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뒤를 따라가]
최대규 목사
막 1:35~45
할렐루야! 청년국을 섬기고 있는 최대규 목사입니다. 얼마 전, 인천공항에서 한 남자 아이돌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휴대전화를 들고
기다리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응원하며 따라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팬’이라 부릅니다. 카일 아이들먼은 그의 책 「팬인가 제자인가」에서 “당신은 예수님의 팬입니까? 제자입니까?”라고 묻습니다. 팬은 예수님을 응원하고 감탄하지만, 손해와 희생이 따를 때는 물러섭니다. 반면 제자는 자신의 삶을 드려 예수님의 뒤를 따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많은 병자를 고치시며 큰 인기를 얻으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으로 따른 것일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이 십자가의 길을 걷기를 원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삶은 무엇인지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첫째, 기도 속에서 안식을 누리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에서 많은 병자를 고치시며 큰 인기를 얻으셨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몰려올 만큼 바쁜 하루를 보내신 뒤에도, 예수님께서는 다음 날 새벽 아직 밝기 전에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 기도는 쉼이자 참된 안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시간, 충분한 잠, 맛집 투어, OTT 시청 등에서 안식을 찾습니다. 그러나 그런 쉼은 오히려 더 큰 피로를 남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단둘이 만나는 시간이야말로 영혼을 회복시키는 참된 안식의 자리입니다. 예수님은 사역이 아무리 바빠도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에 따라 행하셨습니다. 사람들의 기대와 성공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기도로 사명을 재확인하신 것입니다. 반면 제자들은 새벽에 예수님을 찾아 나섰지만, 그 동기는 달랐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예수님을 ‘추격하듯’ 따라갔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주를 찾습니다”라는 말에는, 지금은 기도할 때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다시 나가야 할 때라는 조급함과 특권의식이 담겨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안식이었던 기도가, 제자들에게는 낭비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사실은 성공과 인정의 자리에 예수님을 빨리 모셔 오라고 재촉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른다는 것은, 내 속도와 기대를 내려놓고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뜻에 머무는 삶입니다. 참된 안식은 상황이 아니라, 기도 속에서 하나님과 만날 때 주어집니다.
둘째,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 길 위를 걷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가버나움의 성공과 인기를 뒤로하고,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고 하시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길을 떠나셨습니다. 익숙하고 편안한 자리, 칭찬받는 자리보다 영혼 구원의 길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가버나움은 길이 좋고 비옥한 동네였지만, 예수님은 그곳을 떠나 갈릴리 전역을 다니셨습니다. 좁고 험한 산길과 외면 받는 마을까지 찾아가며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길이 쉽지 않았을지라도, 이유를 묻기보다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 길 위에서 예수님은 한 사람을 만나셨는데, 바로 나병환자였습니다. 그는 병으로 인해 공동체에서 격리되고,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직접 만나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넓고 편한 길만 걸으셨다면 결코 만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길입니다. 많은 사람의 환호보다, 아무도 찾지 않는 한 사람을 향해 걸어가시는 길입니다. 우리 또한 신앙의 길에서 편함과 안전을 선택하기보다, 주님이 가신 그 길 위에 서야 합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른다는 것은 결국, 나병환자와 같은 그 한 사람을 향해 걸어가는 삶입니다.
셋째, 불쌍히 여겨 손을 내미는 삶입니다.
나병환자는 예수님 앞에 꿇어 엎드려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간구합니다. 많은 사람은 문제 해결과 고침을 구했지만, 그는 자신의 더러움을 인정하며 깨끗해지기를 구했습니다. 상처와 죄가 드러난 인생은 부끄러워 보이지만, 오히려 은혜를 경험하는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꾸짖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손을 내미셨습니다. 나병환자가 깨끗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간절함이 아니라, 죄인을 향해 손을 내미시는 예수님의 긍휼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회복도 예배, 봉사, 큐티라는 공로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시작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긍휼은 마음으로만 느끼는 동정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그에게 다가가 손을 대셨습니다. 외면 받고 이름조차 잊힌 인생, 율법 아래 저주받았다고 여겨진 그 한 사람을 품으셨습니다. 이것이 오늘도 죄인 한 사람을 향해 여전히 내미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얼마 전, 한 청년과 통화하던 중, 술에 취한 아버지의 거친 욕설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습니다. 저는 분노가 치밀었고, 피하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묵상하며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도 불쌍히 여기심으로 손을 내미셨는데, 저는 만나기 싫은 ‘나병환자’처럼 밀어내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뒤를 따른다는 것은 피하고 싶은 그 사람에게도 주님의 마음으로 다가가는 삶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병환자에게 회복된 사실을 제사장에게만 보이라고 엄히 경고하셨지만, 그는 명령을 지키지 못하고 자신의 깨끗케 된것을 소문낼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언가가 되어서 쓰시는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셔서 쓰시는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아직 때가 안 되었기에 한적한 자리로 머무시게 되었고, 이것 또한 십자가의 길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뒤를 따른다는 것은, 이 긍휼의 마음으로 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삶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삶은 성공의 열광 속에 서는 삶이 아니라, 기도로 안식을 누리고,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 길을 걷고, 불쌍히 여겨 손을 내미는 삶입니다. 팬이 아닌 제자로, 군중이 아닌 그 한 사람을 향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모든 성도님이 예수님의 자취를 따라 걷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