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전송]
행 21:1~6
오늘 본문에 나오는전송하다는잔치를 베풀어 작별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성령의 작정을 하고 성령의 감독자들에게 성령의 부탁을 하며 전송을 하면,잘 떠나고 잘 보내는 성령의 전송이 될 것 같습니다.오늘은 성령의 전송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목적지가 확실할 때 성령의 전송이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맡기신 사명의 길을 완주하겠다는 목적이 있기에 에베소 성도들과 사랑하지만 떠나는 고통스러운 작별을 했습니다.그리고 아주 평범한 항로를 따라 고스와 로도,바다라를 지났습니다.세계적인 전도자 바울이 이 지역들을 지나가지만 모든 것을 갖춘 이곳은 예수가 필요 없습니다.바울 역시 이 유명한 섬들을 그냥 지나쳤습니다.그런데도 이 지명들을 자세히 기록한 것은 복음을 들은 우리에게 이곳을 위해 기도하라는 의미로 생각됩니다.마찬가지로 제 설교에 등장한 모든 분도 가고 오는 세대의 기도 리스트에 올라간 줄 믿습니다.오랜 시간 배를 타며 지쳤을 노인 바울은 다시650km의 지중해를 횡단하는 베니게 행 선박을 타고 직행하는 강행군을 합니다.주님은 바울의 길을 초월적인 능력으로 옮겨주지 않으시고 배의 항로를 찾게 하시고,항로대로 가게 하시며,가서는 또 기다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시간,카이로스를 걸어가게 하십니다.그래서 십자가는 초월적인 것이 아니라 평범 그 자체입니다.내 생활에서 질서를 잘 지키고 생활하는 것이 십자가입니다.목적이 확실한 사람은 평범한 일상을 살더라도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 있습니다.평범한 생활 속에서 순종을 잘하는 바울에게 하나님은 미리 베니게의 해상교통을 발달하게 하셨고,타고 갈 배가 있게 하시는 일반 은총의 예비된 기적을 보여주십니다.이것이 평범한 우리가 따라가야 할 모범이며 이런 것을 보여주고 가는 것이 이 땅에서 성령의 전송을 받을 자격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사랑하는 사람들의 반대를 분별해야 합니다.
3절에'구부로를 바라보고'에서 '바라보고'는 없던 것이 나타났다 다시 사라지는 듯한 모습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이 단어 하나에 숨결을 넣어THINK하며 구브로를 바라보았던 바울의 마음을 생각해보았습니다.자신을 살인자라고 모두 기피하고 있을 때 바나바가 나타나 바울을 추천하고 선교여행도 함께 했던 추억과 마가의 재합류 문제로 다투고 고향 구브로로 사라진 바나바를 생각하며 바울은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습니다.그러나 추억 때문에 항로를 변경하거나 여러분의 일상을 깨뜨리면 안 됩니다.바울은 드디어 우상숭배와 사치,향락과 부패의 도시 두로에 도착하여 이곳에서 칠 일을 머무릅니다.자신이 잔멸했던 제자들과 그의 자녀들이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과 가까운 두로에 많이 흩어져 있었기에 가해자로서 피해자인 그들을 찾고 또 찾으며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그러자 수십 년 동안 해결되지 못했던 감정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모든 관계가 회복되고 피해자의 축복과 눈물까지도 허락하시며 성령의 전송으로 나가게 하십니다.그들은 바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울의 예루살렘 행을 지속해서 만류합니다.그러나 바울은 인간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사랑의 권면을 성령의 뜻과 분별했습니다.결국 구속사로 분별해야 잘 떠날 수 있고 그렇게 떠났기에 영원토록 성령의 전송이 되었습니다.그것은 자신에게 사명을 주시고 감당케 하시는 성령의 인도함이었습니다.
셋째,사람은 끝이 좋아야 합니다.
5절에'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라고 했는데,아내와 자녀들까지 함께 나와 전송하며 바울을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한 것입니다.참된 용서와 회개가 이루어진 현장입니다.그리고 그들은 바울과 작별한 후 집으로 돌아갑니다.그런데 사도행전에서 처음으로 다음 세대 이야기가 나옵니다.화해가 이루어지니 다음 세대의 예배가 회복된 것입니다.그래서 자녀의 예배 회복과 최고의 양육은 부모가 미움과 상처,증오를 멈추고 누구에게나 편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6절에는'그들이 집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우리들교회의 표어가집으로인데,두로는 문란한 지역이기 때문에집으로처럼 가정을 지키는 것이 최고의 사역임을 말해줍니다.그들은 바울 사도를 보며 우리도 생명을 내놓고 부부,부모,자녀의 적용을 하자는 감동의 나눔을 했을 것입니다.그래서 헤어질 때 반응은 그 사람에 대한 진정한 평가이며,항상 처음보다 끝이 좋아야 합니다.배에 오른'우리'는 사도 바울과 누가 일행입니다.그런데 두로에서는 바울이 제자를 부르지도 않았고 제자로 자원함도 없었습니다.근본이 부자인 두로는여기까지인 것이 있나 봅니다.언제나 선교하고 전도하며 늘 눈물로 화해 했지만,배에 오르는 우리가 있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이 있습니다.대부분은 가정을 지켜야 하지만 배에 오르는 소수의 우리도 있어야 합니다.이렇게 여러 과정을 거치며 두로에서 잔치하며 작별하는 성령의 전송을 드디어 하게 되었습니다.
이혼과 재결합을 통해 결국은 성령의 전송이 되어 온 가족이 다시 한곳으로 모이게 되었다는 목자님의 나눔입니다.저는 낮은 자존감,자기연민,우울증,무력증으로 간신히 하루를 살아내던 아내를 무시하고 회피하다 이혼으로 온 가족을 흩어지게 했습니다.그런데 예수님을 영접하고 말씀과 목장의 권면에 순종한 아내가 재결합을 적용했습니다.저는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이기고 이기는 욕망의 전투를 치러가면서도 딸의 전학과 가출,아들의 왕따와ADHD는아내가 알아서 하겠지 하며 회피했습니다.그럼에도 아내의 믿음과 기도,아들을 양육해주시는 공동체,딸의 상처와 마음의 벽을 대처하도록 도와준 목장의 지혜와 권면으로 가정은 점차 회복되어 갔습니다.아내와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었던 목장에서 편하게 이야기 하며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주일에 유일하게 밝은 표정으로 교회에 가는 아들의 모습,좋든 싫든 교회에 가는 딸의 모습,무엇보다 아내의 생기 넘치는 모습과 가족을 섬기는 태도에 결국 저도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저의 고난과 죄와 회개를 약재료를 나누고 상처와 수치로 얼룩진 저의 삶을 담대히 드러내어 위로 받고 위로해주는 공동체에 영원히 잘 묶여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성령의 전송은 목적지가 확실해야 잘 떠나고 보냅니다.그래서 평범한 일상을 잘 살아야 합니다.사랑하는 사람들의 반대를 분별해야 하며,가해자,피해자가 화해해야 합니다.그리고 사람은 끝이 좋아야 하는데 부모가 먼저 화해할 때 우리의 다음 세대인 자녀가 구원될 줄 믿습니다. 2021년을 보내고 목장이 바뀌며 우리의 보내고 떠남이 성령의 전송이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