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족]
신승윤 목사
막 3:31~35
할렐루야! 청년국 WITH 공동체를 섬기고 있는 신승윤 목사입니다. WITH는 3040 미혼 청년들이 말씀 안에서 교제와 결혼을 준비하며 거룩을 향해 나아가는 공동체입니다. “We Invite you To Holy community”라는 이름처럼, 인생의 목적이 거룩임을 붙들고 함께 신앙과 삶을 세워가고 있습니다. 말씀 중심의 이성 목장, 예배와 목장을 우선하는 공동체 질서, 그리고 자신의 수치를 드러내며 회개로 섬기는 지체들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을 세워가고 계십니다.
우리는 지금 마가복음을 큐티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회개와 죄 사함의 은혜, 병든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천국 잔치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잔치에 모두가 참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권위와 명예를 내려놓지 못한 종교 지도자들뿐 아니라,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친족과 가족도 등장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붙잡으러” 오는데, 이는 체포의 의미입니다.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예수님의 사역을 막으려 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 장면을 통해 참된 가족이 누구인지, 진정한 가족의 기준이 무엇인지 말씀하십니다.
이제 곧 명절을 맞아 가족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왜 이 땅에서 지금의 배우자와 자녀, 부모를 만나게 하셨는지 가족의 목적을 깨닫고, 분명한 구원의 사명을 붙들고 가족을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가족으로 만난 목적에 대해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첫째, 내가 밖에 서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소문이 퍼지자 수많은 사람이 몰려왔고, 예수님은 식사할 겨를도 없이 말씀을 전하시고 병자들을 고치십니다. 그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동생들이 찾아오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계신 곳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 서 있습니다. 왜 밖에 서 있었을까요?
첫 번째는 말씀과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분명히 들었습니다. 그러나 세월과 사건에 치여 그 말씀을 놓아버리자,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하지 못하고 구원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게 됩니다. 한때 눈물로 붙들었던 말씀이 식어가고, 큐티와 공동체에서 멀어진다면 이미 밖에 서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의 자리로 들어와야 합니다. 두 번째는 기대와 자랑 때문입니다. 33절은 원어에 정관사 '그'가 붙어 “그 어머니, 그 동생이 밖에 있다.”라고 쓰여있습니다. 예수님이 유명해질수록 가족은 존경의 시선을 받게 되었고, 그 순간 예수님은 구원의 주님이 아니라 가족의 자랑과 열등감을 해소해 주는 존재가 됩니다.
자녀와 배우자가 잘되면 기쁘고, 그렇지 않으면 무너지는 마음, 그리고 구원보다 성공에 더 관심이 있다면 우리는 이미 밖에 서 있는 것입니다. 가족은 우리의 자랑이나 기대를 채우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구원을 위해 맺어주신 만남입니다.
말씀에서 멀어지고 가족에게만 기대가 커진다면, “내가 지금 밖에 서 있구나!” 인정하고 다시 말씀 듣는 자리로 들어와야 합니다.
둘째, 둘러앉은 자리로 불러야 합니다.
예수님은 “누가 내 어머니며 동생들이냐?” 하시며, 둘러앉은 자들을 가리켜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이라 하셨습니다(막 3:33-34). 이 말씀은 가족을 버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혈연과 가문을 절대 기준으로 삼던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 대해, 그 울타리에 더 이상 집착하지 말라는 선언입니다. 가족이 자랑이 되면 교만해지고, 짐이 되면 인생이 무너지는 구조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짜 가족을 알려주시며, 예수님 앞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가족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 없이 가족끼리만 둘러앉으면 원망과 집착이 쌓이지만, 예수님 앞에 함께 앉을 때 말씀으로 지어져 가는 가족이 됩니다. 집착과 애증에서 벗어나 구원이라는 한 가지 사명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가 가족이 된 목적입니다.
다가오는 명절, 단 한 사람이라도 예수님 앞에 둘러앉히겠다는 마음으로 준비한다면, 그 귀성길은 전쟁이 아니라 사명이 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고 하셨습니다(막 3:35). 가족의 목적은 단순히 함께 편안히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인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 되어 가는 것입니다.
며칠 전, 저는 아내에게 이혼 서류를 받았습니다. 이 일로 분노와 억울함 속에 있을 때, 18세 된 아들이 저를 붙잡고 아내의 마음을 말해 주었습니다. "아빠는 엄마를 필요한 사람이지 중요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빠는 힘들어하는 엄마보다 언제나 더 힘들어한다. 아빠는 엄마의 말을 들으려 하거나 관심 가지지 않는다. 아빠는 엄마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긴다. 나는 둘이 헤어지면 엄마와 살겠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며 아내와의 갈등 속에서 말씀으로 소통하지 않았던 저의 영적 무심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오랜 세월 쌓인 서운함이 드러난 것입니다.
본문을 묵상하며 한 이름이 빠져 있음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 분명한 말씀을 들었지만, 그 말씀을 가족에게 끝까지 전하지 않았고, 말씀으로 양육하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가족은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 모습이었습니다.
아내의 수고를 보지 못한 것보다 더 큰 죄는, 가족과 함께 말씀을 붙들지 않은 영적 무심함이었습니다. 이제 결단합니다. 아내와 큐티 묵상을 나누고, 자녀 앞에서 저의 죄를 먼저 고백하는 아버지가 되겠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깨닫는 것이 먼저가 될 때 하나님께서 저의 가정을 불쌍히 여기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제 가족을 만나셔야 할 명절이 다가옵니다. 내가 먼저 밖에 서 있음을 회개할 때, 밖에 있는 가족을 예수님께 인도할 수 있습니다. 가족끼리만 둘러앉으면 상처가 되지만, 예수님 앞에 둘러앉을 때 예수님의 가족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인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하나 되어 가는 것, 그것이 가정의 목적입니다.
우리 모두 이 땅에서 가족으로 맺어주신 목적을 깨닫고, 깨어지고 부서지더라도 가족과 친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으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