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완수]
행14:19-28
성령의 제자는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그때그때 완수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이 2020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완수를 했다고 하시는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또 여전히 이루어야 할 성령의 완수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기막힌 시기와 배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유대주의자들이 시기가 가득해서 자기들이 다 쫓아놓고도 루스드라에서 인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성이 안 풀려서 그 먼 곳인 비시디아 안디옥과 가까운 이고니온에서도 루스드라 백성을 충동하기 위해 바울과 바나바를 쫓아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설득이 얼마나 탁월했는지 순식간에 바울을 돌로 쳐 죽이려는 폭도로 돌변하게 했습니다. 유대인의 기막힌 시기이고 루스드라의 기막힌 배신입니다. 이 세상은 악하고 음란하기에, 나의 이권과 정욕에 눈이 멀면 살려두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달콤한 말을 해도 사람은 전적으로 부패했기에 자기 이해타산이 걸리면 폭도로 돌변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탄은 못된 열심으로 끊임없이 밀 까부르듯 주의 제자가 되지 못하게 흔들어 댑니다. 주님은 주의 일을 하는 바울에게 이런 일을 당하지 않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열다섯 광야를 지나게 하신 것처럼 바울에게도 이 모든 광야를 건너가게 하시며, 지독한 시기를 당하게 하십니다. 같은 부류, 같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서 늘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 미리 예방주사를 맞고 가면 그것이 성령의 완수입니다. 정말 신앙은 버티는 것이 실력입니다. 말이 안 되는 사람이 집집마다 회사마다 있습니다. 그러나 시기와 배신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오늘을 잘살게 되는 것 또한 성령의 완수입니다.
둘째, 회개하며 툴툴 털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루스드라에도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된 제자들이 이미 생겼음을 지금 표시합니다.그런데 이들이 바울이 돌에 맞아 성 밖으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모였습니다.어찌할 바를 모르고 죽은 바울을 쳐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서 자기의 생각, 느낌, 허탈감, 허무함을 중요하게 여기기보다 바로 그 상황에서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각자 다 자기의 느낌만 있고, 자기의 아픔만 있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좌절을 겪어도 사명의 길을 딱 포기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말씀의 능력을 힘입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일어섰습니다. 자기의 길을 갔습니다. 계속 넘어지라고 이 시기와 이런 배신을 허락하십니다. 바울은 숨도 안 쉬고 있다가 기적적으로 일어난 다음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어나서 루스드라성 사람들을 욕하지 않고, 툭툭 털고 일어나서 루스드라성 안으로 들어가 또 제자들을 챙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다음 목적지 더베를 향해 떠납니다. 돌로 치면 그냥 흥분하지 말고 이렇게 먼지를 떨고 티끌을 떨고 떠나면 됩니다. 그러나 구속사는 항상 바울이 잘나서 이렇게 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내가 돌에 맞을 때 보여주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바울은 쓸데없는 열광에 옷을 찢으며 패스했기에 돌로 치는 배반에도 훌훌 털고 떠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완수입니다.
셋째, 제자를 키우는 것입니다.
바울이 더베에서 안디옥까지 육로로 가는 것이 더 가까우며 쉬웠고, 게다가 자기 고향 다소가 있어서 쉴 수도 있었지만, 돌에 맞아 죽을 뻔했던 루스드라, 자신을 죽이려고 계획을 세웠던 이고니온, 자신을 추방했던 안디옥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인생의 목적은 편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당한 사건에 갇혀있다면 가지 못할 곳이지만, 바울은 주께로 돌아온 이 한 영혼을 너무 귀하게 여겼기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서 설교한 내용은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 무장을 시키는 것입니다. 물론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악하고 음란한 이 땅에서 구원의 여정을 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많은 환난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복음은 또한 장차 받을 환난입니다.이 환난을 잘 통과하려면 믿음에 머물러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제자가 되어야 하고, 내가 제자가 되면 제자를 키워내야 하는 것입니다.
넷째,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영적 지도자를 세워서 교회 공동체가 장차 있을 환난 가운데 질서 있게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그랬듯이 장로의 기본적인 역할은 분별과 결정입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지도자의 자격도 그들이 믿는 주께, 그러니까 그들이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나바와 바울이 분별해내는 것입니다.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했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택해야 공동체를 위한 분별과 결정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은 다름 아닌, 내 생각을 버리고 오늘 주신 말씀대로 순종하고 결정하는 태도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자격입니다. 두 사도는 말씀의 순종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실패 같은 현실에서도 말씀에 따라서 더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나는 할 수 없다는 고백이 날마다 있어야 성취가 아닌, 순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종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령의 완수를 할 수 있는 길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가 맡긴 선교를 완수했지만, 이 완수는 그들이 스스로 이룬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채운 순종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바울이 고생한 이야기를 보고 할 수 있었지만, 바울은 믿음의 문을 여셨다고 보고했습니다. 왜냐하면 한번 열린 이방의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기 때문이며, 지금까지 닫혀 있다가 그것을 여신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바울의 고백으로 하면 자신의 허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함께 행하셨다고 진심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성도는 보이지 않는 영원한 교회에 속해 있기에 하나님이 불러주신 그 가시적 교회에 잘 붙어있어야 각자의 사명지에서 잘 머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영원한 이방인 같은 내게 맡기신 땅끝 같은 가족과 이웃에게 믿음의 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를 세우는 일이고 성령의 완수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