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일을 행하겠고]
삼상26:1-25
오늘 사울이 다윗을 보며 ‘큰 일을 행하겠고’라고 하는데, 여기서 큰 일은 무엇입니까? 다윗은 큰 일의 개념을 알고 있지만, 사울은 큰 일의 한 중앙에 있으면서도 알지 못합니다. 본문을 통해 어떻게 큰 일을 행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려 합니다.
첫째, 큰 일을 행하려면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 나라여야 합니다.
사울은 예배를 열심히 드리지만,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 나라가 아니고 자기 나라를 세우고자 했기에 얼마나 비극인지 계속 보고 있습니다. 다윗을 보면 하나님 나라의 큰 일을 행하려면 거기에 맞는 훈련이 꼭 필요한 것을 알게 됩니다. 전에 다윗을 밀고했던 유다 땅을 찾아갔지만, 고향 사람들에게 다시 밀고를 당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낙담이 되고 맥이 풀리는 사건들이 많지만, 믿는 공동체 안에서 배반과 미움을 경험해 보는 것이 성숙해지는 비결입니다. 큰 일을 행하려면 항상 사건 앞에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아야 합니다. 사울의 상처와 열등감은 어떤 방법으로도 치료되지 않았고 자기와 비교가 안 되는 애송이 ‘다윗 죽이기’가 인생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나보다 잘 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예수님을 죽이는 것인데, 이 세상은 모두 그 일에 중독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사람이 사람을 위해 목적을 세웁니다. 내가 세우는 목적은 균형이 잡혀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목적이어야 저절로 이루어지는데, 선하지 않은 인간이 목적을 세우니 결정적일 때 실패하는 것입니다. 바로가 10가지 재앙이 와도 가진 것이 많아서 애통이 없고 안 믿어지듯이 내가 힘이 있을 땐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습니다.
둘째, 사단의 정체가 보여야 준비를 잘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제 사울 속에 있는 사단의 정체를 알게 되었지만, 경거망동하지 않고 부하 아비새와 사울을 정탐하러 갑니다. 사울은 부하들이 둘러싸인 진영 한가운데 있고 머리맡에 창을 꽂아 놓고 자는데 한 사람도 목숨을 내놓고 지키는 자가 없습니다. 무슨 준비를 하며 열심히 살고 있습니까? 남을 죽이기 위해 준비합니까? 살리기 위해 준비합니까? 공부도 결혼도 사업도 믿지 않으면서 하는 것은 결정적인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셋째, 반복되는 재시험에 합격해야 합니다.
아비새가 사울을 죽이겠다 하자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를 죽이는 것은 죄가 된다 하며 사울의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옵니다. 원수의 목숨이 다윗의 손아귀에 들어온 것이 벌써 세 번째로 계속해서 똑같은 시험이 찾아옵니다. 큰 일을 행하는 사람은 지켜야 하는 원칙이 있고 본질적인 부분에서 무너지면 안됩니다. 아비가일의 말처럼 다윗이 원수를 갚기 위해 피를 묻히면 안 되는 것입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인정하는 다윗이야말로 진정 기름 부음을 받은 자입니다. 구원 때문에 내가 행하는 것이 바로 큰 일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기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것이 목적이라 말하고 자신의 무고함을 말하자, 다시 사울은 감격하고 잘못을 인정합니다. 다윗처럼 눈 앞에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구원을 귀하게 여길 때 하나님이 내 영혼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마지막까지 다윗은 사울의 회개를 받아냈습니다. 이런 사울같은 사람을 녹이는 길은 인내와 용서밖에 없습니다. 또한, 위급할 때 도와준 그일라가 다윗을 배반했듯이 믿는 사람도 배반할 수 있음을 알고 걸어가야 합니다. 실수하고 넘어질 때가 있지만, 말씀을 보고 또 보며 여전한 방식으로 생활예배 드리는 것이 작은 일 같아도 이것이 가장 '큰 일을 행하겠고'의 뜻인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