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세례]
행 10:44~48
사도행전 10장을 오늘 여덟 번째 설교로 마무리합니다. 성경의 주제도 그렇고 우리네 인생이 그렇습니다만 내가 믿어도,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안 될 일이 많아 보입니다. 이렇게 잘못된 편견은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선민사상으로서는 상종도 못 할 고넬료 일행에게 가이사랴의 오순절이라 부르는 성령강림이 이뤄졌습니다. 오늘은 이방인의 특성에 맞게 임하신 성령세례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성령세례는
첫째, 말씀 중에 임하신 사건입니다.
구속사 과정에서의 십자가 사건은 주님이 우리 죄를 깨끗게 하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기 위해 화목제로 돌아가시는 헌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는가?하고 이것이 와 닿지를 않습니다. 나를 위해서 누군가 죽어준다는 것은 내가 죽는 고통이 아니면 알기 어렵습니다. 성령님이 아니면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내가 벌레보다 못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죄 사함의 은혜를 받아야 그때부터 성령님이 효과적으로 도우십니다. 이것이 화평의 복음이고 바로 이 복음을 들을 때, 성령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셨습니다. 성령강림은 예측하지 못한 가운데 전적인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식간에 이뤄졌습니다. 성령이 내려오기 전에는 그 누구도 능력을 발휘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여기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서, 말씀 듣는 중에 성령이 내려오실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질 때 효과적으로 도우시는 진리의 성령님이 말씀을 듣는 중에 내려오십니다. 성령은 말씀 속에서 충만하게 임재하십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성령의 영감으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성령을 통해 역사하고, 성령은 말씀 안에서 활동하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설교를 들어도 이렇게 성령이 임해야만 합니다. 베드로를 설득하시던 하나님의 열심이 성령강림으로 드디어 이방인 선교의 결실을 보십니다.
둘째, 편견을 철폐하신 사건입니다.
본문은성령을 부어주셨다고 합니다. 이 일을 행하시는 주체가 바로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할례받은 신자는 유대인이고 먼저 믿은 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천히 여기는 이방인이고 안 믿는 자에게 말씀 듣는 중에 성령을 그냥 마구 부어주시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힘든 과정을 거쳐 성령의 증언으로 이방인들에게 화평의 복음을 전한 후에도 베드로와 할례받은 신자들이 여전히 놀랍니다. 편견이 우리의 거룩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맞습니다. 그래서 편견을 깨트리는 것이 우리가죽을 때까지해나가야 할과정이고, 거룩의 주제인 것 같습니다. 이처럼 나의 경험과 지식이 너무나 힘들게 겪은 것이기 때문에 내가 최고다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 주관적인 편견과 아집에 근거해서 가장 완전한 진리를 소유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세대마다 얼마나 많겠습니까? 베드로가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설교했는데도 지금 차별을 하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자연발생적인 본능으로 잘생기고 예쁘면 착할 것 같고, 똑똑하면 잘 믿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절대 진리는 하나님 말씀밖에 없습니다.편견은 철폐하고 분별은 해야 하지만,이게 분별인지 차별인지는 성령이 임하지 않고서는 모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성령세례 받기를 원합니다.
셋째, 표적을 주신 사건입니다.
성령세례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가 완전히 철폐되었음을 가르치려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방언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방언을 하면서도 삶에서 전혀 본이되지 않을때는 그 사람이 하는 방언이 무섭게 들립니다. 우리는 상식을 넘어서면 안 됩니다. 오늘 그 방언이 하나님을 높이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사랑할 수 없는데도 '사랑합니다'하며언어가 달라지는 언어의 할례를 받게 됩니다. 이것이 사실상 최고의 방언입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언어는 사랑의 언어, 따뜻한 언어, 정결케 하는 언어로 바로 관계가 해결되는 언어입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관계의 문제이고, 여기에 언어가 크게 작용합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이 성령님을 보내셨기에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과의 만남에서 공개적인 물세례가 결혼이라면, 주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본질적인 사랑의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유지되려면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회개하고 교회에 들어오기로 작정한 사람이 받는 것이 물세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결혼식만 한다고 그 결혼이 항상 충만한 기쁨이 보장된 것이아니기에 서로 사랑하는 본질의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물론 본질적인 사랑도 결혼식 전에 올 수 있습니다. 성령은 사도행전에 처음 오신 것이 아닙니다. 창세 전부터 계셨고 오순절에 오셨고 지금도 계시며 장차도 계실 것입니다. 성령은 새로운 삶을 주시는 권능이고 평생에 걸친 변화의 과정이 시작되게 하십니다. 그러나 성령은 인격적이고 초월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인간의 생각대로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주로 불같은 시험이 올 때 성령세례를 받기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올 때 이 성령세례를 사모하셔야 합니다.
차별금지법에 있는 성적지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국민들도, 다수의 국회의원도 잘 모르기 때문에 이것을 쉽게 생각하고 '차별을 금지하자는데 왜 그러냐?'고 합니다. 가정 중수를 하려면 이 법이 절대로 허용돼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안 높이는데 무슨 윤리와 도덕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다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믿는 우리가 회개하고 돌이키면, 그들에게 성령세례가 임해서 놀랄 만한 방언을 하며 내가 잘못되었다, 동성애는 죄다고 하나님을 높이는 표적을 보여주시지 않을까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듣기 싫어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막아야 합니다. 저는 국회의원들에게 이 성령세례가 임하기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들이 실상을 알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오늘 한 사람 전도하는 게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막는 비결입니다. 우리가 놀라운 방언으로 표적을 보여줄 때, 내가 전하는 그 사람들도 놀라운 표적의 방언을 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리하여 놀랍게 하나님을 높이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