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서 있습니까?]
이성훈 목사
왕하 5:9~19
내비게이션이 간혹 도착지까지 정확하게 안내해 주지 못해 곤란할 때가 있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길을 잃고 방황하다 예상치 못한 고난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이런 상황에서 요동하지 않고 중심 잡고 잘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이고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말씀대로 적용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아만의 변화된 세 가지 태도를 통해서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고 잘 서 있어야 하는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자기 확신으로 서 있으면 분노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아만은 아람에서 곧장 엘리사 집으로 찾아간 것이 아니라, 먼저 사마리아 왕궁에 들러 아람 왕이 보낸 각종 선물을 들고 여호람 왕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엘리사 집 문 앞에 서 있는 나아만은 말들과 병거들과 함께 했는데, 이는 그가 자기 힘을 과시하고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려는 태도로서 결국 자기 확신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나아만은 엘리사가 직접 자신을 맞이하지 않고 사환을 보낸 것에 화가 났습니다. 게다가 온갖 수단을 써도 고칠 수 없는 심각한 병인데도, 단지 요단강에 들어가 일곱 번 씻으라고 한 것 때문에 분노합니다. 나아만의 이런 모습을 보며 자기 확신이 크고 자존심이 셀수록 성령의 화평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분노하며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아내와 110일 만에 결혼하면서 아내에게 사모의 역할을 바라지 않고 내 능력으로 좋은 남편 훌륭한 목사가 될 수 있다는 자기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의 생색으로 이어져 감당할 수 없는 불화와 싸움으로 심각한 이혼 위기로 절망 가운데 처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확신에 가득 차 교만하게 서 있다가 사건이 생기니 분노해서 하나님을 떠나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말씀 없는 제 삶의 결론이었습니다.
둘째, 받은 은혜로 서 있으면 감사하게 됩니다.
나아만은 엘리사의 태도에 분노했지만, 종들의 설득으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어 깨끗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질병이라는 고난과 자기 확신이 깨지는 무시를 당하며 억지로라도 말씀에 순종하는 적용을 하니 기적을 경험한 것입니다. 치료받을 목적을 이룬 나아만은 그냥 아람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으나, 자신을 문전박대하고 무시했던 엘리사에게 다시 찾아가 예물을 드리고자 합니다. 자기가 세운 목적이나 기대를 버리고 자기 확신을 깨뜨리고 받은 은혜로 서 있으니,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과 선지자에게 감사하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오랜 시간 질병의 고통을 겪으며 마음이 낮아지고, 낮아지니 말씀을 듣게 되고, 말씀을 들으니 구원의 기적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고난이 축복입니다. 고난이야말로 최고의 복인 구원으로 인도하는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유학 중, 크게 다툰 어느 날 아내는 어린 아들과 함께 한국으로 떠났고 저는 모든 소망이 다 끊어져 절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한국에서 장모님의 손에 이끌려 우리들 공동체로 인도되어 말씀이 들리는 기적을 경험하였습니다. 저는 부하의 말을 듣고 요단강에 간 나아만처럼 자기 확신과 자존심을 내려놓고 아내의 초대에 응하여 함께 큐티를 나누기 시작했고, 목사님 설교를 듣고 우리들교회 사역자 가정이 공동체가 되어 주어 가정이 회복되었습니다. 레위기 25:55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다 깨어진 애굽 같은 상황에서 우리들교회를 통해 저희 가정을 구해주셨음을 다시 고백하게 되었고, 우리들교회 사역자로 지원하여 부름을 받는 은혜도 주셨습니다. 저를 포함한 모든 분께 생명의 말씀이 들리는 성령의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매일 말씀을 묵상하시고, 공 예배와 목장 예배를 꼭 드리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말씀 묵상하고 예배의 자리에 서는 일이 정말 요단강에 일곱 번 들어가서 치료를 받는 나아만의 순종이 될 줄 믿습니다.
셋째,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 있어야 사명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내가 섬기는이라고 번역한 구절이 원어로는 내가 그 앞에 서 있는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언제든 순종하려고 기다리고 서 있는 웨이터라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감사 표시로 예물을 드리고자 하는 나아만의 요청을 하나님 앞에서 거절합니다. 이는 은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물임 알려주고, 예물로 은혜를 갚으려 하는 나아만을 분별하여 그의 구원과 성장을 위해 거절한 것입니다. 예물 주기를 거절당한 후에, 나아만은 고향에 가서 예배하는 데 필요한 이스라엘 땅의 흙을 부탁하고, 왕실 장군으로 국가 행사에 참석할 때 우상에게 절하는 일에 대해 용서를 구합니다. 엘리사는 평안히 돌아가라고 하며 그의 눈높이에 맞게 구원과 사명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우리들 교회 부목사이면서 박사 논문을 쓰고 있는 신학생이기도 합니다. 여러 고민 끝에 성령의 자기 비우심을 논문 주제로 삼고 연구하던 중에 사도행전 설교가 시작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성령 자체에 관심을 두지 않고 성령을 받을 사도들, 바로 성령 받아야 할 우리에게 더 관심을 두고 계속 양육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성령행전이 아니라 사도행전이다.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이는 당시 성령의 비우심에 대해 여러 문헌을 뒤지며 고민하던 저의 지성에 큰 울림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매주 듣는 사도행전 설교는 신학적 신비를 구체적인 본문에 근거해서 우리의 구체적인 삶을 해석하며 전해줍니다. 이 신학적 통찰을 논문에 잘 담아내서 교회에 유익이 되는,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예물이 되면 좋겠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서 구원과 사명으로 인도하고, 하나님께 묻고 순종하며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서 진리의 성령의 따라 예배드리는 은혜가 모두에게 임하길 축복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대로 믿고 살고 누림으로 가정과 일터, 그 밖의 모든 곳에서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시는 성도님이 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