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찢으니라]
왕하 22:3~13
우리는 불합격 통보나 이별 통보를 받으면 종이를 찢듯 분노를 쏟아냅니다. 그러나 요즘은 종이보다 사람을 더 많이 찢습니다. 말로 찢고, 카톡으로 찢고, 뒷담화로 찢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시야는 남이 아닌 자기 옷을 찢습니다.
자기 옷을 찢는 요시야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의 큐티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부서진 성전을 수리해야 합니다.
요시야는 8세에 왕이 되어, 16세에 하나님을 찾기 시작하였고, 20세에 우상을 제거하기 시작했으며, 26세가 되어 성전 수리에 착수하였습니다.
그의 개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때에 맞게 준비된 결과였습니다. 당시 유다는 므낫세의 오랜 우상숭배로 인해 영적으로 무너져 있었고, 성전 역시 방치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요시야는 무너진 현실을 알게 된 그때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며 성전을 수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삶에도 무너진 부분이 많습니다. 자녀, 가족, 성공, 돈, 지역 등에 치우쳐 살아가면서 관계와 삶의 여러 영역이 무너져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무너진 결과만 회복되기를 바라며 기도할 뿐,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자신을 돌아보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환경을 바꾸시는 것보다 우리를 성숙하고 거룩하게 만드시는 데 관심이 있으십니다. 고난의 시간은 단순한 불행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듬어 가시는 과정입니다.
요시야 한 사람이 개혁의 주체가 되어 사람에 대한 관심과 정확한 분별, 성전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성전 수리에 정직히 행하였습니다. 수리를 맡은 자들 역시 진실되게 행하였고, 그들에게 회계를 요구하지 않았을 정도로 하나님 앞에서 정직했습니다.
둘째, 발견한 율법책을 읽어야 합니다.
성전 수리 과정에서 대제사장 힐기야는 율법책을 발견합니다. 원래 성전에 있어야 할 책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그동안 말씀이 완전히 잊혀졌음을 보여줍니다.
서기관 사반은 책임감이 강한 신복인데, 그는 “성전에서 찾아낸 돈을 감독자에게 맡겼다”라고 왕에게 보고합니다. 말씀은 실종이 됐는데 헌금은 계속 받았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발견하다'와 '찾다'는 히브리어 '마짜'로 모두 '찾다'라는 뜻입니다. 성전 수리를 하면서 헌금이 원래 목적대로 쓰이도록 ‘돈이 제 자리를 찾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가 회복될 때 삶의 영역들도 함께 회복됩니다.
사반은 율법책을 읽었지만 특별한 반응이 없었습니다. 반면 요시야는 같은 말씀을 듣고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여 옷을 찢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핵심 일꾼들과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감독자 삼아 진실히 행하였습니다.
우리 삶에도 발견된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비록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꾸준히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예배와 공동체 생활을 지속할 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삶 가운데 역사하게 됩니다.
셋째, 듣고 찢고 물어야 합니다.
요시야는 율법책의 말씀을 듣자마자 곧바로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 듣는 것과 회개하는 것 사이에 변명이나 계산이 들어갈 틈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말씀을 들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반면 그의 아들 여호야김은 하나님의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칼로 잘라 불태워 버렸습니다. 요시야는 자기 옷을 찢었지만, 여호야김은 말씀을 찢었습니다. 그는 말씀을 거부하며 자신이 찢어지는 것이 싫어, 결국 말씀을 찢어버립니다.
요시야는 옷을 찢은 후, 신뢰하는 신복 5명을 보내 하나님께 물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요시야는 율법책을 통해 조상들이 말씀을 듣지 않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문제를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여호와께 물어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습니다. 말씀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깨달았다면, 그 다음은 여호와께 물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내 삶을 해석하고, 내 삶에 임한 진노를 깨닫고 그 진노가 죄의 결과임을 인정하며 죄를 고백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어찌할꼬" 하며 하나님께 묻는 것, 이것이 바로 말씀대로 하는 회개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큐티이며, 곧 'Question Time'입니다. 말씀을 듣고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께 묻는 과정이 바로 구속사적 묵상입니다.
사람은 결국 둘 중 하나입니다. 내가 찢어지든지, 말씀을 찢든지입니다. 자기 죄를 보지 않으면 말씀을 거부하게 되고, 결국 말씀으로 남을 판단하며 남을 찢게 됩니다.
한 목자님의 둘째 아들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무기력해져 공부에도 흥미를 잃었고, 좋은 대학에 갈 기회가 있었음에도 가까운 대학을 선택할 만큼 의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예배와 교회 모임, 수련회, 양육 훈련만큼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참석하며 신앙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졸업 후에도 특별한 자격증이나 준비가 없어 부모의 걱정이 컸지만, 결국 집에서 8분 거리 로봇 제조 회사에 취업하게 되었습니다.
목자님은 이를 통해 공부나 스펙보다 예배의 자리를 지키게 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게 되었고, 자녀에게 가장 좋은 부모는 예배를 우선하는 삶을 보여주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당장의 성과가 보이지 않아도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삶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며, 하나님의 때에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치우친 자신에게 있습니다. 무너진 상황만 붙들고 회복을 구할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교만, 자존심, 자기의, 억울함을 찢기 원하십니다.
여러분, 참된 큐티는 부서진 성전을 수리하고, 발견한 말씀을 읽고, 말씀 앞에서 자신을 찢으며 하나님께 묻는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몸이 찢기셨기에 우리는 은혜 가운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결국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치우친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무너진 상황만 붙들고 회복을 구할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람의 평가보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행하며, 맡겨진 물질과 시간, 관계를 정직하게 사용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남을 찢기보다 내 옷을 찢는 회개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