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동행]
행 13:13-14
성령의 보내심을 받고 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 동행하느냐 인 것 같습니다. 이 땅은 유한하고 천국은 영원하기에,천국 여행은 물론 실제 삶속에서도 동행이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교회에서조차 성령의 동행이 되지 못하고 로터리클럽처럼 허무한 세상적 동행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령의 동행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사람의 수행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부터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일행의 전도활동을 다룹니다. 바울일행이 바보에서 배를 타고 출발하여 도착한 곳은 밤빌리아 지역에 있는 버가인데 해안에서 25키로 정도 안에 들어가 있는 도시입니다. 버가는 처음으로 선교다운 선교를 하려고 도착한 첫 기지라고 할 수 있는데 마가라 하는 요한이 여기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다락방 섬김으로 바울의 수행원이 된 요한은 왜 돌아갔을까요?
첫 번째는 바울의 리더십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즉 윗질서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바나바를 동행하는 사람들이라고 표시한 것은 선교팀의 수장이 바울로 바뀐 것을 나타냅니다. 바보에서 바울은 성령이 충만하여 마귀 바예수를 분별하고 주목해서 야단쳤지만 바나바는 성경을 가르쳤어도 바예수를 분별하지도 야단치지도 못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에는 타협이 없어야 됩니다.
이로 인해 영적인 카리스마로 충만했던 바울이 금세 선교 팀의 리더로 부상되었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보내심이고 성령님께서 같이 동행하심으로 결정된 것으로 바나바는 인정했는데 요한은 인정을 못합니다. 개인큐티, 합심기도로 성령이 이르셔서 동행한 것인데도 성령이 내 옆에 계신 것을 잊으면 이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복음에 대한 위력의 절대적 가치를 경험하지 못한 요한은 아직 거기까지 생각을 못하는 믿음인 것 같습니다. 당사자인 바나바가 자존심이 더 상할 수 있는데도 전혀 불만을 표시하지 않고 끝까지 동행했습니다. 요한이 자기의 신분이 수행원임을 망각하는 것은 아주 순간의 일입니다. 수행원은 종으로서 스스로 자기 앞날을 결정할 수 없는 사람인데도, 자기는 오히려 일행들을 위해 따라가 준다는 잘못된 생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바울의 질병문제입니다.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방향을 정했다고 합니다. 버가는 지나가려고 들린 게 아니고 복음 전하려고 갔는데 도착해보니 그곳은 지중해와 가까운 저지대로 굉장히 습한 기후 때문에 바울이 그곳에서 심각한 질병이 발병한 것 같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에 보면 육체의 약함으로 너희가 시험에 들 뻔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의 건강문제로 그들은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버가에서 비시디아 안디옥까지 200키로 정도의 거리인데 평지로 돌아서 가는 길과 직선거리인 산맥을 통과하는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평지는 안전해도 저지대이고 바울의 건강악화로 전도도 할 수 없는 지역입니다. 그래서 갈 길은 산맥뿐인데 황소 등같이 생긴 토로스 산맥은 길이 험해서 늘 강도들이 출몰했다고 합니다. 위험한 여정이지만 바울의 병 때문에 산맥을 넘어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바나바도 인정한 것입니다. 길이 없어서 산맥을 넘어 가자는 것인데 요한이 못 간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산맥을 넘는 것이 싫은 것이 아니라 죽을 까봐 두려운 것입니다. 아무리 바울이 싫다고 해도 바나바 삼촌이 있는데 삼촌도 두고 혼자 간다는 것은 죽기 싫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수행원 노릇을 하니 천지를 지으신 성령이 동행해주시는 것이 안보여 결정적일 때 안면몰수 하고 떠나버립니다.
둘째. 하나님의 수행원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기가 막힌 상황에 바울과 바나바는 더 나아갔다고 합니다. 육체적 힘듦보다 배신감에 힘들었지만 그래도 더 나아갔다고 합니다. 힘든 상황에서 묵묵히 더 나아가게 되면 그것이 영적인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가장 도움이 되는 사람은 가버리고 그 환경이 설득이 안 되어도 우리는 우리의 길을 더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성령이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자녀면 모든 앞일을 성령이 인도하시기 때문에 길이 없다면 성령님이 길입니다. 여전한 방식으로 큐티하고 목장예배 나가는 것이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큐티 기도회 기도제목을 소리 내서 5분 이상 읽고 한 끼 이상 금식하고 한 사람에게 리플 다는 511 이 더 나아가는 비결입니다. 바울은 뼛속깊이 본인이 죄인이고 작은 자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수행원을 자청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종과 수행원으로서의 직분에 대한 체감온도가 크고 요한은 얕은 것입니다. 바울은 스데반을 죽였다고 생각하니까 죽을 때까지 할 말이 없습니다. 특별히 산맥으로 간 이유 중에는 유대인의 회당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성령이 보내셔서 가는 길은 지나고 보면 성령님의 완전한 작품이었음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증인으로 살려면 배 밑창 노예의 종으로 하나님의 수행원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셋째. 최고의 열매를 맺습니다.
바울 일행은 안디옥에 도착한 안식일에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그런데 유대인 회당에 들어갈 때마다 바울은 가르쳤다고 합니다. 가르칠 자격이 있었던 것이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운 율법학자였고 바리새인 중 바리새인이고, 바나바는 레위인 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랍비들의 좌석에 얼마든지 앉아서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성령의 세우심과 보내심은 너무나 절묘해서 아주 정확하게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동행은 결국 최고의 열매를 맺습니다. 버가를 지나쳐서 전도하지 못했지만 비시디아 안디옥을 갔기 때문에 갈라디아의 이고니온 등을 전도하게 하셔서, 바울 최고의 복음서인 갈라디아서가 써 졌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동행을 한 탤런트 이유리씨 이야기 입니다. 결혼할 때 시어머니는 개척교회 목사님이고 남편은 전도사였다고 합니다. 남편이 열두 살이나 많고 전도사 사례가 백만원 이여서 과연 결혼할 수 있겠는가 생각되어 기도원에 가서 금식기도를 하니, 탤런트도 내려놓을 수 있고 전 재산도 내려놓을 수 있고 선교도 갈 수 있다는 응답을 받았다고 합니다. 결혼할 때 많은 기업가들의 중매가 들어왔지만 믿음이 없으니까 전혀 마음이 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 결혼 11년째인 톱스타가 출연하여 개척교회 사모라고 간증까지 하니, 세상에서도 최고의 찬사를 받고 영적으로도 최고의 열매를 맺는 성령의 동행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령의 동행은 천지를 지으신 성령님이 나와 동행하시기 때문에 항상 진리의 성령님으로 개인 큐티하고 합심기도하면 최고의 열매로 이루어지게 하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