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의 사전적 의미는 첫째로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살핌, 두 번째는 조심하고 경계하는 눈으로 살핌, 세 번째는 감탄사로 군사 구령자에게 시선을 모으라는 구령입니다. 성령의 제자는 볼 것에 관심을 갖고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보지 않아야 할 것을 경계의 눈으로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군사 구령자인 하나님께만 감탄하면서 주목해야 합니다. 오늘은 성령의 주목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한 영혼을 주목해야 합니다. (행 14:8-10)
바울과 바나바가 도망을 간 곳, 루스드라(8절)는 당시 퇴역한 로마 군인들의 집단 거주지로 조성되어 있었습니다.그래서 정복 전쟁에 나갔다가 배워온 우상이나 미신들이 곳곳에 만연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루스드라에는 유대인의 회당이 없어서 광장과 같은 곳에서 전도했습니다. 이때 바울이 한 사람에게 시선을 돌려 그의 눈을 주목했습니다(9절). 사도행전 3장에서 성전 미문에 앉아있던 앉은뱅이는 동전 한 푼을 구걸하기 위해 베드로와 요한을 쳐다봤지만, 루스드라의 앉은뱅이는 바울이 전하는 말씀에 이끌려 그를 주목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말씀을 듣고, 자신이전적으로 부패한 죄인임을 알게 되고 구원받을 수 있단 믿음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 안에 있는 성령의 기운을 앉은뱅이에게서 느끼고 그를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믿음을 보고 '일어서라'고 외쳤습니다(10절). 여기서 바로는 곧게 (straightly)라는 뜻입니다. 즉 바울은 그 앉은뱅이에게 두 발을 쭉 펴고 일어나라고 명령했습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했고 발에 힘도 없고, 오그라져 완전히 마비된 사람에게 불가능한 명령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즉각 순종했고 믿어지지 않는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힘겹게 일어난 것이 아니라 펄쩍 뛰어오르며 일어났고, 계속 걸었습니다.
둘째, 자기 주제를 주목해야 합니다. (행 14:11-14)
루스드라인들이 앉은뱅이가 일어난 기적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신들이 내려왔다고 했습니다(11절). 계시된 말씀이 없으니 이들은 눈앞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구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루스드라에는 헬라의 주신인 제우스와 그의 전령신인 헤르메스 신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그곳에 방문했었는데, 한 사람 빼고는 아무도 영접하지 않아서 홍수로 그 지역을 멸망시켰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설이 자기들의 시대에 다시 실현되는 것으로 생각하자 흥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다면서 인물 좋은 바나바를 제우스라고 하고, 비서같이 말을 하는 바울을 헤르메스라고 불렀습니다(12절). 그리고는 소와 화환들, 최고의 제물들을 가지고 성문 앞에 와서 제사드리려 했습니다(13절). 루가오니아 언어로 말할 때는 그 의미가 뭔지 잘 몰랐던 바울과 바나바도 그들이 제사 드리려는 행동을 취하니, 자신들을 신으로 떠받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너무 놀랐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자기들의 옷을 찢고 사람들 앞에 뛰어나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14절). 옷을 찢는다는 것은 근심과 슬픔을 표시하는 유대적인 관습이었습니다. 주로 개인적 슬픔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크나큰 죄가 되는 일을 목도했을 때 취하는 행동이었습니다. 거듭되는 고난 가운데에서도 스데반을 죽인 지난날의 죄악을 기억하며 주신 말씀 따라 영혼 구원의 사명에 순종하니, 옷을 찢으며 애통해야 할 때와 안 해야 할 때를 분별하게 해 주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을 주목하는 것입니다. (행 14:15-18)
바울과 바나바가 우리는 신이 아니라고, 여러분과 똑같이 잠자고 밥 먹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기쁨과 슬픔을 느끼며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15절). 그러니까 하나님 외에 아내 남편 자녀 돈 명예 그 어떤 대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섬기는 일은 모두 우상숭배이고 헛된 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것 같아도, 우상처럼 사랑하면 그것이 속이는 것이고 무가치한 일입니다. 복음은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 돌아와야 진짜 복음(Good News)인 기쁜 소식이 임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인류 전체를 죄 가운데 내버려 둔 것 자체가 심판이라고 말했습니다(16절). 그들이 죄 가운데 있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대로 죄에 넘기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방인들의 범죄를 방임하셨다는 것은 그들의 죄를 허용하고 용서하셨다는 게 아니라, 그들에 대한 즉각적인 심판을 유보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방임하셨지만 자기를 증언하지않으신 게 아니라며(17절) 이중부정을 했습니다. 즉, 증언하셨다는 뜻입니다. 비록 특별계시인 성경을 접하지 못함으로 이방인이 허망한 삶을 산다고 하여도 그 책임이 없는 게 아니란 뜻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만물에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사계절, 하늘의 별과 달, 우주를 봐도 신성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핑계치 못한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유대교 배경이 전혀 없는 이방인 청중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표현했습니다. 바울의 설교는 성공적이었고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여기는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했습니다(18절). 우리가 전적으로 부패한 죄인이란 자기 주제에 주목한다면 자기를 숭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인생의 주제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가 아닌 자기주제를 늘 주목하도록 하는 것이 성령의 최고의 주목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