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성장]
사도행전 9:31
오늘 본문 31절은 교회와 개인 모두의 성장 비결이 됩니다. 힘든 이 시기에 여러분들 모두 영육 간에 성장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성령의 성장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루저의 경험을 해야 합니다.
본문은 그리하여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 믿는 사울을 집요하게 죽이려고 하니까 형제들이 사울을 다소로 보낸 뒤에,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갔다는 본문 내용이 뜬금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계속 살펴본 사도행전은 핍박이 오고 흩어졌을 때 오히려 교회들이 든든히 서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하여는 성령님의 문법입니다. 사울이 다소에 있어도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는 성장했습니다. 회심 후 사울의 교제권이 유대인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바뀌었듯이, 믿은 후 성령의 성장을 하려면 친구를 정확히 선택해야 합니다. 사울이 친구가 없는 것 같았지만 결정적일 때 살려준 사람은 사울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주의 일을 할 때 마음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복음으로 낳은 사람들입니다. 사울이 드라마틱하게 회심해서 전도했는데 계속 살해의 위협을 받으니 아라비아도 갔다가 다소로 보내졌습니다.
사울은 워낙 똑똑한 데다가, 주님을 만났기에 설득력도 대단하니 가만히 있어도 드러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울에게 하나님은 믿는 걸 드러내지 말고 버려진 자, 죽은 자처럼잊힌 채로루저로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마어마한 훈련입니다. 사울은 어디서 쓰임 받을지 전혀 알 수 없는 채로 하나님과 독대 하면서 외로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이렇게 거의 16년간 자기와 싸우는 시간이 있었기에 로마서, 갈라디아서 등 신약의 3분의 1이 넘는 서신서를 쓸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사울이 다소에 남겨진 것은 절대 하나님의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둘째, 평안한 것입니다.
평안과 성장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고난이 해석되어야 해결이되어 평안을 경험하고 성장합니다. 살기가 등등했던 사울의 입술이 예수 이름으로 가득하게 되니, 한 사람의 변화가 평화를 이루는 씨가 되었습니다. 박해가 계속되는데 교회가 평안하다고 하니 내용연결이 잘 안 되는 것 같지만 그것이 영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십자가 없는 평안과 행복은 일시적이고, 평안은 십자가 은혜로만 가능한 성령의 역사입니다. 당시 로마의 칼리굴라 황제가 자기의 초상을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에 놓고 숭배하라 명하니까, 유대인들의 핍박이 잠시 멈췄습니다. 박해받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육체적 평안함이 잠시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숨 고르기 하면서 더 많이 뛸 생각을 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시의 평안함이 오면 핍박이 완전히 끝난 줄 알고 신앙생활을 쉬려고 하며 흘러 떠내려갑니다. 우리 인생에 오는 박해, 부흥, 성장은 모두가 하나님의 시간이기 때문에 안식의 시간도 잘 지내야 하고 박해의 시간도 잘 지내야 합니다. 평안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로만 가능하며 인간의 한계성을 알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평안함이 옵니다. 우리들교회가 수많은 사건 속에서도 평안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죄인이라는 고백이 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을 해도 맞아요. 제가 죄인이에요. 제가 잘못했네요.라고하니 지옥을 안 살고 평안한 것입니다.
셋째, 든든히 서가는 것입니다.
평안해야 든든히 서갑니다. 든든히 서간 다는 것은 집을 strong 하게 세운다는 뜻입니다. 교회가 집을 잘 세운다는 것은 말씀의 기초 위에 세우는 것입니다. 나를 살리는 회개처럼 나를 살리는 말씀이 되려면 나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읽어야 그것이 말씀의 기초가 됩니다. 나의 죄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이 나의 이야기가 되지 않으면, 성경은 나를 죽이는 율법 책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들 교인들은 큐티하며 목장에서 말씀으로 인도받다 보니 삶이 성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실수할 때를 보면, 꼭 목장에 안 묻고 큐티도 자의적으로 하고 욕심대로 했을 때입니다. 우리가 평안해서, 모두가 잘 되어서 든든히 서가는 것이 아닙니다. 일이 터지면 말씀 안에서 자신의 죄를 보기 때문에 평안함이 오고 든든히 서갈 수 있는 것입니다.
넷째, 주를 경외함입니다.
성령의 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를 경외함입니다. 주님을 경외한다는 일차적인 뜻은주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두려운 만큼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 뿌려진 씨가 이렇게 내적 외적으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주를 경외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두려워하기에 성령의 위로가 따라오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감추어진 경륜은 성자 하나님의 자궁의 낮아짐으로부터 시작하지만, 성령하나님이 효과적으로 도와주시는 것이 바로 성령의 후원이고 위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들에게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외모로 사람을 보게 되고,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무시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외하는 사람만이 피차 복종하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해서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런데 두렵기만 한 것은 기복신앙이고, 자기의 유익 때문에 두려워서 교회에 가고 신앙생활을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안함을 주십니다. 이런 평안함이 있었기에 사울이 13년간 다소에서 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제 너무나 가슴 아픈 기도 제목을 들었습니다. 새 건물을 좋아하는 큰딸 때문에우리들교회에온 후, 가식 없이 솔직하게 말씀 나누고 예배드리는 모습이 좋아서 계속 다니게 된 한 집사님이 13년 만에 기적같이 늦둥이가 생겨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백일이 지난 서진이가 뇌종양 판정을 받았습니다. 수술은 위험해서 집으로 데려왔는데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고 합니다. 어제 유아 병상 세례를 받은 서진이가 종양으로 머리가 부었지만, 너무너무 예쁘고 우유도잘 먹는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고자 했지만 그리하여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교회가 되었듯, 서진이네도 그리하여 성령의 성장을 하는 믿음의 가정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함으로 그 말씀을 지키며, 성령의 후원 가운데 위로와 격려를 받는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