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두려움]
행5:1-11
성령의 공동체는 은혜가 있지만 이 땅은 공중권세 잡은 자와의 싸움이기에 그 은혜로 영적 전쟁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이 전적으로 보호하셨지만 사랑의 하나님만 알면 안 되고, 공의의 하나님도 알아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두려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시작되는 이때에 성령의 두려움을 오늘 알려주십니다.
첫째, 성령을 속이고 감춘 것을 드러내게 하십니다.
성령의 은혜 공동체 중심에 바나바가 있습니다. 그는 백성들을 위로하기 위해 자신의 소유를 팔아 회개하고 돌이킨 지체의 믿음을 돕고자 했는데, 아나니아는 바나바가 너무 존경을 받으니까 경쟁심으로 헌금을 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초대교회 안에서 사탄이 충만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날마다 전신갑주를 입고 사탄을 물리쳐야 하는데, 팔 때는 성령의 은혜로 판 것 같은데 돈을 보니까 순식간에 자기 안에 있는 성령을 속였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아나니아의 땅이 아니라 아나니아의 영혼에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나님께 거짓말을 했습니다. 탐심은 우상숭배입니다. 사탄은 광명한 천사로 가장해서 경건의 모양이 있기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사탄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사랑이 없기에 드러납니다. 사탄이 가득하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괴로움없이 악을 행하는데에 담대합니다. 그래서 약간의 부정과 거짓이 개입되더라도 그 목적과 결과만 좋으면 그만 아니냐는 생각이 가득 찹니다. 성도에게 제일 위험한 때가 승리의 순간입니다. 내 속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고, 예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어떤 작은 유혹도 이길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신에게 속해있는 재산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권세를 사탄에게 내어줌으로써 그 안에 거짓을 두게 되고 만 것입니다. 아나니아의 혼이 떠났으니 완전한 심판입니다. 이 일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한 것은 이것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정하고, 속지않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두려움인 것입니다.
둘째, 외식을 드러나게 하십니다.
정말 좋은 남편, 부인이라면 내 배우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나? 이런 걸 알고 점검해야 됩니다. 부부중 한 사람이라도 성령의 두려움이 있어야 되는데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배경에는 외식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하는 외식보다 없는데서 외식하는 게 더 무서운 것임을 오늘 보여주십니다. 말씀이 들어가고 아는 게 많다 보니 안해야 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배울수록 외식이 늘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외식의 끝판왕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물질이 없으면 이러지 않는데 물질이 생기니까 감추게 되었습니다. 어떨 때는 복종의 언어를 써야 하지만, 남편과 아내가 사탄노릇을 하고 있으면 눈물을 흘리며 말씀의 검을 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 은혜로 구원을 받지만 그 다음에는 우리에게 이루어가야 할 성령충만이 있습니다. 나의 거룩을 위해서 아픔이 있습니다. 그것을 기쁘게 여기지 않으면 교회처럼 외식과 가증이 드러나는 곳은 없습니다 아나니아도 초대교회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십자가 믿음으로 함께가 아니면 정말 비참합니다. 무조건 순종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순종을 하되, 진리의 그릇인 우리 태도가 배타적이고 독선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예뻐야 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 진리는 타협하면 안 된다는 본질이 있어야 됩니다.
셋째, 주의 영을 시험한 것을 드러내십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는 결국 주의 영을 시험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근본적인 불신과 패역을 가리킵니다. 성령을 속인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즉각적인 심판은 바로 하나님께서 성령을 속이는 행위를 얼마나 미워하시는지, 초대교회에 성령이 얼마나 강력하게 역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십니다. 삽비라 역시 즉각적인 심판이 집행되었습니다. 원문에는 큰 두려움을 주어로 사용해서 이 두려움이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이 사건은 두려워하고 찔림을 받으라는 일벌백계의 차원입니다. 여리고에 들어갈 때도 외투 훔친 아간을 진멸하고 거기를 아골 골짜기로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춘 게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인데 이것 때문에 내 죄를 보고,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보면서 회개해야 되는데 헌금하고 죽은것만 무섭습니다. 하나님의 소유로 드리는 것이 아니고 내 것, 아까운 것을 무서워서 기복적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같이 행하지 않아서 우리한테 심판이 안 오나요? 하나님이 참아주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속이면 안된다고 성령의 두려움을 가지라고 주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심판 받는 것을 볼 때마다 내가 회개해야 됩니다. 성령의 두려움은 결국 하나님을 존경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공동체 고백은 고스톱으로 치리받은 목자님의 목장 나눔입니다. 새벽에 대출상환 문자를 아내에게 들킨 목원과 그 돈을 갚아야 돼서 억울해 하는 아내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 문자를 들킨게 축복인 거고 목자님 본인도 바람 사건을 새벽에 들켰고, 공인인증서를 넘기고 아내에게 경제권 준 뒤 용돈받는 적용을 했듯이 습관은 잘 안고쳐지니 무섭게 칼같이 이런 적용하라고 하셨답니다. 귀찮게 하지 말고 사기를 쳐서라도 돈만 가져다 달라는 아내의 이기적인 모습과 이런 모습에 또 상처를 받는 남편, 둘이 똑같기에 더불어 감추어 놓습니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처럼 주의 영을 시험하고 성령도 속이고 외식도 하지만, 이렇게 공동체에 붙어 목장에 와서 얘기하니까 살아나고 성령의 두려움으로 하나씩 가지를 쳐 나간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령의 두려움은 성령을 속이고 감춘 것을 드러나게 하십니다. 외식과 주의 영을 시험한 것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정직하지 못하고 감추는 것이 많아서 늘 두렵지만, 성령의 두려움을 느끼면 세상에서는 두려움을 안 느끼게 됩니다. 성령의 두려움을 가질 때 이 땅에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