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제자]
사도행전13:50-14:7
성령의 제자는 제자훈련 보다는 성경을 읽다보면, 성령의 살리심과 일으키심에 구원의 시각으로 반응하니 저절로 주님의 제자가 되어 성령의 제자가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령의 제자로 부르심은 행복과 고통을 넘어 목숨까지 내놓는 충격적인 과정을 겪어가면서 되어갑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령의 제자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쫓겨나도 기쁨과 성령이 충만합니다.
지난주 말씀에 유대인들의 시기와 반박과 비방에도 바울사도가 전하니 주의 말씀이 두루 퍼졌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회당에 나오는 경건한 귀부인들이 두 사도를 쫓아냈습니다. 이 쫓겨남이 말씀대로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에 그들은 쫓겨나도 낙심하지 않고 이고니온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면서 성에서 나가 발의 티끌을 떨어버리는 것은 복음을 안 받아들이니까 가족을 떠나야 할 때도 그 지역을 떠나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이며, 안 믿는 식구들의 문화와 가치관에서 떠나는 것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믿지 않는 당신이 아무리 돈을 주고 사랑해주어도 나는 하나도 기쁘지 않다고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삶으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되 지혜롭게 해야 됩니다. 시기에 가득 찬 유대인과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된 이방인들은 이 두 사도가 쫓겨났는데도 기쁨과 성령이 충만합니다. 이런 상태는 말씀을 받고 회개한 새사람의 전형적 특징입니다. 그들에게 핍박과 박해가 있었겠지만 들은 말씀으로 구속사를 이해했기 때문에 이 박해 속에서도 성령의 일으키심으로 일어나 제자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고 영광 돌리면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무는 것이 바로 성령의 제자입니다. 시기와 반박과 비방을 당해도 주의 일이면 어떤 박해 속에서도 기쁨이 충만합니다.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에 눈이 떠지는 것이 성령의 제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알 수 없는 비밀인 것입니다.
둘째. 여전한 방식으로 전도하고 배척을 당합니다.
여전한 방식이 중요합니다. 여전한 방식으로 회당에 들어갔습니다. 영혼구원의 열매는 고난가운데서도 내가 말씀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길로 놓고 여전한 방식으로 매일 살아갈 때 주님이 맺게 해 주십니다. 여전한 방식은 진리 중 진리이고 오랫동안 롱런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그 결과 허다한 무리가 믿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불순종의 영으로 이방인들을 선동하는데, 누구를 향해 악한 마음을 품게 하는 것은 결국 그 영혼을 해하고 망가뜨립니다. 전도는 믿지 않는 이들을 교회로 데리고 오는 것과 함께 영생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은 생각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원수를 용서하라 까지는 알아도 사랑하라는 것은 들어보지도 알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끝까지 용서하라는 것이니 하나님의 아가페적 사랑이 아니면 할 수가 없습니다. 전도도 배척도 핍박도 수없이 반복해서 하고 받고 당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개인예배, 공예배, 공동체의 여전한 예배가 노아의 방주입니다. 여전한 방식으로 충성되게 살아내는 것이 가장 하나님을 찬양하는 태도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최고의 삶입니다.
셋째. 양육이 필요합니다.
안디옥에서와는 달리 오래 있었다고 증거합니다. 사도바울의 선교의 큰 특징은 양육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에서도 이년 있었고 고린도에서도 일 년 육개월을 가르쳤습니다. 말씀을 제대로 배워야 신앙인으로 설 수 있습니다. 양육이 없는 전도는 미완성의 전도입니다. 양육을 통해서 전도는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자와 하나님 사이에는 분명히 역할 분담이 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을 묵상하며 비비고 닳도록 적용하며 사는 것이 표적과 기사가 되어 최고의 증언을 하고 또 해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자기가 일생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부부, 자녀, 다 전쟁입니다. 이 전쟁을 혼자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려니 공동체가 필요한 것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이 통하는 복음은 없습니다. 구원을 위해 늘 말씀을 기준으로 놓고 거짓화평이 깨어지는 고난을 감당해서 죄를 깨달아 회개하면 주님이 진정한 화평을 주시는 것입니다.
넷째. 돌로 치면 도망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시기와 반박과 비방을 넘어 심히 악한 감정을 품고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합니다. 사단의 세력들이 얼마나 큰 위기감을 느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도 바울은 조건반사적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우리도 언제 어디에 있든 복음을 전하되 이처럼 지혜롭게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정이 직장이 사업장이 다 사명치, 전도지입니다. 영적 진실성의 결론은 인내입니다. 전도에는 배척과 박해가 꼭 따르며, 계속 순교하는 그날까지 계속되는데 이런 육체적인 고초, 정신적인 괴로움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삶을 가장 귀하게 생각하십니다. 좁은 이 길을 간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온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복음전도는 외롭고 슬픈 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설렘도 있는 길입니다. 그리고 별 인생이 없습니다. 쾌락을 좇아 살면 순간적인 즐거움은 있을지 모르나 그것으로 끝이고 영벌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위해 살면 그 끝에는 영생이 있습니다.
지난주 장례 간증입니다.
불신자였던 집사님은 불신 결혼 후 28년 전에 이혼했습니다. 2013년도에 교통사고로 입원한 병원에서 우리들 교회 성도의 전도로 교회에 오게 되었고, 첫 예배부터 말씀이 들려 눈물로 회개하는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예수 믿지 않은 죄가 가장 큰 죄임을 깨닫고, 그때부터 자신과 전남편과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외도와 혈기로 그렇게 힘들게 했던 전남편이 희귀 암이 걸리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구원에 대한 애통함으로 영접 심방을 요청하게 되었고, 전남편이 '가족들과 함께 살지 못해 미안하다.'는 고백과 함께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눈물로 기도를 하는 기적을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임종 일주일 전에는 혼인신고도 하셨습니다. 영접하신지 이십일 만에 소천 하셨는데, 믿지 않는 가족들 앞에서 모든 장례를 우리들 교회 장으로 진행하게 되는 기적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한 사람이 깨어있어서 구원 때문에 기도하니,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역사하셔서 성령의 제자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바로 이런 분들이 성령의 적용들을 하니,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서 온 집안 식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남편을 구원시켰고 호적을 지켜내었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제자가 사슬로 이어져 내려가 아이들에게도 이런 놀라운 성령의 제자가 이어지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