 이 말을 듣고 어떻게 넘어갔을까요? 바울이 세계 곳곳에 복음을 전하니 제자들이 생기고 교회가 세워져 성도들이 점점 늘어났으니 전염병 같은 자가 맞다.고 인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는 발상의 전환입니다. 모든 사건을 구원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넘어갈 수 있습니다. 2절과 8절의 고발은 광장 아고라에서 공개적으로 죄를 묻고 그 죄를 지목해서 널리 알린다는 뜻의 카테고리인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광장은 말씀 앞에 치열하게 나를 드러내고 고백하는 목장과 같습니다. 목장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과 말씀 앞에 나의 상처와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나의 죄를 나눌 때 이 모든 나눔을 널리 알리는 것이 바로 성령의 고발입니다. QTIN이 영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전 세계에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의 나눔이 읽혀 복음을 전염시키는 첫 번째 사람으로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더둘로의 고발이 오히려 바울이라는 편지를 열어 널리 알리게 되고 점점 복음의 지경이 넓혀졌듯, 가만히 자기 자리를 잘 지키고 있으면 수많은 요동과 고발이 성령의 고발이 되어 우리 안의 편지가 열리고 내 속에 있는 예수가 전해질 것입니다.
공동체 나눔으로 감동적인 편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직장생활을 했지만 믿었던 상사의 이해할 수 없는 무시와 프로젝트에서 저만 제외되는 힘든 일이 찾아왔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급성 우울과 공황장애 증상까지 와서 용기 내어 정신과에 갔습니다. 예약하지 않고 방문하여 당일 진료가 어려울 수 있다고 하니 난감해할 때, 한 남자분이 자기 순서를 양보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고, 상담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 나누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분은 목사님이셨고 자신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시며 오히려 저를 위로해 주셨고, 우리들교회에 오셔서 말씀도 들어보고 소그룹 모임에 들어가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만남이 기억에 남아 예배에 참석했고, 조금 낯설었지만, 충격의 연속이었습니다. 저도 벨릭스처럼 돈과 명예의 노예로 살면서 열등감을 가지고 누군가에게는 비굴하게, 때론 권위적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들에게 편지를 써주어야 한다는 것이 저에게는 참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읽어주신 편지 사연처럼 이름도 알지 못하는 그 목사님을 정신과에서 만나 우리들교회로 오게 된 것도 제가 편지를 받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과 위대한 결혼을 한 우리는 어떤 형태로도 자타의 고발에 넘어지면 안 됩니다.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좋은 부모, 나쁜 부모 없고 예수 믿게 해준 부모가 최고의 부모입니다. 우리의 모든 사건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는 발상의 전환이 되길 기도하며 부모님과 자녀의 고발에 사과하는 적용을 하는 성령의 고발이 되어 온 천하에 복음이 전해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