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통치]
행 7:9-16
창세기 12장은 한 나라의 요소인 국민, 영토, 주권이 다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주권이 주권이 되려면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요셉이 최대 강대국 바로의 총리를 하게 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에는 통치개념이 있다는 것을 요셉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종노릇을 해도 성령의 도움으로 때마다 세상을 잘 떠나게 되면 하나님의 통치 성령의 통치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성령의 통치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시기심을 겪어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씨가 이방 땅에서 나그네가 되어 종살이할 것이라는 사실은 요셉이 애굽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됨으로 스데반은 아브라함 이야기에 이어 곧바로 지금 요셉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고 형제들이 절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장차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꿈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메시야 꿈으로 알지 못한 형들의 시기로 애굽에 팔려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형들의 시기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애굽의 요셉과 함께 계셨다고 오늘 표현합니다. 스데반이 요셉의 예를 든 것은 요셉의 고난과 영광이 바로 그리스도의 모형이었기 때문입니다. 산헤드린 종교지도자들과 유대인들로 예수께서 메시아이심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성경 어디를 읽더라도, 특히 구약을 읽을 때 항상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며 사백 년이 지나야 네 후손으로 약속의 자손이 되게 하시겠다는 그 약속의 이루어짐이 시기로 시작했는데 그것이 민족의 구원이 되었습니다. 시기가 없다고 좋은 게 아니고 있다고 나쁜 게 아닙니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형들의 시기는 반드시 있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시험을 받아도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사단의 괴롭힘을 당하고 자기 자신에게 괴롭힘을 당하는데 이왕이면 남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게 제일 좋은 시험입니다. 남들이 나를 괴롭힐 때 이게 승화가 되어서 영적 자식을 더 많이 나을 수 있는, 성령의 통치를 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미성숙해서 시기를 유발했습니다. 시기를 겪어내야 하지만 유발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를 잘 알아야 합니다.
둘째, 종노릇을 잘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성령의 통치가 나왔습니다. 요셉을 그의 환난에서 건져내셨을 뿐만 아니라 영예로운 자리에 세우셨습니다. 10절 말씀 구절에서 요셉을 애굽 총리로 임명하고 그의 궁전과 애굽 나라 전체를 다스릴 권한을 부여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도 이런 통치권을 주시게 되면 주인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예수를 믿으면 아랫자리에서도 주인의식을 가지고 안 믿는 사장을 통치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비결은 종노릇을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종노릇을 잘하니 온 집안과 나라의 통치자로 세우시고 온 교회의 통치자로 세우셨습니다. 환난에서 건짐 받는 것은 종노릇 잘하는 것과 동의어입니다.
셋째, 험악한 인생을 살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기 위해서 애굽과 가나안 온 땅에 흉년이 같이 들어야 합니다. 흉년이 들지 않았다면 형들은 결코 애굽에 갈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이 있는 게 아니고 겸손한 환경이 겸손한 것입니다. 요셉의 친속이 바로에게 드러났다고 했는데 큰 흉년 때문에 야곱이 바로에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구속사의 중심은 더 험악한 세월을 겪어낸 야곱입니다. 요셉은 이 야곱을 소개하기 위해 형들의 시기를 인하여 애굽에 가서 총리를 하게 하신 것입니다. 험악한 세월을 살아온 야곱이 바로에게 나아가게 되었는데 바로가 야곱을 축복하는 게 아니고 험악한 인생을 산 야곱이 세계 최고 강대국의 바로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통치개념입니다. 내가 어떤 형편없는 인생을 살았어도 하나님을 믿고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 확실해지면 어떤 사람도 축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성령의 통치입니다.
넷째, 매장지 신앙이 확실해야 합니다.
야곱이 애굽에서 죽었지만, 아들들에게 자기 장례를 가나안 땅에서 치러 달라고 유언을 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50장에 보면 그 유언대로 말할 수 없이 화려한 장례식이 얼마나 대단한지 천국 가는 길을 보여주며 전도한 것과 같습니다. 성령의 통치를 보여주기 위해서 야곱의 장례식을 치러주기 위해서 요셉이 총리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은으로 값 주고 산 최종 목적지인 막벨라 굴은 사라의 매장지입니다. 사라는 예수님이 오시는 헤브론 약속의 땅에서 죽었습니다. 사라를 통해 약속의 매장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아브라함은 창세기 23장에서 값을 치르고 땅을 샀습니다. 천국 도성을 바라보고 아브라함이 사라의 매장지를 사고 나서 이삭에게는 자기의 소유를 주고 서자들에게는 재산을 주고 죽었습니다. 재산을 다른 형제가 다 가져간다고 해도 나는 이 고난을 통해 예수 잘 믿고 내가 가는 천국에 오면 소원이 없겠다는 이 매장지 신앙을 이삭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약속의 땅은 이 세상의 땅이 아니라 천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백 년이 지나고 나서 끊어질 듯해도 이 매장지를 기억하고 요셉의 죽은 뼈가 산 사람 이백만을 인도합니다. 요셉의 해골의 역할은 아무리 총리였어도 결국은 애굽이 본향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역할입니다. 내가 돈 주고 값 주고 사야 할 것은 오직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자식들에게 돈을 남겨주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주의 일을 하고 좋은 일을 하고 갔을 때 그것이 자식들을 위해 값을 치른 은 사백 냥입니다. 몇 주 전 아내가 나와서 간증을 했는데 오늘은 그 남편의 나눔입니다. 이혼하고 지금의 아내와 좋아서 결혼했습니다. 후회는 없지만 우리들 교회 말씀을 들으며 회개가 되어집니다. 아이들의 약속의 땅을 생각할 때 불륜으로 한 재혼은 잘못된 것이고 서로의 잘못된 선택임이 서로 간에 인정되었습니다. 전처와의 자녀들이 있는데 관계 회복이 어렵습니다. 지금 아내와 아들을 입양했는데 이 아이가 무뇌수두증 뇌 병변 일급입니다. 이 아픈 아이를 통해 많은 은혜를 경험하며 아이는 이미 그 삶을 통해 선교사적인 사명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지금은 그저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아이는 천국백성으로 우리 모두를 하나님 자녀로 만들기 위해 보내주신 선물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통치하시는 것이고 이 마음을 하나님이 알아주실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