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왕하 22:12~20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아 채팅 상담이나 AI를 찾습니다. 그만큼 외롭고, 자신의 말을 들어줄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 말을 들어 달라"고 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말씀은 잘 듣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요시야에게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말을 들으시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함께 여호와께 묻습니다.
요시야는 율법책의 내용을 듣자마자 옷을 찢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 힐기야를 비롯한 다섯 사람에게 자신과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여호와께 물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세상의 왕은 답을 정하고 명령하지만, 회개한 왕은 하나님께 묻습니다. 권력은 명령하게 하지만 회개는 질문하게 합니다.
요시야는 자신만을 위해 묻지 않고 공동체를 위해 묻도록 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나만 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교회, 이웃과 나라를 위하게 만듭니다.
요시야의 명령을 들은 다섯 사람은 함께 여호와께 물으러 갔습니다. 이들 5인방의 이름의 뜻은, 힐기야는 '여호와의 분깃', 아히감은 '나의 형제가 도움을 준다', 아사야는 '여호와께서 만드셨다', 악볼은 '들쥐', 사반은 '너구리', 훌다는 '두더지'입니다. 이름의 뜻을 꿰어보면 "사람은 두더지나 들쥐같이 평범하고 형편없지만, 여호와께서 만드셨기에 여호와의 분깃이 되어 형제가 도움을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구속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요시야는 구원의 관점에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등용한 것입니다.
다섯 사람은 여선지자 훌다를 찾아가 함께 말씀을 묻고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분과 성별, 위치를 초월하여 말씀을 가진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훌다는 살룸의 아내로, 변두리 지역에 사는 평범한 여인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람으로 쓰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묻는다는 것은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원하는 답을 정해 놓고 확인받고자 묻는 것은 진정으로 묻는 게 아닙니다. 혼자서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기 쉽기에 함께 말씀을 묻고 나누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와께 묻는 사람의 말을 들어주십니다.
둘째, 장차 내릴 재앙을 듣습니다.
요시야가 옷을 찢고 간절히 여호와께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재앙과 진노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재앙을 율법책에 기록된 말씀대로 내리겠다고 하십니다. 율법책은 그냥 역사책이 아니라 살아 있고 활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했기 때문에, 그들의 모든 행위로 나를 격노하게 했기 때문에 재앙을 내리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요시야에게 장차 임할 재앙을 말씀해 주신 것은 힘든 인생을 살아온 그의 감정보다 백성의 생명과 구원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응답은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공과 합격이 반드시 축복은 아닙니다. 실패와 낙심을 통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된다면 그것이 참된 응답입니다.
복음은 장차 받을 환난을 미리 듣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임할 재앙의 말씀도 오늘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어야 합니다. 듣기 좋은 말씀만이 아니라 듣기 싫은 말씀까지도 주님의 응답으로 듣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이 들으시니 평안합니다.
요시야는 “이곳과 그 주민에 대하여 빈터가 되고 저주가 되리라”는 재앙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부드러워졌습니다. 그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며 스스로를 낮추고 옷을 찢고 통곡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나도 네 말을 들었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내 말과 생각과 눈물, 그리고 나의 회개를 이미 듣고 알고 계십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아도 하나님 한 분이 들어 주신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세상은 강한 사람을 높이지만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을 높이십니다. 진정한 승리는 회개입니다.
하나님은 요시야에게 모든 재앙을 그가 사는 날 동안은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시며 평안을 약속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평안은 문제가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재앙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통하는 상태입니다.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관계가 바로 샬롬입니다. 이 평안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시고 화평의 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면, 하나님께 물을 수 있습니다. 이 샬롬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다시 한번 임하길 축복합니다.
공동체 고백은 이번 선거를 보며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된 한 청년의 묵상 간증입니다.
선거 전날 저녁, 친구와 선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의견이 부딪혀 화가 났습니다. 저는 동성애 문제와 예배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제 주장을 정당화했지만, 말씀 앞에서 돌아보니 사실은 재개발 문제, 재산에 대한 염려, 세금에 대한 불안 등 제 욕망과 유익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좌우로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회개가 나라를 살린다고 하셨는데, 저는 좌우로 치우쳐 상대의 잘못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또한 SNS에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기사들을 계속 공유하며 상대를 판단했는데, 결국 저 역시 정치인들과 다를 바 없는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남을 바꾸려 하기보다 저를 찢고, 말씀 앞에 바로 서는 적용을 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통해 자기 죄를 보는 다음 세대가 있기에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호와께 묻는 자의 말을 들어주십니다. 그리고 어떤 재앙의 말씀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듣는 자의 말을 들어주십니다. 하나님 앞에 마음이 부드러워져 통곡하며 회개한 요시야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