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나...]
삼하 13:1~9
오늘은 창립 23주년 주일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연애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밥도 안 넘어가고 잠도 안 올 때가 있었습니다. 옆에서 보면 무슨 병에 걸린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사랑하다가 병에 걸린 암논이 나옵니다. 개역한글 성경에는 ‘암논이 저를 연애하나...’라고 쓰여 있는데, 좋을 것 같던 연애에도 좋지 않은 반전이 있다는 것입니다. 감정이 강하다고 다 사랑은 아닙니다. 그 감정이 아무리 강해도 그다음이 중요합니다.
오늘 암논의 ‘연애하나’를 통해 내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죄의 삯인 사랑입니다.
(부모로부터 대물림 된 사랑)
본문은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로 시작합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인 죄를 회개한 후, 나단이 예고한 대로 그의 집에는 칼이 떠나지 않는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윗은 천인공노할 죄를 지었지만, 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십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은혜로 덮으시며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어 가십니다.
암논은 다말을 사랑하여 상사병에 걸렸습니다. 사실 암논은 장자였지만 압살롬이 후계자로 주목받는 것에 대한 열등감으로 다말을 차지하려는 욕망이 있었습니다. 간교한 요나답은 그에게 병든 척하여 다말을 부르라고 계책을 냅니다. 암논은 지체 없이 요나답의 말대로 자신이 병에 걸려 다말의 보살핌이 필요하다고 다윗에게 요청합니다. 다윗은 사람을 보내 다말을 암논의 집으로 보냅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부르고 우리아를 죽일 때 “사람을 보낸” 것처럼, 아버지의 죄를 아들이 그대로 반복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죄를 범했기에 자녀의 죄를 분별하지 못하고 아들의 간음과 살인을 불러들였습니다.
죄는 대물림되고 반복됩니다. 악한 습관은 쉽게 전염됩니다. 그래서 회개는 내 죄의 뿌리를 정직하게 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대물림된 죄를 인정하는 것은 부모를 정죄하자는 것이 아니라, 부모도 나도 구원받아야 할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모 공경이고 형제 사랑입니다.
둘째, 끝을 보는 사랑입니다.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랑)
다말은 오라버니가 아프다는 말에 아무 의심 없이 암논의 집에 가서 과자를 만듭니다. 그러나 암논의 관심은 과자가 아니라 다말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을 내보내고 다말과 단둘이 남습니다. 이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악은 빛을 미워하고 사람을 내보내며 공동체를 끊습니다.
암논은 다말에게 “나의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고 하며 사랑을 말했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정욕이었습니다. 정욕은 가장 거룩한 말까지 가져다가 욕망의 포장지로 사용합니다. 다말은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하지 못할 것”이라며 말립니다. 그러나 암논은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사람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결국 그는 힘으로 다말을 범합니다. 이렇게 듣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어리석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바라던 끝을 보고 나자 암논은 다말을 심히 미워합니다. 사랑이 미움으로 변한 게 아니라, 암논이 품었던 연애의 실체가 드러난 것입니다. 삐뚤어진 사랑은 늘 끝을 보려고 하지만, 참사랑은 하나님이 정하신 끝을 남겨 둡니다.
우리들교회는 불신결혼을 막고 혼전순결을 외칩니다. 결혼 전의 성관계는 관계를 파괴하지만, 결혼 안에서 이루어지면 관계를 더욱 아름답게 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 질서를 지키는 것은 끝을 남겨두는 것입니다. 또한 젊은 날의 성욕을 참는 것은 극기의 길이고 십자가의 길입니다. 어디까지 언제까지 참을 수 있는가가 인격이고 영성입니다. 죄는 부모에게서 대물림되었지만, 끝을 보는 나의 책임도 있습니다.
셋째, 회초리 맞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사랑)
암논은 다말을 범한 뒤 “이 계집을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고 합니다. 그러나 다말은 재를 머리에 덮어쓰고 채색옷을 찢고 크게 울부짖습니다. 다말은 수치를 숨기지 않고 하나님 앞에 들고 나아갔습니다.
암논은 문을 걸어 잠그고 죽는 길로 갔지만, 다말은 오픈하여 살았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회개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다말의 울부짖음을 성경에 기록하셨습니다. 다말의 기도와 외침을 들으시고 잊지 않으셨습니다.
이 사건은 범죄한 다윗의 집을 치시는 하나님의 회초리입니다. 회초리는 아프지만 언약 안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다윗의 집은 무너졌지만 하나님은 그 집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무너진 왕의 집을 통해 참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다말처럼 억울한 일을 당했지만 수치를 숨기지 않고 진실을 드러낸 실제 사례가 있습니다. 1967년 필리핀의 유명 배우 메기 드 라 리바는 귀가하던 중 권력가 집안의 청년들에게 납치되어 집단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당시에는 성폭력 피해자가 오히려 비난받던 시대였지만, 메기는 자신의 신분과 얼굴을 공개하며 가해자들을 고소했습니다. 권력자들의 협박과 회유 때문에 오랜 시간 숨어 지내야 했고 배우 활동도 중단해야 했지만, 끝까지 진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가해자들은 법의 심판을 받았고, 이 사건은 필리핀 사회에서 여성 인권과 성범죄 처벌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메기는 불신자였지만 자신의 억울함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정의를 세우는 최선의 적용을 했습니다. 다말은 믿는 자로서 더 나아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수치를 가지고 나아갔고, 오라비의 죄까지 품으며 회개의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억울함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난 다말은 남의 죄에 갇혀 억울함으로 죽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 믿음의 적용은 3천 년이 지난 오늘까지 성경에 기록되어 수많은 사람에게 믿음의 본이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사랑은 미움으로 끝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반드시 구원으로 끝납니다. 그러므로 죄를 모르는 사람의 변화를 기대하기보다 먼저 내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혼자서는 죄의 고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죄를 정직하게 고백할 때, 죄는 힘을 잃고 우리는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를 길로 놓고 갈 때 우리도, 우리 자녀들도 약속의 자녀가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