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인내와 믿음]
이성은 목사
계 13:1~10
우리가 적그리스도를 잘 분별하고, 성도의 인내와 믿음이 온전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오늘 같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용의 권세가 아닌 하나님의 권세를 받아야 합니다.
계시록에서 표현되는 바다는 깊은 구덩이의 무저갱과 같은 의미로 쓰입니다. 이런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은 사탄을 말하는데 머리가 일곱 개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아주 똑똑하고 영특한 짐승인 것 같습니다. 또 뿔이 열 개라고 하니 강력한 힘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세상을 이 뿔로 들이받으면서 이기고 이겨서 돈, 출세, 명예 등 열 개의 왕관을 다 모아서 결국 자신이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성모독입니다. 사탄이 준 권세는 자신의 권세를 내 능력으로 얻었다고 생각하고, 그 권세로 죽이고 파괴하는 일을 하며 계속 쌓아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반면에 성부 하나님의 권세를 받은 성자 예수님의 권세는 남을 죽이는 권세가 아니라 내가 죽는 권세이며, 살리고 회복시키는 권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에게 주어진 권세가 용이 준 것인지 하나님이 준 것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수고하고 고생해서 이 자리까지 왔는데... 하는 이런 생색이 자꾸 올라오면 내가 여전히 짐승의 권세에 사로잡혀 살고 있구나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권세가 하나님이 주신 권세가 되도록 항상 말씀으로 해석하고 내 죄를 찾고 죽어지는 적용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큰 권세를 주시는 이유는 이 권세로 영혼을 살리고 복음을 전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내가 죽어지는 권세로 살아가면 성도의 인내와 믿음이 온전히 지켜지게 됩니다. 하지만 성도의 인내와 믿음은 내가 작정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리스도의 권세로 날마다 죽어지는 십자가의 권세를 가져야만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둘째, 짝퉁 그리스도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절대적인 힘을 자랑하던 짐승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되었지만, 자세히 보면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사탄의 쇼이며 속임수입니다. 사탄은 부활의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참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이 땅의 모든 나라, 사회와 문화는 죽음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부활, 성공, 기적에만 열광합니다. 하지만 참된 그리스도를 따르며 하늘에 속한 자는 잘 죽어지는 것에 집중합니다. 죽음이 먼저이고 부활이 나중입니다. 우리는 적그리스도에게 속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적그리스도는 우리가 죄를 깨달으면 진짜 그리스도를 찾아갈까 봐 승리와 해결, 성공, 이런 마취제로 인간의 영을 마비시켜 놓습니다. 짐승은 결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죄를 깨닫기 전에 뿔과 왕관으로 시선을 빼앗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힘과 이적으로 싸우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싸우십니다. 예수님은 문제를 해결해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 차이를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다면 우리는 짝퉁 그리스도에게 현혹되지 않고 성도의 인내와 믿음을 끝까지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셋째,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짐승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특징은 과장과 비방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짐승의 권세는 이 땅에서 잠시는 이기고 다스리는 권세를 누릴지 몰라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잠시입니다. 그리고 짐승이 그리스도를 다 흉내 낼 수 있어도 생명의 문제, 구원의 문제만큼은 절대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생명책의 소유는 어린양의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명책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서는 죽임 당한 어린양과 함께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육체로 채워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정하시고 예정하신 대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이 제아무리 큰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시는 것이기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짐승의 권세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권세로 살기로 작정하면 핍박은 마땅히 일어납니다. 우리는 사탄의 참소에 흔들리지 말고 오직 인내와 믿음으로 묵묵하게 이 핍박을 잘 통과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내 죄를 보면서 죄의 값을 마땅히 치르면서 가면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의 생명책에 우리도 이름이 기록되는 줄 믿습니다.
오늘은 저의 아버지에 대한 간증과 공동체 고백을 하겠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교계에서 촉망 받는 목사님이셨지만, 요한계시록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세대 주의적 종말론에 심취해 계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통사고로 하루아침에 식물인간이 되어 지금까지 31년 동안 살아 계십니다. 절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가난한 집에서 6.25 때 태어나 부모에게 버림받고 입양되셔서 양모 밑에서 괄시와 힘든 시간을 많이 겪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 세상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종말론에 빠질 수밖에 없으셨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아버지의 사건이 너무나 명확하게 해석되었습니다. 짐승의 권세에 사로잡혀서 적그리스도에게 속아 무저갱으로 떠내려가는 아버지를 하나님께서 건지시기 위해 이 심판이 너무나 필요했던 것입니다. 또한 식물인간으로 그 모습 그대로 살아 계셔서 우리 가족들이 성령의 매임으로 사로잡혀 인내와 믿음을 지켜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권세가 짐승의 권세를 이기는 진짜 승리인 줄 믿습니다.
공동체 고백은 어느 목자님의 믿음의 고백입니다. 지난 수요일 저녁 예배 중에 목자님의 네 살 아들이 세 개의 손가락이 절단되었다는 소식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아이가 넘어지면서 손가락이 끼어 발생한 사고였습니다. 다음날 일찍 병원을 찾았는데, 그날 본문이 하나님의 권세를 받은 두 증인의 순교와 부활이었습니다. 이후 목자님께서 실시간 카톡으로 피가 마르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죄 많은 제게 기도의 끈을 놓지 않기를 원하시는 것 같고, 저희 부부와 아들에게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을 신뢰하고 인내하며 소망한다는 나눔을 올려주셨습니다. 이번 사건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확실하게 이름을 올리게 되는 구원의 사건이 되는 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들께서도 이 가정이 끝까지 인내와 믿음으로 잘 가실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너는 이길 수 있다는 사탄의 참소에 흔들리지 말고 오직 인내와 믿음으로 핍박을 끝까지 잘 통과하시고, 그리스도의 권세로 살아가시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