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화평]
사도행전 10:36~38
성령의 깨달음으로 와야 할 것이 화평입니다. 화평의 복음은 기쁜 소식이니, 성령의 화평이 여러분에게도 기쁜 소식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은 성령의 화평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만유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습니다.
만유의 주님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담을 허물 수 있는 온 세상의 주님이십니다. 온 세상 인류에게 복음을 전할 때 가장 피부로 와 닿는 것이 화평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보통 화평을 갈등이나 다툼, 전쟁이 없는 상태로 이해합니다. 평화는 환경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전쟁은 인간의 죄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100% 죄인인 인간의 탐욕과 시기, 질투, 분쟁, 비방 등으로 이 세상엔 본질적으로 화평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는 평화라는 말이 무려 400회 정도 나옵니다. 화평과 평화는 동의어로 전쟁의 반대 개념으로 쓰이며, 성경에서는 주로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적대감이 없어진 상태를 묘사합니다. 화평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레위기에 보면 제사를 드릴 때 번제, 속죄제를 다 드린 후에 화목제가 나옵니다. 즉, 회개가 없이는 죄 사함이 없고 죄 사함이 없이는 화목과 화평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이 땅의 화평은 일시적, 거짓 화평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평은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하나님 자신이 먼저 시작하십니다. 그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화평을 통해 자신이 죽어 주심으로 삼위의 하나님이 도우셔서 인간과 하나님이 화평하게 된 것입니다. 이 세대는 악하고 음란하기에 자기 힘으로는 화평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북한의 성도들은 옛날 카타콤의 믿음을 이어가며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이루어질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데, 고난 중에 영광을 맛보는 평화를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통이 클수록 화평의 깊이와 넓이가 커집니다. 아무리 육이 다 무너져도 무너지는 것만큼 영이 세워지고, 영이 세워지는 실체는 화평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평화가 없으면나 자신의 화평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당연히 이웃과의 화평도 없습니다.
둘째, 갈릴리 나사렛 예수로부터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그 화평의 복음을 갈릴리에서부터 전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이방 땅 같은 흑암의 갈릴리, 다 무시하는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갈릴리는 열왕기상 9장에서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마치고 건축의 자재와 기술 등 모든 것을 도와준 두로왕 히람에게 그 대가로 준 땅으로, 무가치한 변방의 땅이었습니다. 히람이 기분이 나빠서 돌려주며 가불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런 가불 땅이 모두에게 무가치한 것 같아도 하나님의 소유이며, 가치를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땅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천하보다 귀한 구원의 약속이 그 땅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가불 땅에 예수님이 오셨고, 예수님은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화평의 근거는 이렇게 내가 낮은 곳에 가는 것입니다. 가불같이 나의 고난이 무가치해 보이지만 보석처럼 끼고 있으면 약속의 땅이 된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히람도 솔로몬도 약속의 땅 가불을 볼 눈이 없었지만, 다윗의 기도로 이 자격 없는 솔로몬을 하나님이 은혜로 지켜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가불 땅을 무가치하다고 돌려보내게 하시고, 그 자리에 있게 하셔서 빼앗기지 않게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택자이고 조상의 기도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100% 악하고 음란한 죄인이기 때문에 그곳에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이 하셨습니다란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가불인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복음이 두루 전파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화평을 이루는 예수님의 방법입니다. 진정한 화평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셋째,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칩니다.
예수님의 모든 능력은 기름 붓듯 부음 받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공생애 기간에두루 다니며 착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바로 뒤이어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치신 일이 나오는데, 이것은 착한 일속에 영 육 간의 질병 고치는 것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육체적인 회복뿐만 아니라 사단의 세력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었습니다. 38절 마귀에게 눌렸다는 표현은 야고보서 2장 6절에서부자가 가난한 자를 억압하는 것과같은 단어로 쓰였습니다. 마귀가 돈을 좋아하고 부자가 돈으로 압제하는데, 예수님이 거기에서 사람들을 해방되게 하셨습니다.
부모와 자식, 부부간 이혼과 재혼 등 수많은 사연은 다 돈과 음란이 엮인 것을 보게 됩니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인데, 마귀에게 눌린 자 중 가장 힘든 사람들이 거짓의 사람들입니다. 거짓은 마귀의 가장 중요한 사역 중 하나이고, 거짓의 조종자는 마귀이고 악한 영입니다. 악의 본질은 자신의 죄나 불완전을 의식 못 하는 게 아니라 이를 직면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거짓의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직면하는 대신 다른 사람을 공격합니다. 이렇게 마귀에게 눌린 자는 겉으로는 교양 있고, 침착하며 합리적으로 위장해도 성령의 화평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삽니다. 이것은 심각한 질병입니다. 내 속의 모든 거짓을 예수님이 고쳐주실 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는 화평을 누릴 길이 없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한 집사님이 어릴 적 외삼촌 때문에 입은 화상으로 우울한 유년기를 보내고, 이런 육신의 장애가 정신적 장애를 불러와 결혼에도 실패하고 온통 피해 의식으로 쌓여있을 때 이단에 들어가서 그 상처를 위로받았다고 합니다. 이단에도 오래 있었고, 11년간의 동성애로고침 받고 돌아오기가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배가 회복되니까 동성애가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엄청난 죄임을 알고 회개하고, 동성애가 죄라고 담대히 외치며 예수님을 증거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야곱이 외삼촌에게 속아서 수년간 일했던 말씀통해 40년 만에 외삼촌을 찾아가는 적용을 했습니다. 화상으로 인해 죽도록 미워했던 걸 용서 구하고 화해한 후용서 못 할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 마음을 선물로 받고, 수영복도 입게 됐고사람들을 의식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됐다고 합니다.이렇게 자신을 직시하고 목장에서 솔직히 나누며 직면하고 가니하나님이 마귀에게 눌렸던 동성애와 피해 의식을 고쳐주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성령의 평화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