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
로마서 1:1
여러분은 자기소개를 어떻게 하십니까? 집안이나 학벌, 외모가 자랑인가요? 아니면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어서 주눅이 드십니까? 오늘은 이천 년 전 바울의 자기소개장이 어떠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바울은 자랑스럽게 자기소개를 합니다.
로마서는 음행의 도시, 고린도에서 기록되었습니다. 이 죄 많은 곳에서 로마서를 썼기에 로마와 고린도가 변한 것입니다. 복음이 변화시켰습니다. 복음을 전하려면 예수님을 소개해야 하고, 예수 믿는 자기소개를 잘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아주 자랑스럽게 자기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분입니다. 세상에서는 실패한 분 같지만, 그 예수님이 바울에게 자랑거리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났는지 안 만났는지가 모든 자랑 또는 염려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낮아지셔서 오신 성육신과 부활을 의미합니다. 그분이 나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 마음 가운데 예수님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전도의 기회가 열립니다.
둘째, 소개의 내용입니다.
(1) 파울로스, 바울입니다.
바울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파울로스’, 즉 작은 자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바울의 본래 이름은 사울입니다. 베냐민 지파인 초대 임금 사울의 후손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대통령의 가문인 것입니다. 사울의 이름은 ‘희망으로 하나님께 구하다’라는 뜻입니다. 상처가 많은 사람은 이를 악물고 모든 것을 구하고 쟁취해서 다른 사람 상처 주는 데 씁니다. 사울도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다소 시 출신이며 로마 시민권 등 모두를 구했지만, 결론은 세계적 설교자인 스데반을 돌로 죽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강권하심으로 주님을 만난 사울은 거듭난 후 ‘작은 자’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바울은 사울을 겪고 지나면서 인생이 헛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파울로스의 ‘파우오’는 ‘포기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바울은 거듭나기 이전 자랑거리들을 모두 배설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사울은 무엇이고, 누구입니까? 무엇을 지나고 겪으면서 작은 자가 되셨습니까?
(2) 둘로스, 종입니다.
바울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둘로스’, 종이라고 소개합니다. 자신이 작은 자라고 인식하게 되면 대인관계에서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천 년 전 로마의 종들은 노예로서, 그중에서도 가장 하위계급이 둘로스였습니다. 생사여탈권이 주인에게 있고, 중죄인으로 사형시키지 않고 부려먹을 수 있는 자, 이런 둘로스는 새 한 마리 값도 안 되는 노예였습니다. 그러나 이 둘로스보다 더한 비참함은 세상신분과 상관없이 영원히 죄에 매어 종노릇하는 것임을 바울은 알았습니다. 죄에서 나를 자유하게 해주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스스로 예수님의 소유가 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내가 자랑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면 나도 십자가를 지겠다는 삶의 결단입니다. 내가 그 예수님의 종이라면 상대방을 예수님으로 생각하는 것이 구속사입니다. “당신이 예수 믿기 위해서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기막힌 구원의 언어이며 구속의 언어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복음 때문이 아니라, 배우자의 경제력, 자녀의 성공을 위해 육신의 정욕에 매어 종노릇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3) 아포스톨로스, 사도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아포스톨로스’, 사도라고 소개합니다. 사도는 부르심을 받은 자, 보냄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작은 자로서 감당할 길 없는 은혜로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고백을 통해 바울은 마침내 사도가 되었습니다. 당시 전쟁이 나면 사도를 보내어 분쟁의 원인을 알아보고 타협점을 찾았습니다. 사도로 보내진 사람이 타협을 잘하면 전쟁을 막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타협이 안 되면 그 자리에서 적군의 사도를 죽였습니다. 사도로 가면 죽어서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생사의 소식을 가지고 달려오는 사도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은 만인 제사장, 만인 사도의 시대입니다. 우리가 전부 사도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바울의 자기소개 세 가지 파울로스는 라틴어원이고, 둘로스는 히브리 어원, 아포스톨로스는 헬라어원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 ‘유대인의 왕’이라고 각종 언어로 적혔듯이,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종으로 자처하고 가면 전세계공용어가 된다는 것입니다.
한 집사님은 30여 년 신앙생활을 하고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는데 수년이 지나도 부목자가 되지 못하자 사람을 못 알아본다고 다른 교회로 가려는 마음이 생겼답니다. 그런데 주일 설교(룻2:8~9)를 통해 여기 머무르라고 하시는 말씀이 정확하게 들렸고, 적용이 따르지 않는 삶을 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듬해 부목자가 되었지만, 또 수년이 흐르니 이젠 목자의 자리를 탐하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말하는지도 몰랐던 요한과 야고보도 주님 곁에 있었더니 주님의 잔을 마실 수 있게 해주신 것처럼 자신도 우리들공동체에 잘 붙어있어 구원의 일에 사용되기를 소망하셨습니다. 적용으로, 큰아이가 말이 안 되는 말을 해도 윽박지르지 않고 다섯 번 설명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솔직하게 자기 적용을 얘기하시는 것이 사도로 가는 하나의 디딤돌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소개의 목적입니다.
바울이 자신을 작은 자, 종, 사도로 소개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는 것은 내가 복음 속으로 뚫고 들어가졌다는 뜻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불가항력입니다. 배후에 나를 복음 속으로 밀치신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열심으로 달려가는 사울을 다메섹 도 상에서 쓰러지게 하신 하나님의 밀치심입니다. 사울을 바울 되게 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도로 세우시고, 그의 전도로 수많은 교회가 세워지고 이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복음을 듣게 된 것이 하나님의 밀치심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별된 삶을 산다는 것은 땅 끝까지 내려가서 죽는 것(고전4:9)을 뜻합니다. 복음 때문에 세상과 구별되게 사는 것이 부름 받은 자의 목표이고 이것을 사랑으로 깨닫는 자만이 분명한 삶의 목표를 가질 수 있습니다. 바울은 죽을 각오로 복음을 위해서 자기 삶을 드리는 자라고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삶의 이유이고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100년 전 금산리 용화마을의 가장 큰 부자였던 마방주인 조덕삼이 있었습니다. 그는 나라도 포기한 테이트 선교사의 헌신적인 종의 모습에 재물의 헛됨을 알고 자신도 그리스도의 종으로 헌신한 장로가 되었고, 마부였던 이자익을 목사로 키워냈습니다. 조덕삼은 자신이 전도한 마부가 세례받고 목사가 되고 총회장이 되어도 당시 차별과 시기와 수치를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은, 사도의 사명이 있고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자이고 종, 사도라는 자기 자신에 대한 소개가 확실하지 않았다면 이런 열매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자기소개장이 준비되기를 기도하십니까? 내가 참으로 작은 자이고, 예수그리스도의 종이고 사도라는 소개장을 가지고 간다면 참지 못할 일이 없고, 가지 못할 데가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이 밀치시고 뚫고 들어오셔서 나를 보내신 곳 어디에도 목숨을 걸고 갈 때 모든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