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기적]
사도행전 3:1-10
성령이 충만하여 방언이 터지니 성령의 설교를 하게 되고, 유대인이 이에 반응하여 성령의 공동체가 만들어집니다. 또한, 성령의 공동체에 속하니 가치관이 변하고 예배와 목장 오면서 말씀을 사모하게 되니 이것이 기적입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에 뿌리를 내리면 기적의 역사는 늘 일어납니다. 오늘은 문자 그대로 못 걷는 자가 걷게 된, 성령의 기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여전한 방식의 기도입니다.
날마다 구원받은 사람을 더하게 하시고 온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을 때 베드로가 성전에 기도하러 갔습니다. 칭찬받을 때가 위기이고 이때가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성경의 구시는 오후 세 시입니다. 유대인의 관습으로 하루 세 번 하는 기도 중 아침 여섯 시,저녁 여섯 시 기도는 해도 오후 세 시 기도까지 성전에 올라가서 하기는 힘든 시간입니다. 사도의 가르침으로 시작된 성령의 공동체는 기도로 이어집니다. 성령의 선물을 받으니 충만해져 기도하고 싶어지고, 형식적 기도가 아닌 진실한 기도를 하니까 기사와 표적 많이 나타나게 됩니다. '성전에 올라갈새'라는 한 번 올라갔다는 것이 아니고, 계속 올라갔다는 미완료 과거로 계속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때마다 성령의 가르침대로 기도하면 담대하게 문제를 풀어가게 됩니다. 2절에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자가 크고 아름답게 지어진 문 앞에서 성전을 등지고 세상을 향해서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해 앉아있다고 합니다. 영적으로 보면, 날마다 교회에 오지만 성전을 뒤로하고 끊임없이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며 세상에 구걸하는 것을 말합니다. 몸만 교회에 오니까 영적으로 성전에 들어오지 못하고, 화려한 성전에 기생하며 사탄에게 구걸하며 살아갑니다. 세상을 완전히 끊어내기는 힘들지만, 목장에서 나누고 들어주고 처방을 해주니,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어 구걸하는 것도 점점 끊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둘째, 급한 일보다 중요한 구원의 일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다 앉은뱅이를 보았습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도 중요하지만, 사람에 대한 사랑과 영혼에 대한 관심이 먼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앉은뱅이는 노예근성으로 늘 무엇을 얻을까 하며 돈 통만 바라봅니다. 교회를 다니며 바라기만 한다면 십자가 설교가 들리지 않고 변화가 없고, 이타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가 구 시 기도 시간에 도와야 할 일이 생겼는데, 기도하는 일과 도와주는 일 중에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까요? 그것은 때마다 다르고 믿음의 분량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영혼 구원을 중요시하고 도와주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섬길까와 섬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 섬길 부분이 생각나고, 섬기기로 작정하면 쉽습니다.
셋째, 내게 있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베드로는 앉은뱅이에게 적선이 아니라 불구인 몸을 향해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합니다. 그가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은과 금은 없어도 줄 것만 있는 자임을 보여주며, 예수 이름만 있으면 구걸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쳐 줍니다. 나사렛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선포하니 발과 발목이 힘을 얻었습니다. 나사렛이란 지명을 붙인 것은 사람들이 나사렛을 천하게 여겼으나 예수님으로 인해 영광된 곳이 되었고, 잘 사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셔서 높아지신 예수님 간증부터 베드로 자신의 간증까지 아우르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단회적), 계속해서 걸을지어다(미완료)라고 선포한 후, 말만 하지 않고 손을 잡아 일으켜 복음으로 힘을 얻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앉은뱅이가 걷지 못한 40년이 길어 보이고, 그 인생을 살게 하신 하나님이 냉정해 보이지만, 영 육 간에 기다려야 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영 육 간에 못 걷는 사람이 많은데, 영적인 앉은뱅이가 일어나기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전에 데려만 오면, 주님이 먼저 찾아오시고 만나주시고 이해타산으로 줄 것 없어도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날 일이 있습니다. 발과 발목에 힘을 얻도록 같이 있어 주고 손잡아주고 복음으로 힘을 얻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넷째, 찬송의 기적입니다.
이 사람이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한 것이 하나님을 찬송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가장 큰 기적인데,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해야 제대로 된 감사가 나오고, 이것이 성령의 기적입니다. 앉은뱅이였기에 주님을 만나게 되었으니 앉은뱅이였음에 감사하고, 낫게 해 주심과 성전에 데려다준 사람에게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평생 성전을 등지고 구걸하다가 성전으로 들어갔는데, 원문은 '성전으로 들어가면서'가 주동사이고,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찬송하니'는 분사입니다. 걷고 뛰고 찬송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성전에 들어간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나아서 걷고 뛰어서 감사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배 회복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은금을 공급하는 곳이 아닙니다. 이런 복음을 선포해야 하고, 그 복음이 있어야 내 현재 이유를 알게 됩니다. 앉은뱅이는 구걸 밖에 할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는데, 걷고 뛰게 되니 직업이 없어졌습니다. 엄청난 훈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났기에 다시 시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배가 회복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최종적인 목적이지 걷고 뛰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공동체 고백입니다. 대학 졸업 후 6년 동안 방 밖으로 나오지 않던 딸과 우연히 거실에서 마주쳐 얘기 좀 하자 했더니 딸은 반소매 차림에 휴대폰을 두고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딸을 찾아 무릎 꿇고 성장기에 너무 억압해 미안하다고 사죄를 했습니다. 목자님과 계속 카톡을 주고받으며 딸에게 세 가지 제안을 했는데, 함께 저녁 같이 먹기, 카톡으로 대화하기, 일주일에 한 번 정신과 치료받기였습니다. 딸은 모든 제안을 받아들였고 함께 밥 먹고 대화하는 일상적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기적은 대단한 성공이 아니라 일상의 복을 누리고 걸어서 교회에 가는 것입니다. 여전한 방식의 기도와 급한 일보다 중요한 구원의 일을 하며 나사렛 예수 이름을 찬송하는 모두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