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마태복음1:18-25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건은 내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100% 죄인인데 이 죄에서 구원할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처럼, 예수님의 나심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입니다. 예수가 여러분을 구원할 그 이름이 되길 간절히 바라며, 오늘은 죄에서 구원할 자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성령으로 잉태된 사건이 있어야 합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사건을 두고, 천사가 무서워하지 말라고 한 것을 보니, 이 일이 무서운 일인가 봅니다. 육신으로는 아브라함과 다윗 자손으로 내려왔지만, 성령의 통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우리도 성령으로 잉태되지 않으면 결코 구원될 수 없습니다. 창조주 예수님이 잉태 라는 수단을 통해 시공의 제약을 받는 것처럼 성령으로 잉태되는 사건은 시공의 제약을 받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내 마음대로 편하게 쓰면서 성령이 오길 기대할 수 없습니다. 무섭더라도 성령으로 잉태된 사건은 예수님이 오시는 사건이기 때문에,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지? 왜 이 시간, 이 공간에서 이 사람을 봐야 하지?' 하면 안 됩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어 낮아지고 무섭고 두려운 시간과 공간 속에 잘 있어야 예수 그리스도가 오십니다.
둘째, 세상은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를 가만히 끊고자 합니다.
성령으로 잉태된 무서운 사건을 마리아는 믿음으로 적용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바라며 자기 배 속에 잉태된 시간과 공간을 지키고자 합니다. 하지만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가만히 끊고자 합니다. 이는 교양 넘치는 사람과 교제하다 혼전 임신했는데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가만히 해치워!'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처녀가 임신했으니 돌에 맞아 죽을까 걱정하며 조용히 처리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마리아를 위하는 것인데, 의로운 요셉은 해석이 되지 않습니다. 반도체를 제작할 때 쓰는 금실의 순도를 100%로만들 수 없듯이 내 힘으로 착해지려 하면 절망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온 우주의 에너지를 다 모아도 스스로 깨끗해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무한한 에너지로 유한한 우리를 회복시키십니다. 집집마다 수많은 사건이 있지만 힘든 자녀와 남편을 가만히 끊으면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셋째, 성령의 잉태는 한 번 더 생각해야 합니다.
요셉이 잘한 것은 이 일을 한 번 더 생각한 것입니다. 요셉이 왜 끊어야 하지? 하며 생각할 때 주의 사자가 현몽해서 성령으로 된 자라고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사탄도 하나님도 생각 속에 역사합니다. 사탄은 끊고 죽이는 생각을, 하나님은 생명을 낳는 생각을 주십니다. 한 번 더 생각해서 예수님이 오시고, 그 가정과 인류 역사에 구원을 가져왔습니다. 입양한 아이가 무뇌아 판정을 받는 무서운 사건 앞에서 한 번 더 생각해 성령의 잉태된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각자 이혼 안 하고 죽지 않아 구원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야말로 얼마나 생각하고 궁리하셔서 마리아와 요셉에게 이 사건을 감당케 하셨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생각과 적용을 다 보고 계십니다. 한 번 더 생각하니 그 생각 속에 응답을 주시고 나타나 주십니다.
넷째, 예수를 낳기 위해 성령의 잉태는 나의 신분을 알게 해주십니다.
비천한 목수 요셉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시고, 이것은 성령으로 잉태된 사건이니 아내 데려오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처방을 내려주셨습니다. 어느 한 목자님은 23년 동안 다른 여자와 살다 버림받고 병들어 돌아온 아버지를 3년간 간호하며 복음을 전해 아버지가 영접하시고 천국에 가셨다고 합니다. 마지막까지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했던 어머니와 온 집안 식구가 아버지를 용서했습니다. 가만히 끊지 아니하고 성령이 잉태되어 예수 오시는 사건으로 적용한 이 분이 예수 믿는 대단한 다윗 자손입니다. 우리는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되며 내 신분은 예수님을 낳는 인생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을 믿는나이기에 어떤 사건도 하나님이 쓰실 것 믿어야 합니다.
다섯째,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보다 죄에서 구원할 자이십니다.
예수님은 티끌로 오셔서깜깜한 뱃속에서 열 달을 지내시며 시간과 공간에 순종하셨습니다. 아무 소망 없는 깜깜한 우리 집안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병든 아버지, 속 썩이는 자녀, 바람피우는 배우자와 같이 깜깜하고 티끌같이 낮아지는 사건들로 예수님이 우리 집안에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자궁 속에서 열 달을 견디셨듯, 우리도 그 힘든 시간을 잘 견뎌야 합니다. 예수 믿는 것은 죄에서 구원받고 자기 죄를 깨달아 회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난과 질병에서 구원할 자가 아니라 죄에서 구원할 자이십니다. 예수님은 혁명가도 빈민 운동가도 아닌 죄의 장벽 제거하기 위해 처녀의 배에 잉태된 구원자이십니다.
여섯째, 그러므로 예수의 나심은 말씀을 이루는 사건입니다.
성경을 통해 수많은 약속을 주셨는데, 우리가 약속을 신뢰하고 갈 때 무서운 사건들이 말씀을 이루는 사건이 됩니다. 말씀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봐야 합니다. 환경을 보지 말고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보라고 하십니다. 임마누엘의 예언은 이사야 7장에서 전쟁의 패배를 두려워하는 악한 왕 아하스에게 처녀가 아들을 잉태할 것이라는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 말씀을 이루는 것이 표적이고, 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이 더 기적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입사도 결혼도 고난이지만 거기서 이기는 것과 이 고난을 통해 예수 믿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기적이겠냐 하시는 것입니다.
요셉이 마리아를 데려오는 힘든 적용을 했어도,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힘든 적용을 했어도 아들이 나오기까지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말씀 듣고 깨달았어도 한 생명이 태어나 구원받기까지 내가 은혜받은 것으로 다른 사람을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다말은 수치와 조롱을 받으면서도 예수님 때문에 시아버지와 동침해 아이를 낳았고, 이 아이가 예수님의 직계 조상이 되었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된 사건을 무서워하지 않고 데려오는 적용을 할 때, 다윗의 자손임을 알아 말씀을 이루는 사건이 될 때, 우리 집에 예수님이 나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