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공동체]
행 2:42~27
건강한 교회(공동체)를 만나면 인생의 방황이 끝난다는데 오늘은 이 세상의 대안인 성령의 공동체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오로지 경건생활에 힘쓴 공동체입니다.
성령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여 세례받고 죄 사함 받고 성령의 선물을 말씀으로 받은 사람들이 모여 성령의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초대교회의 탄생인 이 성령공동체에서 어떻게 양육을 받으며 자라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42절 '힘쓰다'의 헬라어 동사는 스스로 무엇에 헌신하다라는 뜻으로 원문에서 보면 이 단어를 맨 앞에 써서 다음에 오는 가르침, 교제, 성찬, 기도를 다 전념했다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그렇게 경건생활에 힘쓰면서 첫째로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합니다. 앞서 어찌할고(37절)는 원어로 그 뜻이 말발굽으로 가슴을 치는 고통입니다. 성경을 지식으로 받고 회개하지 않고 한 일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지만, 내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어찌할꼬의 아픔으로 죽을 것 같아 살고자 가르침을 받고 싶어졌습니다. 사건 속에서 예수님의 시각으로 보고 듣고 이 세상에서 유턴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가르침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여러 사도들이 가르쳤어도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삶과 죽음, 부활과 높아지심, 회개를 계속해야하는 필요성,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성령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가르쳤기에 순수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2) 성도의 교제
교제(koinonia)는 성경 전체에서 특별히 강조되고 있는데 정신적 교제뿐 아니라 물질적 교제이기도 합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에 교회를 구성한 성도들은 같은 신앙 안에서 서로 영적인 교제를 나누고, 물질적으로 서로 도왔습니다. 말씀의 가르침에 따라 말씀을 삶에 적용해서 나누는 훈련은 균형을 잡아주어 성령의 교제가 되게 합니다.
3) 떡을 떼었습니다.
떡을 떼다는 성찬을 나누는 것인데 성찬은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어주신 몸이고 보혈입니다. 우리가 매주 목장에서 나누는 식탁 교제가 예수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애찬과 성찬입니다.
4)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기도하다는 말씀에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향에 우리를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기도 제목을 나누는 것은 삶을 오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제와 성찬과 기도하는 것이 초대교회의 경건한 생활이었고, 이렇게 하다 보니 삼천 명이 더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혼란도 없이 말씀과 기도로 질서정연하게 성령의 공동체가 되게 하셨습니다.
둘째, 기사와 표적의 공동체가 됩니다.
초대교회에서 일어나는 부흥과 기사와 표적들을 실제로 목격하면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영적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참 위대한 성령의 공동체는 자꾸 다른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해야 하니까 신령한 사건이 계속 일어나게 됩니다. 무엇이 잘 해결되었다는 것보다 진짜 기사는 내 현재의 이유를 알고, 그것 때문에 내가 감사하니까 놀라서 기사가 되고, 말씀을 붙드니 표적이 되는 것입니다. 기사와 표적 중에서도 가장 큰 표적은 유무상통의 적용입니다. 재산을 강제적으로 공유하는 공산주의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돈이라는 것은 나를 통과해서 누군가에게 가야 하는데 이 유무상통이 성경에서 이때만 나온 것을 보면 성령의 공동체에서 가능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셋째, 모이기를 힘쓰는 공동체입니다.
기사와 표적의 공동체가 되면 모이기를 힘쓰는 것이 자연스럽게 됩니다. 성전에 모이는 것도 힘쓰지만, 집에서 모이는 것도 기쁨으로 모이는 공동체가 성령의 공동체입니다. 설레어서 가고 싶은 교회, 내 사모하는 공동체가 생겼습니다. 성령의 선물을 경험하면 다시 살아나고 높아지신 그리스도가 나의 주이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해서 더는 이 땅에서 보고 싶은 것이 없어집니다. 이 세상을 탈출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이 세상을 탈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탈출했어도 너무나 힘겹게 걸어가지만, 다시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몸에 밴 죄 때문에 회개할 것이 많지만 회개가 되니 예배가 사모되고 모이기를 힘쓰게 됩니다.
넷째, 날마다 구원을 더해가는 공동체입니다.
기쁜 일, 슬픈 일, 궂은 일, 화나는 일에도 날마다 모이면서 하나님을 찬미하니까 온 백성에게 칭송받는 일이 일어납니다. 혼자 가르침 받다가는 금방 신앙의 길에서 퇴보합니다. 말씀 공동체에 접붙여진 자는 백이십 명이 삼천 명이 되는 부흥처럼 생각과 마음과 가치관이 전부 다 성장하고 성숙해집니다. 십자가 가르침을 잘 받고, 영육 간에 교제를 잘하고 유무상통하면 저절로 등경 위의 불이 되어 비추는 삶이 되어 안 믿는 사람들이 빛을 따라오게 됩니다. 그러나 칭송받았다고, 삼천 명의 사람이 믿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대요.가 중요한 주제가 아닙니다. 잠시 후 베드로는 핍박받고 순교했습니다. 삼천 명을 더하게 하시는 것도 성령의 선물이고, 순교도 핍박도 성령의 선물입니다.
한 성도는 세상 모임을 즐기다 사기와 부도로 빚쟁이가 되고 나서 예배의 자리에 나오게 되었는데 양육을 받고 말씀이 들려 공동체를 섬기며 아들을 전도하고자 했지만, 아들은 아버지를 생물학적 아버지로밖에 여기지 않는다고 했답니다. '맞다, 그래도 네가 일생 큐티하는 것이 아버지의 유언이다.'라고 전했더니 아들이 교회에 왔고, 그 후 아들의 결혼식에 하객들 앞에서 자신의 죄패를 나누며 생물학적 아버지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던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했습니다. 무시를 잘 당하면 이런 것들이 교제로 이어져서 등경 위 불이 됩니다.
각종 예배가 설렘이 되고, 물질이 나의 종착지가 아니라 통로가 되는 기사와 표적이 되어 등경 위 빛이 될 수 있도록 칭송과 핍박을 잘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