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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으로 잡아갔더니]
왕하 23:31~35
오늘 본문에서는 석 달 만에 한 나라의 운명이 뒤집힙니다. 전무후무한 개혁의 왕 요시야를 장사한 지 불과 석 달 만에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는 애굽에 붙들리고, 유다는 애굽의 손에 넘어갑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한 계절 만에 다시 세상의 종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다시 세상의 종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은 ‘애굽으로 잡아갔더니’라는 말씀을 통해 그 모습을 세 가지로 보여줍니다.첫째, 세상의 손에 붙들려 삽니다.여호아하스는 요시야가 전쟁터에서 죽자 곧바로 왕이 되었지만 그 자리에 단 석 달 있었습니다. 그 석 달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악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석 달의 악은 석 달 만에 생긴 것이 아니라, 그 석 달이 그의 스물세 살을 다 폭로한 것입니다. 그는 이십삼 년간 바로 옆에서 아버지를 보았지만 아버지의 하나님 사랑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백성들도 요시야의 개혁을 보고 들었음에도 구속사보다 세속사로 돌아가 반애굽을 외칠 가장 강성이고 반골 기질이 있는 둘째 아들을 택했습니다. 백성들이 보기에는 나라를 맡길 대안이었지만 여호와 보시기에는 악했습니다. 사람의 눈을 통과했다고 하나님의 눈까지 통과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상급이 아니라 세상 성공이 상급이 되면 내가 성공을 붙드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그 성공이 내 손목을 붙듭니다. 그는 아버지를 위하는 것 같았지만, 정작 살아 있을 때 아버지가 말씀을 따라 행한 개혁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석 달 뒤, 그의 마음을 붙들고 있던 세상이 이제 그의 몸까지 붙들게 됩니다. 믿는 백성의 손이 세운 왕을 애굽의 손이 끌어내려 가두고 벌금까지 물립니다. 왕의 몸도 나라의 돈도 바로 느고의 손에 붙들린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가 마음대로 하는 것 같아도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말씀 아래에서 일어납니다. 세상의 손이 내 손목을 붙들어도 그 손까지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있습니다.둘째, 세상이 붙인 이름으로 삽니다.느고는 여호아하스의 형 엘리아김을 왕으로 세우고 그의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꿉니다. 이름의 뜻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이 이름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름은 주인이 짓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종에게 자기가 지은 이름을 붙입니다. 그런데 바로가 새로 붙인 여호야김의 뜻은 ‘여호와께서 세우신다’입니다. 바로는 ‘내가 이 왕을 세웠다’고 과시했지만 그가 붙인 이름은 오히려 ‘여호와께서 세우신다’고 말합니다. 바로도 아무리 이름을 고쳐도 역사의 주인은 고칠 수 없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학벌과 연봉, 직급과 지위, 사는 지역뿐 아니라 실패와 병명과 사연이라는 이름표를 붙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표대로 내 값이 정해지고 나는 그 이름값을 치르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이름은 성경 안에만 두고 실제 하루는 세상이 붙인 이름에 끌려갑니다. 세상이 지은 이름을 내 정체로 받아들이고 사는 것, 그것이 종의 방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붙여 주신 이름은 ‘자녀’, ‘성민’, ‘자기 기업의 백성’입니다. 셋째, 나도 세상의 감독자로 삽니다.여호야김은 바로에게 바칠 돈을 걷는 징수원으로 등장합니다. ‘징수하다’는 단순히 세금을 걷는 것이 아니라 몰아붙여 짜내는 말로,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짜내던 ‘감독자’와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이 감독자 밑에서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건져 내신 백성이 불과 13년 만에 자기 백성에게 애굽의 감독자 노릇을 합니다. 이게 종살이의 끝입니다. 종은 당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당한 대로 합니다. 위에서 눌리면 아래를 누르고, 세상이 나에게 내민 고지서를 가족에게 내밉니다. 밖에서는 종처럼 살고 집에서는 바로처럼 삽니다. 짜내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고 나도 남을 짜내며, 애굽을 이기는 길은 애굽처럼 되는 것이라고 믿어버립니다. 그러면 이 종살이를 누가 끊습니까? 유다는 은과 금을 바로에게 주었지만 여전히 그의 종이었습니다. 종이 주인에게 바치는 돈은 몸값이 아니라 종살이의 증거입니다. 매인 자는 자기 몸값을 낼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9장에서 예수님이 이루실 ‘별세’는 출애굽을 뜻하는 ‘엑소더스’입니다. 출애굽으로 나온 백성은 다시 애굽으로 돌아갔지만 예수님이 이루신 출애굽은 거꾸로 감기지 않습니다. 바로는 백성에게 값을 내게 했지만 우리 주님은 우리를 짜내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 몸을 우리 죗값으로 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심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공동체 고백입니다.한 재혼 가정에서 your baby와 our baby의 갈등으로 20년 동안 큰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엄마 집사님은 딸의 방황과 거친 말로 절망하여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딸에게 당한다고 생각했지만, 남편이 이것은 죄 값을 치르는 것이라고 말해 주었을 때 자신이 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딸이 힘들어하는 것을 받아내며 그 시간이 언제까지일지는 하나님만 아신다고 고백했습니다. 남편 역시 다시 돌아간다면 이혼하지 않겠지만, 지금도 외도했던 아내를 사랑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고백했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고 반듯해도 과거의 행위를 붙들고 있으면 가족에게 사랑이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좀 망가지고 낮아져야 합니다. 내가 죄인임을 깨닫게 되면 어떤 경우에도 토를 달지 않게 되고, 내 죄를 볼 때 주님의 사랑이 조금씩 나오게 됩니다.여러분, 애굽으로 잡혀가면 세상의 손에 붙들려 살고, 세상이 붙인 이름으로 살며, 결국 나도 세상을 짓누르고 짜내는 감독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사람은 고난만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고난이 와도 자기 죄를 보지 못하면 변하지 않습니다. 구속사는 내 죄를 보는 것이며, 내 죄를 볼 때 회개하게 됩니다. 애굽과 앗수르를 의지하다 실망하는 종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