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일꾼]
골 1:21~24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한 순종이 우리들 교회와 공동체, 나라를 위한 사명으로 이어짐을 봅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우리들 교회에 채우기 위해 우리 각자가 복음의 일꾼 되어 구원을 위한 일에 헌신하길 바랍니다. 오늘은 복음의 일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전에’와 ‘이제’가 확실해야 합니다.
20절까지 바울은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그리스도 안에서 유지되며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음을 설명합니다.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존재이유이며 목적입니다. 21절에서 ‘전에’로 시작하며 ‘원수’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에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인간은 하나님을 멀리 떠날 뿐 아니라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함을 의미합니다. 죄인의 특징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는 것입니다. 교회 직분자인 분들께 공동체에 들어올 것을 권면하면, 혼자 기도원에 가거나 목사님 목소리 탓을 하거나 마음이 열리지 않아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면서 필요 이상으로 교회를 비난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들 교회가 불신자들이나, 교회를 다니나 구원의 확신이 없는 자들, 그리스도 밖에 있어 악한 행실에 빠진 문제투성이인 자들인 너희를 위해 헌신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가 세상적으로 잘 되는 것을 보여주는 정도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전에 악한 행실은 인생의 목적을 행복으로 두는 것이고 이제는 거룩인 것입니다. 참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흑암에 있을 때는 절대 하지 못했던 적용을 하는 것이 거룩한 삶의 특징입니다. 더디 가는 것 같아도 솔직한 고백으로 정직하게 사는 것이 ‘전에’와 ‘이제’가 확실해지는 거룩입니다. 가정마다 상처와 아픔으로 분열이 있지만, 말씀으로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를 알고 ‘전에’와 ‘이제’가 달라진 우리가 복음의 일꾼 되어 각 가정을 살리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은 ‘전에’와 ‘이제’가 확실한지, 인생의 목적이 행복인지 거룩인지 적용해보시기 바랍니다.
둘째, 공동체가 중요합니다.
나 홀로 믿음은 없습니다. 말씀대로 살았건 못살았건 너희 즉, 공동체에서 나의 믿음을 점검하고 들은바 복음이 더해질 때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제가 설교를 잘해서 치유가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를 통해 내가 얼마나 차별하는 죄인임을 직면하고 복음으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가는 과정을 천국 가는 그 날까지 지속하기에 가정이 살고 회사가 살고 나라가 사는 겁니다.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서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살기 위해 교회 공동체에서 날마다 죽는 것을 연습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슨 말만 들으면 ‘못해 먹겠어! 관둬! 갈라서!’ 하며 떠날 생각을 하지만, 자녀로, 엄마로, 아내로, 남편으로 ‘전에’와 ‘이제’가 확실해져 복음의 일꾼이 되어야 교회의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복음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 문제가 해결되는 것보다 먼저 예배 공동체와 말씀을 통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깨달아지는 것이 복음의 터 위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교회의 일꾼이 되기 전에 이미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까? 아직도 나 홀로 믿음인지 공동체를 즐기는지 적용해보시기 바랍니다.
셋째, 복음의 일꾼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워야 합니다.
십자가 고통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그 분의 몸 된 교회가 이 땅에 있는 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몸 된 교회의 머리 시고, 몸이 고통을 당하면 머리도 고통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1장8절 말씀으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 고난이 해결되고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몸 된 교회를 위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내 욕심 때문에 고난을 당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인해 죄 사함을 받고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면, 당연히 고난이 따라옴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흑암의 권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소한의 순종을 하는 것이 내 육체에 그리스도의 고난을 채우는 겁니다. 그것이 나를 위해 죽어주심으로 천국 가게 된 내가 지불해야할 대가입니다. 바울뿐 아니라 오늘날 모든 성도가 복음 때문에 당하는 고난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의 참여이고 남은 고난이란 하나님께서 고난의 분량을 정해놓으셨다는 뜻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내가 뭔가 된-돈이 벌리고, 애들이 학교 잘 가고, 승진한-다음에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안 된 것, 못된 것, 연약한 것, 부족한 것, 죄 된 것, 저주받은 것 등 무시 받고 약한 그 자리에서 전하는 겁니다.
여러분은 욕심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는지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예수님 때문에 담배를 끊고, 여자를 끊고, 남자를 끊고 각종 도박과 중독을 끊는 적용을 하는 것이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진 복음의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