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왕]
이태근 목사
시편 24:1~10
오늘 말씀드릴 시편 24편은 영광의 왕을 찬양하는 시입니다. 여러분은 영광의 왕, 하나님을 찬양하는 인생을 살아오셨습니까? 우리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 지라도 원망이 찬양이 되고 불평이 찬송이 되며 나의 고난이 할렐루야ㆍ아멘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러면 영광의 왕을 찬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내 것이 아니고 다 주님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1절에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서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니라에서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은 하나님의 모든 창조 세계를 의미하고, 세계와 그 가운데 사는 자들은 모든 인류와 인간사회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이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것이라 할 수 없는 이유는 본문 2절에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고 강들 위에 건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빛과 어둠을 나누신 것이 가장 먼저 하신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모으고 쌓고 더 모으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기에 가진 것이 있어도 나누지 못해, 누리지도 못하며 공허하고 허무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눔을 우선하는 창조 질서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내 인생의 첫째 날, 둘째 날과 셋째 날이 이어지고, 내 마음과 생각 속에서 공존하는 어둠과 빛이 나누어집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무지개 연약의 은혜를 주셨음을 잊지 말고 절대로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 행위가 아닌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올라가야 할 산은 광야에 있는 시내산과 예루살렘에 있는 시온 산 양대 산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시내 산은 산에 오르거나 그 경계를 침범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출애굽기19장12절) 할 정도로 그 위엄은 대단했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빛 가운데로 나아갈 수 없기에 빛 되신 예수님이 먼저 찾아오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여호와의 산은 성전이 세워진 시온 산을 가리킵니다. 이곳은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릴 때 하나님께서 미리 어린양을 준비해주신 그 장소인데, 시온 산에 올라가려면 본문 4절에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1) 손이 깨끗해야 합니다.
즉 눈에 보이는 외적인 행위가 성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마음이 청결하여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않아야 합니다. 마음과 뜻이 근본적으로 청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3) 거짓 맹세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앞에 두 가지 조건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라면 마지막 세 번째 조건은 인간과의 관계를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즉,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고 하는 자들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신실해야 합니다. 행위가 아닌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나의 더러운 손을 씻고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야 합니다. 또한 내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의롭다 칭함을 받았기 때문에, 요셉이 아닌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고 합니다. 결국은 나의 행위로 여호와의 산에 올라갈 자는 아무도 없으며, 오직 은혜로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늘의 문도 열립니다.
오늘 본문 시편 24편은 다윗의 시로 오벧에돔의 집에 있던 여호와의 언약궤를 시온산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옮겨올 때에 부른 찬양 시라고 합니다. 본문 7절의 첫 번째 문은 성소의 문을 가리키며, 영원한 문들은 하늘 성소의 문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에서 들지어다는 능동 명령형이고,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에서 들릴지어다는 수동명령형입니다. 들지어다는 문들이 자발적으로 머리를 들어 왕의 입성을 환영하는 장면이고 들릴지어다는 영광의 왕 앞에 문들이 필연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음을 보여줍니다. 내 마음이 열려야 하늘의 문도 열립니다. 그런데 다윗의 아내 미갈은 남편 다윗에게도 여호와 하나님께도 마음을 굳게 닫았습니다. 다윗이 언약궤를 메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 기뻐 뛰며 힘을 다하여 춤을 출 때, 미갈은 창틀에 기대어 빼꼼히 머리를 내밀고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이는 심중에 남편 다윗을 업신여겼고, 그녀의 마음은 굳게 닫힌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목장에서 왜 저런 이야기까지 하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내 마음이 닫힌 마음이고 미갈과 같은 마음입니다. 마지막 본문 9-10절 말씀은 앞 절과 거의 똑같은 내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하고 강조하고 싶은 강조할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말씀의 언약궤라고 하지 않고 영광이 왕 만군의 여호와,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여, 전쟁에 능한 여호와라고 표현합니다. 즉, 사탄의 권세를 꺾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시는 주님께서 하늘에 있는 성전에 들어가시니, 문들아 너희는 너희의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천군 천사가 외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문이 열린 것처럼 내 마음의 문도 열려야 합니다. 하지만 다 함께 기뻐하며 찬양하며 뛰어놀 때, 미갈과 같이 자기 연민과 상처로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고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있는 우리의 자녀와 식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문밖에 서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그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집사님의 목장 나눔을 공동체 고백으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한 집사님께서 십 여 년 동안 사업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일용직을 시작한 지 2년 정도 되셨는데 하루는 연장 근무를 하게 되어 일당을 더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내는 이런 내용을 모르니 수수료를 제하고 받은 돈만 이체하고 나머지 돈은 아내 몰래 꿀꺽 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불편해 큐티하던 차에 하나님께서 '내가 알맞을 때 너의 길을 열어줄까, 아니면 그 돈 3만 6천 원 꿀꺽 하고 끝낼래?' 하시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돈을 송금하고 이실직고 했답니다. 아내 집사님은 남편에게 화가 났다기보다는 고마웠고 남편이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용돈을 더 올려줄 수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부부의 대화가 참 은혜가 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 되고, 행위가 아닌 은혜를 구하며 마음의 문을 열어 하늘의 문이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목적이 없는 인생을 살다가 허망한 인생을 살지 말고 이제는 여호와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인생이 되라고 하십니다. 터가 흔들리는 바다와 강들 위에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보려고 애쓰고 힘쓰다가 손에 잡히는 것도 없이 허망한 인생이 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 영광의 왕을 찬양하는 인생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