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살아나셨다!]
막 16:1~9
세속사와 구속사는 흐르는 방향부터가 다른 가치관입니다. 세상은 심판과 회개를 알지 못하기에 눈앞의 행복과 성공만을 목적으로 살아가지만, 구속사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바라봅니다. 내가 의지하던 해와 달과 별이 떨어지는 것 같은 육이 무너지는 사건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낮아지신 예수님의 시선으로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한 단어입니다. 부활은 논리로 증명되는 이론이 아니라, 오직 변화된 증인의 삶을 통해서만 세상에 증명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그가 살아나셨다!’의 증인은 무엇이며, 누구에게 먼저 나타나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안식 후 첫날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십니다.
‘안식 후 첫날’은 모든 복음서에 기록된 중요한 날로, 구약의 율법적인 안식일에서 신약의 부활을 기념하는 생명의 날로 전환되는 영적 분기점입니다. 이 역사적인 부활의 첫 증인은, 한때 일곱 귀신에 사로잡혔으나 주님을 만나 인생의 목적을 깨닫게 된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그녀는 주님을 메시아로 믿고 사랑했기에, 해가 뜨기도 전 무덤으로 달려갔지만, 부활을 향한 믿음은 아직 성숙하지 못했습니다. ‘누가 돌문을 굴려 줄까’ 걱정하는 모습은 주님을 사랑하면서도 정작 눈앞의 현실 앞에서 염려하는 우리의 연약한 모습과 같습니다.
한편, 성경에는 베다니 마리아도 등장합니다. 그녀는 오빠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충분한 양육을 받았기에,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무덤에는 가지 않았지만, 값비싼 향유로 주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며 말씀을 따라 사는 믿음으로 최고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복음 전파를 위해 가장 낮은 자리의 막달라 마리아를 부활의 첫 증인으로 택하십니다. 여인들은 염려를 안고 무덤으로 향했지만, 이미 큰 돌은 옮겨져 있었고 빈 무덤이 부활을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사랑으로 나아간 여인들은, 현장에조차 가지 않았던 제자들보다 더 앞선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둘째, 양육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그가 살아나셨다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막 16:6)라는 말씀으로 여인들을 양육해 주십니다. 사람들은 부활을 직접 볼 수 없기에 믿기 어려워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나사로처럼 다시 죽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창조적 부활입니다.
이미 돌문이 옮겨진 상황에서도 여인들은 여전히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찾습니다.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에서 찾고 무덤과 시체에 집착하는 것이 부활을 믿지 못하는 증거입니다. 우리 역시 여전히 과거의 사건과 보이는 현실에 묶여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시간은 곧 생명이고, 생명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은 결국 예수님을 가볍게 여기는 것입니다.
주님은 두려워하는 여인들에게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부활의 믿음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하십니다. 이처럼 양육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택하심을 입은 은혜입니다. 부활에 대한 깨달음과 경험이 있을 때, 성도들의 연약함과 수치의 간증도 내 이야기로 들리기 시작합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은 알았지만, 아직 부활의 실체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다는 사실은, 기독교의 우월성과 탁월함을 드러내는 가장 위대한 사건입니다.
저는 30대에 남편을 잃고, 앞길을 가로막은 '심히 큰 돌' 같은 절망 앞에 서 있었습니다. 여인들처럼 죽은 예수님만 찾으며 두려워하던 제게, 주님은 말씀으로 양육해 주셨습니다. "회개하고 떠난 자는 반드시 살리라"(겔 18:28)라는 말씀으로 남편의 구원을 확신하게 하셨고, 그 순간 죽음의 두려움은 사라졌습니다. 그날 경험한 부활의 은혜는 지난 40년 동안 제게 어떤 사건도 해석할 수 있는 힘과 사명을 주었습니다. 나의 사건을 말씀으로 해석하고 해결하는 삶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바로 다음 세대를 향한 최고의 양육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무덤의 어둠 속에 누우셨습니다. 우리 역시 구원을 위해 기꺼이 암흑의 자리를 인내할 때, 비로소 '휘장이 찢어지는 부활의 간증'을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양육의 자리에 참여하여, 이론이 아닌 실제적인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셋째, 사명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에게는 어떤 환경이라도 사명을 주십니다. 주님은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를 첫 증인으로 세워, 실패한 수제자 베드로를 회복시키는 도구로 쓰셨습니다. 이는 외모나 조건이 아닌, 고난을 통해 '육'이 무너진 낮은 자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입니다.
제자들에게 갈릴리는 첫사랑의 장소인 동시에 도망친 수치의 현장이었지만, 주님이 찾아오시자 그 '가불 땅'은 가장 영광스러운 사명의 자리로 변했습니다. 비록 제자들은 믿음이 없어 다시 생업으로 돌아갔지만, 주님은 끝까지 참고 기다리시며 그들을 결국 귀한 일꾼으로 세우셨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부활의 증인을 나열하며 여인들을 언급하지 않았던 것은 당시의 열악한 여성 지위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 낮고 비천한 여인을 첫 증인으로 택하심으로써 세상의 가치를 뒤집는 부활의 참된 의미를 드러내셨습니다. 이처럼 부활의 경험은 누구의 자랑도 될 수 없는 전적인 은혜입니다.
말기 암으로 임종을 앞둔 평범한 성도, 김은자 집사님이 보여준 찬란한 부활의 증언입니다.
집사님은 의식을 되찾은 마지막 일주일간, 눈조차 뜨기 힘든 고통 속에서도 가족과 지인들을 일일이 불러 모아 손을 맞잡고 예수 믿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며 구체적인 교회와 목장까지 지정해 주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만큼은 통증도 사라진 듯 기쁨이 충만했던 집사님은, 한 영혼이라도 놓칠세라 마지막까지 이름을 부르며 예수 믿기를 권면했고 "전할 자에게 다 전했다"라는 평안한 고백과 함께 사명을 완수하고 주님 품에 안겼습니다. 직분 없는 평범한 성도가 죽음 앞에서 보여준 이 부활의 증언은 천국의 소망과 하나님은 살아계심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여러분, 주님은 부활의 첫 증인으로 가장 낮고 비천했던 막달라 마리아를 택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삶의 자리가 비록 무너진 것처럼 보일지라도, 구속사의 말씀으로 잘 양육 받아 영혼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는 참된 증인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