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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노하심]
왕하 24:18~25:7
오늘 말씀의 제목은 ‘진노하심’입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신다고 하면 우리는 벼락이 치고 당장 망하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보여주는 진노의 첫 모습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진노하실까요?
첫째, 악을 내버려두십니다.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21세에 왕이 되어 11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여호와는 의로우시다’라는 이름과 달리 형 여호야김의 악한 행위를 따라갔습니다. 그는 예레미야를 몰래 불러 말씀을 묻고 기도도 부탁했지만, 정작 순종하지는 않았습니다. 말씀을 불태운 여호야김이나 말씀을 듣고도 따르지 않은 시드기야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똑같이 악한 길을 간 것입니다.
그는 성전의 보물을 빼앗기고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큰 사건을 겪고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교만과 하나님의 진노 때문입니다. 요시야의 개혁 이후 네 명의 왕이 연이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벌을 내리시는 것만이 진노가 아니라 악을 내버려두시는 것이 더 무서운 진노입니다.
우리도 큐티하고 설교를 들으며 힘들 때는 기도를 부탁하지만, 말씀이 내 생각과 다르면 순종하지 않습니다. 사건이 지나가면 괜찮다고 여기며 남을 판단하고 내 죄는 보지 못합니다. 말씀으로 권면하는 목자와 목장 식구 앞에서 “하나님이 옳으십니다. 제가 틀렸습니다”라고 고백하지 못하는 것이 내 죄입니다. 오늘 말씀이 나를 찌르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내버려두지 않으신다는 증거입니다.
둘째, 성이 바벨론에게 포위되게 하십니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통해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말씀을 들었지만, 애굽의 말과 군대를 의지하고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따라 바벨론을 배반했습니다. 결국 예루살렘 성은 19개월 동안 포위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성을 단번에 무너뜨리지 않으시고 유예기간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고난의 사건 앞에서 하나님 대신 무엇을 의지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 통장과 내 실력이 나의 애굽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진노 중에도 “항복하면 너와 네 가족이 살리라”며 살길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항복은 바벨론이 옳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말씀 앞에서 내 생각을 꺾고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먼저 항복한 이들의 조롱이 두려워 끝내 바벨론에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체면을 차리느라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한 것입니다. 왕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온 백성이 굶주렸듯이, 내가 고집을 부리며 버티는 동안 가족은 사랑과 말씀에 굶주리게 됩니다. 포위된 시간은 끝까지 버티라고 주신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항복하라고 주신 시간입니다.
셋째, 왕이 끌려가게 하십니다.
결국 성벽이 무너지자 시드기야는 백성을 버리고 밤중에 곁문으로 도망치다 붙잡혔습니다. 바벨론 왕에게 끌려가 심문을 받은 후, 눈앞에서 아들들이 죽임당하고 두 눈이 뽑힌 채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바벨론 왕은 자신을 배반한 죄를 심문했지만, 하나님은 이를 ‘나를 반역한 반역’이라 말씀하십니다. 악을 내버려두시는 진노에도 끝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드기야에게도 “칼에 죽지 않고 평안히 죽으리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저는 그가 바벨론 감옥에서 예레미야에게 들었던 말씀을 기억하며 회개하고 평안히 갔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드기야는 백성을 구원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참된 왕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는 밤에 곁문으로 도망쳤으나, 예수님은 밤에 잡으러 온 자들 앞에 스스로 나아가셨습니다. 또한 그는 자기 죄로 끌려갔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 때문에 십자가로 끌려가시어 우리가 받을 진노를 대신 감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우리에게 온 포위는 멸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살리시려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로 피하는 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제 남편은 열심히 살았지만 삶에 전혀 기쁨이 없었고, 예수님을 만나 기뻤던 저와는 가치관이 너무 달랐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방식을 쉽게 꺾지 않았던 남편은 결국 육의 진노를 겪었지만, 영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육이 무너지는 고난 속에서도 영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 ‘진노하심’은 악을 내버려두시어 포위되게 하시고, 결국 끌려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순종하라는 말씀은 한마디로 구속사로 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끝까지 낮아지시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때문입니다. 내 힘과 세상을 의지했던 죄를 회개하고, 말씀 앞에 온전히 항복하여 우리 인생의 결론도 주님이 주시는 “평안히”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