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반응]
행13:41-49
성도는 보이는 나라에서 살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는 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조금씩 반응을 하게 됩니다. 지난 시간에 바울의 간증은 썩음을 당치 않으시는 부활의 주님을 힘입어서 우리가 죄 사함과 의로움을 입게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안 들리면 조상들이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한 것처럼 우리도 똑같이 멸망할 것이라고 애통함으로 하박국 1장 5절의 말씀으로 경고했습니다. 그러면 이 말을 듣고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성령의 반응일까요?
첫째, 말씀을 듣고자 호의적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청중들은 구속사적인 성경의 핵심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선포하는 바울의 설교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사람은 말씀에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꾸 말씀을 듣고 싶고 이 말씀을 듣는 구조 속에 있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바깥으로 나가고 있는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가면서 말씀 전해주기를 거듭 부탁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딱 한 번 설교를 듣고 따랐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는 하나님의 은혜에 머물러 있으라고 거듭 권했습니다. 복음의 결론은 죄 사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잘되기보다 도리어 무너져야 영이 세워지는데, 이때 복음 안에서 살아야 하니 우리의 결단과 적용이 필요합니다. 이때 힘들지만 잘 버티고 인내하라는 것이 은혜 가운데 머무는 것입니다. 서로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어야 서로의 관계도 유지됩니다. 불의한 이 세상에서 은혜라는 것은 감상적인 것이 아니고 때마다 십자가를 길로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였습니다. 사모하면 저절로 와보라가 됩니다. 이렇게 진정한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진정한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 시기와 비방에도 담대히 전하는 것입니다.
구속사의 말씀은 설교하기는 너무 어렵지만 전하고 나면 늘 똑같은 결론입니다. 불의한 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산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이 불의한 세상에서 무너지지 않고 계속 잘 간다면 그것 자체가 불의한 것입니다. 깨어지고 무너지는 만큼만 영의 세계가 세워집니다. 이것이 바로 구속사이고 똑같은 설교를 한 스데반은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바울의 메시지에는 인파가 몰렸습니다. 이 모임을 별생각 없이 주관했던 바울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그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인파가 몰리니 자기들도 직면하지 못했던 시기라는 감정에 직면하게 됩니다. 시기는 자기와 동등하거나 비견된다고 여겨지는 사람에 대해 일어나는 것인데, 유대인 중에서 바울과 바나바같이 말씀을 전하는 랍비들에게 시기가 일어난 것입니다. 지도자들은 바울의 복음이 이해가 안 됩니다. 믿음은 이해가 되어서 믿는 게 아니고 믿어야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육이 갖춰진 똑똑한 이 사람들이 이런 도발로 시기, 반박, 비방이 계속 들어오니까 주의 말씀을 듣는 자리가 갑자기 말싸움 자리가 된 것입니다. 영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육적 이야기로 비판을 당하니 바울과 바나바는 겸손한 담대함으로 먼저 믿은 너희에게 전해야 하겠지만 너희가 거부하니 할 수 없이 이방인에게로 향한다는 이야기를 말씀에 의거해 선포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는 자를 핍박하고 방해하면 나는 영생하고 상관이 없다는 것을 자기 입으로 이야기하는 것과 똑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기에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으로 우리가 원해야 할 것은 구원입니다. 이 복음을 거절하는 유대인들 때문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을 중심으로 구속사가 펼쳐집니다. 이방인에게로 가라는 것도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지탄받는 죄인들을 향해 지금 나가는 겁니다. 내 식구가 너무 복음을 안 받아들이는 수고를 해서 날 무너지게 하시니 그때 내 죄를 보게 하셔서 다른 사람의 아픔에 동참하니 이게 이방인에게로 나가게 되는 길입니다. 우리 각자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서 땅끝까지 구원하게 하시는데, 이방인은 집집마다 있습니다.
셋째, 말씀이 두루 퍼지게 되는 것이 결론입니다.
바울이 말씀에 의거해서 이방을 향해 돌아서겠다고 선언한 바로 그 때, 이방인들이 듣는 중에 기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했습니다. 믿음은 인간의 노력이나 필요, 성품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정해진 일로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결정해서 이루신 일입니다. 영생을 주기로 합당한 자는 다 영생을 받는 것입니다. 영생에 대해서는 인간의 공로는 조금도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작정된 자는 다 믿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 받지 않기 위해서 떠날 때, 있을 때, 말해야 될 때, 안 해야 될 때를 분별하는 게 성령의 반응입니다. 유대인처럼 평생 전도를 해도 안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다가 툭 던졌는데 이방인들이 믿는 것입니다. 두루 퍼지니라는 미완료형으로 계속 말씀이 퍼져 나갔다는 것입니다. 나도 이방인과 같은 존재였지만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함을 받은 사람인 것이 깨달아지니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성령의 반응은 병 낫는 것보다 주의 말씀이 흥왕해지는 것이 최고의 반응입니다.
제가 지지난 주 성령의 일으키심 제목으로 설교했는데, 집에 갔더니 저녁에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내용을 소개합니다. 목사님. 제가 이혼 직전에 목사님 설교를 수없이 듣고 우리들교회 상담 전화를 걸어 목장으로 인도되어 살아났고, 이혼을 안 했어요. 남편이 알코올 중독에 폭력적이라 교회에 가기로 했는데 예배 시간이 길다고 불평해 이를 목장에서 나누었어요. 처방으로 목사님 설교 시작하면 들어오고 설교 끝나기 전에 가도록 하라고 듣고, 설득해서 왔는데 오늘 그 남편에게 말씀이 들렸어요. 남편은 '시간이 이렇게 짧게 느껴지고 한 말씀 한 말씀이 다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그러면서 점심을 먹는데 설교내용을 마치 녹음기같이 말하고 울고 그래서 이걸 목장에 올리니 다들 너무 놀랐답니다. 복음이 뚫고 들어가는 모습을 오늘 보았기에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제 설교가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에 갔는데, 하나님께서 이쪽에서는 시기하고 이쪽에서는 좋아하는 양쪽을 늘 보여주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들은 사람 살리는 노래가 되어야 하고 사람 살리는 복음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말씀의 흥왕이 누구보다 각자에게 임하고 교회가 다 흥왕해지도록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