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증언]
사도행전10:39-43
베드로가 이방인인 고넬료 가정에 복음을 증언하기 위해서 선민의식을 버리고 성령의 설득, 소개, 만남을 통하여 예수님이 전하신 화평의 복음을 증인으로서 증언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령의 증언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성령의 증인으로 증언해야 합니다.
사도들을 비롯한 우리는 주님이 행하신 모든 일, 특별히 죽임 당하시고 하나님이 다시 살리사 나타내신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죽음을 말하면서 십자가가 아닌 나무라고 표현한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얼마나 저주였는지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것이며, 내가 아무리 저주 같은 삶을 살아도 창조주 예수님이 받은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팔복 중 일곱 번째 복이 화평의 복이고 여덟 번째 복이 박해입니다. 이 박해의 복에는 유일하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하십니다. 진정한 화평을 누리고 화평케 하는 자가 박해를 받을 수도 있고 이를 받아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삼백육십오번씩이나 계속되는 두려움이 우리에게 올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보다 더 많은 화평으로 그 두려움을 덮어주실 줄 믿습니다.
증인이라는 말은 순교자라는 뜻인 마르투스와 어원이 같습니다. 원어의 뜻은 수면으로 돌멩이를 던졌을 때 그 파장이 계속 퍼져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십자가 잘 지고 내 환경에 순종하고 있으면 내 증언 한 마디 한 마디가 물결처럼 퍼져 저절로 증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항상 내 인생을 통해 나무에 달리는, 즉 부족과 수치와 죄를 증언하는 것이 증인의 태도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증인이 되어 증언을 하려면 자기 환경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성령의 증언은 하늘의 언어를 땅의 언어로 잘 풀어 쓰도록 성령님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임 당하시고 다시 살리신 것이 하늘의 이야기라면 그것을 나에게 삶에 적용하도록 해주는 것이 땅의 언어이고 성령의 증언입니다. 주님처럼 나무에 달려 잘 죽으면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주실 것을 믿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주님 모시고 음식 먹은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미리 택하신 증인은 특별한 은총이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는 주님의 은혜입니다. 부활의 예수님은 택하신 자에게만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주님 모시고 음식 먹은 자인 우리에게 실제적인 부활을 보이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실제적인 부활을 증거 하면서 주님이 나타나셔서 제자들과 음식 먹어주셨다는 이야기를 첫 번째로 전합니다. 병 고침의 이야기는 금방 지나가버리고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주님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장 실제적이고 즐거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자체가 상급이고 즐거움이기에 목장이나 모임에서 주님 이야기를 하려면 나 같은 죄인에게도 나타나주셨다고 감격해하면서 증언을 해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 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목장에서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 목장은 살아날 확률이 아주 많습니다. 그 한사람이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심판을 전해야 합니다.
주님과 같이 음식을 먹은 우리가 실제적으로 주님을 보았기 때문에 이제 보고 들은 것을 전하라 명하십니다. 특별히 산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이 예수님임을 증언하라고 하십니다. 그 예수님을 믿는다면 성령님이 효과적으로 도와주시고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나에게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단순히 구원의 날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으며 그날의 심판이 믿는 자들과는 상관이 없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문제는 과연 우리가 주님 앞에서 진정으로 믿는 자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심판 이야기만 하면 듣기 싫어하지만 하나님은 천국보다 지옥 이야기를 훨씬 많이 하셨습니다. 자기 확신에 차 있는 사람은 그 자체가 심판입니다. 구원과 심판은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심판의 말도 똑같이 기쁘게 받아야 합니다.
넷째, 죄사함의 은혜를 전해야 합니다.
'죄사함을 받는다.' 를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이 이 땅에서 비참한 삶을 살다가 결국 멸망에 처할 수밖에 없게 된 원인이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죄사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만 가능합니다. 전도를 해도 희생만 하면 죄사함의 은혜를 받은 기쁨이 없기 때문에 오래하지 못합니다. C.S. 루이스는 교만을 지옥뿌리에서 올라오는 최고의 악이라고 합니다. 그에 비해서 음란, 정욕, 탐욕, 시기 등의 죄는 아주 작은 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동성애는 하나님이 죄라고 했는데 절대로 죄라고 안하니까 죄사함의 은혜를 모르기에 어떤 죄보다 큰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그릇이 깨져야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 듯, 교만이 깨어지지 않고는 죄사함을 받을 수가 없고, 죄사함을 받지 않고는 성령의 증언을 할 수가 없습니다. 죄사함은 모든 것의 근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인간관계인데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사람과의 관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당연히 전도도 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려면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관계의 문제가 해결되어 성령의 증언을 할 수 있습니다. 거꾸로 성령의 증언을 할 때 관계의 문제도 해결됩니다. 상대방이 안 변해도 내가 변하게 되니 문제 해결이 되어 화평이 있습니다.
다음 세대와 서로 성령의 증언을 해나가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알게 해주는 공동체 고백입니다. 주일말씀을 가지고 아들과 나눔을 하였습니다. 설교요약 마지막에 살인범과 동성애에 대한 비교말씀에 대해 아들이 작년 여름 수련회에서 동성애 인권운동 하는 친구 한명이 샘들과 토론을 하다가 샘들이 동성애에 대해 혐오와 매우 부정적 태도를 취했는데 '교회가 그러지 않아야 하는 거 아니야?' 하다가 격해졌습니다. 그 다음날 아들이 자기는 아빠와 토론을 하려고 했다면서 '아빠가 흥분한 것이 내가 혹시나 동성애자라는 의심이 들어서 흥분했다면 아빠는 그 순간부터 혐오감을 내려놓고 들어줄 준비가 되었어야 하는 거 아냐?' 그렇게 하면 누가 우리에게 이야기를 하겠는가. 라고 하니 말문이 막혔습니다. 아이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과 공동체 안에서 믿음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을 분별해 주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우리 모두 새겨들어야 될 이 부자간의 대화가 화평의 복음이고 성령의 증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자기 죄를 보고 성령의 증언을 할 때, 여러분을 증거 해 줄 성령의 증인들이 많이 생기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