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굴로 광풍]
이태근 목사
행 27장9-26절
지난주 다시 살펴야 할 마게도냐, 계속 신경 써야 할 예루살렘, 비전을 가지고 찾아가야 할 로마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처럼 담임목사님이 4주간 일정으로 미국 한인교회 사경회와 현지 목회자 세미나를 위해 출국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 유라굴로 광풍이 나오는데, 이는 동풍을 의미하는 유로스와 북풍을 의미하는 아킬로의 합성어입니다. 이 바람으로 배들이 파산되거나 아프리카 해안까지 떠밀려 갈 정도의 위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찌하다가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게 되었을지를 묵상해 보겠습니다.
첫째, 말씀보다 전문가의 말을 더 믿었기 때문입니다.
9절 말씀에서 금식하는 절기는 유대인의 대 속죄일로 오늘날로는 9월 말 혹은 10월 초경으로 겨울이 다가온 시점입니다. 당시 로마인들은 9월 15일 이후의 항해는 부담스럽게 생각했고, 11월 이후의 항해는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평생 자비량으로 여러 지역에 복음을 전하면서 세 번 배가 파선된 것을 포함해 여러 고난을 겪은 지혜로 권했으나,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신뢰했다고 합니다.
첫째 민산이가 방황 중일 때 중고등부 사역자들이 심방을 오겠다는 소식에 목사인 제가 그 자리에 있는 게 싫어 다른 일정을 핑계로 피했습니다. 오랫동안 자녀의 문제를 내 문제라고 여기지 못했습니다. 제가 스스로 선장이 되고 선주가 되고 백부장이 되어서 작은 거루를 타고 다른 곳으로 혼자 심방을 다녔는데, 그때는 불어오는 작은 맞바람이 유라굴로 광풍이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둘째, 좀 더 편한 곳을 찾아 떠났기 때문입니다.
지금 거하는 미항도 그레데 섬의 한 항구인데, 겨울을 나기에는 여러 가지로 불편한 것이 많기에 같은 섬의 또 다른 항구인 뵈닉스로 가고자 합니다. 전문적인 소견에 따라 백부장이 결정한 것 같지만 사실은 좀 더 편한 곳을 찾아 떠난 것입니다. 결국에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게 됩니다. 조금 불편하고 비좁은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허락하신 가장 아름다운 항구라고 이름을 붙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좀 더 편한 곳을 찾아 무리하게 항해하니 유라굴로 광풍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나에게 허락하신 이곳이 미항인 것을 알아야 때를 기다리고 봄바람이 불기까지 참고 인내할 수도 있습니다. 오래전 한 영화에서 나온 대사인 두려움은 극복하면 될 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가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극복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셋째, 순풍이 변하여 광풍이 되었습니다.
순풍 다음에 얼마 안 되어 유라굴로 광풍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배가 잠시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쪽으로 내려가자 선장과 선원들이 돛이 없는 작은 배인 거루를 잡아 끌어올렸습니다. 이 거룻배는 배의 구조선 또는 생명 보트인데, 나중에 사공들이 갑판 위에 끌어올린 거룻배를 가지고 자기들만 살겠다고 몰래 도망치려고 하다가 바울에게 걸립니다. 유라굴로 광풍이 더욱 기승을 부리니 사흘째 되는 날에는 배의 기구를 뱃사람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바다에 던졌다고 합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깊은 수렁으로 더 깊이 빠지고 구원의 여망마저 사라지고 해도 달도 별도 보이지 않는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망망대해, 바다 한가운데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한계상황이 찾아온 것입니다.
민산이의 사춘기는 중학 교복 바지의 통을 줄여달라는 아주 작은 바람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잔잔한 바람이 유라굴로 광풍이 될 줄 정말 몰랐습니다. 한번 집을 나가면 들어올 생각을 안 하고, 한번 자면 일어날 생각을 안 하고 살 소망이 없는 아이처럼 보이는 아들을 보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내 힘으로 극복하려다 보니 문제를 더 크게 확대하는 경우가 많았고, 결국 청소년 법정에서 30일간 분류 심사원에 구금되는 사건까지 찾아왔습니다. 규칙적인 수면 습관이 안 잡힌 민산이는 그 안에서 큐티를 하며 분류 심사원 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왔는데 순풍이 부니 돛을 단다고 그렇게 베니스까지 순항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분류 심사원에서 나와서 드리는 첫 주일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 후 할 말이 있다는 민산이에게서 여자 친구가 임신했는데 자신이 지키고 책임지고 싶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순풍이 변하여 광풍이 되었던 그때, 담임목사님께서 해외 집회로 출타 중이셔서 갑자기 제가 설교하라는 소식에 급히 준비하는 중에 이 사건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 혼자 거룻배를 타고 더 도망갈 곳이 없어 힘이 들었습니다. 삼 년 전 이 자리에서 주일설교를 할 때 숨 막히는 적막감 속에서 설교를 마친 기억이 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성도님들에게 인사하는 자리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남자 집사님이 다가오셔서 저를 살짝 안아주면서 '목사님. 왜 이리 힘들어하세요.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닌데.'라고 하는데, 홀로 망망대해 한가운데 서 있는 제게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음성처럼 들렸습니다.
넷째, 광풍 가운데 이제는 안심하라고 합니다.
바울에게 두려워 말라는 말씀하신 것을 묵상해 볼 때 바울 역시 두려워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도 분명히 두려움을 느꼈지만, 그에 사로잡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배를 탄 사람들에게 이제는 안심하라고,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될 줄을 내가 믿는다며 확신에 찬 고백을 했습니다. 바울처럼 나에게 주신 말씀이 있을 때 두려움이 변하여 사명이 됩니다. 한 섬에 걸린다는 것은 약속하신 말씀처럼 배는 파선되겠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거라는 말씀입니다.
민산이는 추석 명절에 장인어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죄송하다는 말을 직접 했다고 합니다. 목사인 저는 광풍이 불어오면 혼자 거룻배를 타고 도망갈 생각부터 하는데, 아들은 도망치거나 회피하지 않는 모습을 보니 저보다 훨씬 낫다는 인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민산이는 어느덧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대학교도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조기 취업을 해서, 지금은 직장생활하고 있습니다. 첫 월급에서 십일조를 드리고, 가족들에게 선물도 돌렸습니다. 얼마 전 민산이가 자기가 속해있는 목장과 마을이 청소 담당이니, 자신을 교회까지 데려다 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그 모습이 제게 가장 기쁘고 감사한 일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고 말씀대로 다 된 것 같습니다. 우리의 욕심의 배, 탐욕의 배, 세상 가치관으로 쌓은 모든 것이 파선될 수 있지만, 말씀을 들은 사람은 한 사람도 죽지 않고 생명을 보존할 거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작은 섬 목장에서 순풍이 아닌 성령의 바람을 인내하고 주의 음성을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기억하며 오직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인생을 살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