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싸개]
사무엘상 25:1-44
오늘 말씀의 나발처럼 남의 분노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고, 거기에 말려들어 분노하는 다윗이 있습니다. 그 분노를 가라앉히는 아비가일이 있습니다. 상한 감정은 하나님의 생명싸개 속에 있어야 조절이 되고 보호됩니다.
첫째, 분노를 일으키는 총체적인 위기에서 보호해주십니다.
다윗이 사울을 용서한 시점에 영적 멘토인 사무엘이 죽습니다. 영적위기에 빠진 다윗은 사울을 넘어섰다고 생각하나 두려움이 임해 저 먼 아라비아 남단까지 갑니다. 다음으로 다윗에게 육적위기가 있습니다. 공동체 600명을 먹여야 하는데 양식이 없어서 이 육적 위기를 타계하고자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같은 유다지파의 부자인 나발을 찾아갑니다. 떡 다섯덩이 때문에 제사장 85명이 죽임을 당한 경험이 있기에, 미련한 나발에게 ‘내 부하는 너의 부하’라며 비굴할 정도로 겸손히 양식을 구합니다. 그런데 미련한 나발은 ‘다윗이 누구냐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며 무시를 합니다. 다윗은 그동안 사울에게 갖은 훈련을 받았음에도, 사단이 나발을 통해 분노를 일으키자 가장 힘든 정신적 위기까지 오게 됩니다. 나발은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것과 사울이 천천이고 다윗이 만만이며, 자기 부하들이 명백히 다윗에게 은혜 받은 사실을 알고 있는데, 왜 저렇게 다윗을 무시를 하나 생각해봐야 합니다. 부자인 나발은 믿음도 없고 구속사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기에 다윗이 두 번 다시 자기에게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나발의 무시는 당연한 것인데도, 다윗은 이해하지 못하고 분노하면서 그만 무너지고 맙니다.
둘째, 분노를 일으키는 자 앞에서 분노함으로 망할 다윗을 하나님은 건져주십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악을 선으로 갚았는데, 지금은 분노가 극에 달하여 나발을 죽이고자 합니다. 성경은 다윗에게 이렇게 업#8226;다운이 있다는 것을 통해 다윗이 위대하지 않으며, 믿음의 대상이 아닌 사람일뿐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계속되는 살해 위협이 있고, 인간적인 사랑의 미갈은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신을 무시했던 형과 부모를 돌봐야하며, 환란당하고 원통한 자 600명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에서도, 사울을 용서하였기에 자신이 선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참고 참던 다윗도 연약한 사람이기에 아무것도 아닌 나발에게 넘어집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여정에서 큰 실수를 할 뻔 하지만, 하나님의 생명싸개로 보호하십니다.
셋째, 분노를 가라앉히는 아비가일 공동체를 허락하십니다.
나발이 다윗에게 한 사실을 정확하게 아비가일에게 알리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에게 남편의 잘못이 내 잘못이라며 남편의 악하고 미련한 것과 다윗이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되는 인생임을 지혜롭게 이해시킵니다. 분노한 다윗의 마음이 아비가일의 구속사적인 명철한 상황판단에 의해 가라앉게 됩니다. 다윗처럼 죄도 잘 짓지만 말을 들으면 돌이키기도 잘 하는 사람이 생명싸개 속에 싸여있는 것입니다. 분노를 가라앉히는 비결은 말씀의 가치관입니다. 굉장히 적은 수이지만 아비가일 공동체의 파워인 것입니다.
다윗도, 아비가일도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이 말씀의 가치관으로 훈련시켜 가시는 생명싸개 속에 싸인 사람일 뿐입니다. 시골 아낙 아비가일 한 사람으로 인해 나발도, 다윗도 지켜집니다. 한 사람이 말씀의 가치관으로 중심잡고 있을 때 모든 공동체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발을 치셔서 죽게 하자, 다윗은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습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에게서 예수 씨를 보았기에 믿음의 선택을 하여 영적 결혼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입장에서는 믿음의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나발과의 일도, 아비가일과의 결혼도 하나님께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도박중독에 빠진 집사님이 목장에서 도박하는 이유는 아내 때문이라며 교묘하게 거짓오픈을 하면서 수요예배에 참석하지 않다가, 최근에 경제권을 아내에게 넘겨주면서 돈이 없어 도박을 하지 못하게 되어 수요예배에 오게 되었는데, 갑자기 말씀이 나팔처럼 들려 카톡방에 큐티 나눔을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는 진정한 치료를 받기 원하고, 눈물로 기도해주신 목사님, 기도하며 기다린 아내와 염려하는 딸과 아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하다는 나눔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나발처럼 남의 분노를 일으키는 일을 해서는 안 되고 분이 생기더라도 분대로 행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이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었지만 아비가일 공동체처럼 남의 분노를 가라앉히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