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부탁]
행 20:32~38
바울은 교회를 성령께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령의 부탁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어디에 누구에게 부탁하시나요? 오늘 본문은 유명하고 능력 있는 사람, 믿을 만한 후임자에게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한다고 합니다. 즉 내가 가장 사랑하는 대상을 주와 그 은혜의 말씀 옆에 놓는 것이 부탁한다는 의미입니다. 부탁의 헬라어 원어 '파라티테미'는 곁에 놓아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마지막에 말씀하신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4:26)에서 부탁하다가 바로 아버지의 손에 나를 놓아둔다, 성부 하나님 옆에 나를 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 자녀, 가족을 말씀 옆에 놓아두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성령의 부탁입니다. 도무지 말씀과 상관없이 살았던 내 인생이 말씀 옆에 놓였다면, 이제 내게 맡겨준 한 사람을 말씀 옆에 두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감독자가 해야 할 일이고 성령의 부탁입니다. 예수님도 아버지 손에 먼저 부탁하시며 말씀 옆에 놓아두셨으니, 우리도 남 탓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부터 말씀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둘째,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와 성도들을 주와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며 설교를 끝맺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유언을 통해 장로들에게 3년 동안 바울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삶의 이력을 상기시켜줍니다. 당시, 바울이 간교한 속임수로 성도를 착취했다는 거짓 소문이 돌았는데, 좁은 문, 좁은 길 끝에 돈이 있다는 것을 말하며 설교의 마지막을 돈으로 맺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무너뜨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돈이기 때문입니다. 돈은 하나님 자리에 있기에 돈이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착각이 들게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내 쓸 것을 충당하며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도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너희도 나와 같이하라는 것이 바울 설교의 마지막입니다. 복이 있다의 복은 헬라어로 마카리오스의 복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누리는 복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과 누리는 복입니다. 어떤 존재와 환경이 나의 기쁨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과의 연합과 관계에서 오는 기쁨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물질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좋은 부분과 실패, 연약함을 나누어 주는 인생이 복된 인생입니다.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같은 아픔을 나누어 줄 때 우리는 함께 평안을 누립니다. 마카리오스, 즉 삼위일체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는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부탁은 결국 기도로 끝을 맺어야 합니다. 바울의 고별설교도 기도로 마무리를 맺습니다. 이것은 교회를 성령께 부탁한다는 고백이며 기도로 마지막 인생의 마침표를 찍어 인생 전체를 성령께 부탁드린다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바울은 이제 다시는 에베소에 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자신이 3년 동안 성령의 제자 양육으로 양육한 그들을 이제는 직접 도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정말 질 수 없는 십자가를 자꾸 지라고 하니 도망가고 싶은 것이 우리 마음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말씀을 통해 도망갈 생각 하지 말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물론 무릎을 꿇고 기도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습니다. 성령에 매여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 예루살렘으로 가야 하는 바울의 상황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상황을 바꾸기 위함이 아닌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고 기도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응답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내가 원하는 것이 응답이 아니고,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는 게 응답입니다. 37절에 기도가 끝나고 다 크게 우는데, 이것은 구원을 위한 울음이고 영혼을 위한 울음이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성령께 부탁하듯 바울의 인생을 성령께 부탁드린다는 장로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 표현이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크게 울고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안타까운 작별을 했습니다. 이들이 무릎을 꿇고 함께 드린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때로부터 30년 후, 에베소 교회는 여전히 아시아 중심 교회로 역할을 하고 있었고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 중 하나로 자리매김을 했습니다. 무릎을 꿇리는 사건이 오는 것은 축복입니다. 우리는 저절로 무릎을 꿇을 수 없는 교만한 존재이기에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무릎을 꿇게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구원의 길을 벗어나지 않고 끝까지 간절함을 가지고 성령에 매여 사명을 감당하는 인생을 살 수 있게 해주시고, 간절한 기도의 영성을 허락해 주십니다. 이것이 참으로 감사한 것입니다.
지난주 급한 기도 제목이 있었습니다. 한 목자님의 4살 아들의 손가락 3개가 에스컬레이터에서 끼어 절단되었는데, 열이 38도가 넘어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구급차 안에서 2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 한 안전요원이 에스컬레이터를 다 뜯어 마지막 3번째 잘린 손가락 하나를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빨리 응급실에 가는 것이 기도 응답인데 하나님은 2시간 대기하게 하셔서 3번째 손가락을 찾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무엇이 응답인지 모르니 무조건 기도를 해야 합니다. 목자님은 올해 식당을 개업했지만 힘들어 빚지게 되고, 아버지께서 그 와중에 돌아가시고, 아내가 유산을 하고, 고소 사건에 얽히고, 거기에 지금 아들 사건까지 왜 이렇게 힘든 일이 계속 반복해서 일어나는가 묵상을 하는 가운데 최종적으로 본인이 다른 길을 계속 가고 있었다는 것이 깨달아졌다고 합니다. 자식을 치니 그렇게 고민하며 붙들고 내려놓지 못하던 것들이 전부 아무것도 아닌 게 되더라고 고백하셨습니다. 지난 4년 동안 11가지 사업을 했는데 하나도 성공을 못 하고 모두 실패해 빚더미에 앉게 된 이유가 세상에 물질을 쌓아두려 했던 허황된 마음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석이 되어야 해결이 됩니다. 무언가 그렇게 안 되는 것이 있다면, 욕심과 허황된 것이 있다는 것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의 목적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이니 날마다 되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날마다 말씀을 내 옆에 놓으시고 삼위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무릎을 꿇어 기도로 인생을 마무리 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