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이 있을지어다]
박재현 목사
벧전 5:7~14
할렐루야! 청소년부를 맡고 있는 박재현 목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해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반드시 붙들어야 할 사명입니다.
우리가 참된 평강을 누릴 때 사람들은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봅니다. 우리는 구원을 위해 평강을 누려야 합니다. 평강은 상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거할 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베드로는 평강을 경험한 사람이었고, 평강을 전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동일한 은혜를 누리도록 평강이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첫째,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평강이 있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염려를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염려는 헬라어로 ‘메리므나’로, 마음이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진 상태를 뜻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 속에서 중심을 잃고 살아갑니다. 집과 직장, 자녀와 미래에 대한 염려로 마음이 갈라져 있습니다.
베드로전서가 기록된 시대는 생존 자체가 위협받던 때였습니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염려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염려를 주님께 맡기라고 권면했습니다. 염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염려의 주인이 바뀌는 것입니다.
보석 같은 자녀로 인해 긴 고난의 터널을 지나고 계신 성도님들이 계십니까? 성품으로는 자녀를 양육할 수 없습니다. 성령으로 자녀를 양육합시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음을 고백하며 눈물로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겨 드릴 때, 주님께서는 나와 내 자녀의 인생을 책임져 주시고 돌봐 주실 줄 믿습니다.
저는 어릴 적 부모님의 잦은 싸움과 불안한 가정환경으로 마음에 깊은 상처와 염려를 안고 살았습니다. 그 속에서 스스로 살아남아야 했고, 길을 개척하며 완벽주의와 강박, 자기 확신이 자리 잡았습니다. 신앙조차 하나님께 맡기기보다 이미 결정한 것을 통보하는 왜곡된 태도로 살아왔습니다. 이 불안과 염려는 아내와 자녀,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흘러갔습니다.
여러분, 자녀를 통제하기에 앞서 먼저 내 안의 상처와 죄를 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녀도, 물질도, 미래도 내 것이라 붙들수록 마음은 무너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인이 아니라 나그네입니다. 사명대로 왔다가 사명대로 살다가 사명대로 떠나는 존재입니다. 염려를 맡긴다는 것은 성품의 문제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근신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염려를 주님께 맡겼다면 이제 우리의 책임이 남아 있습니다. 바로 근신하고 깨어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경고합니다. 마귀는 언제 공격합니까? 혼자 있을 때, 무리에서 이탈했을 때, 그리고 영적으로 잠들어 있을 때입니다.
오늘날 그 주요 표적은 다음 세대입니다 청소년들은 미디어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고, 쾌락주의와 상대주의 속에서 가치관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우울과 중독, 자살과 성범죄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지키는 방법은 분명합니다. 믿음을 굳건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혼자서 굳어지지 않습니다. 함께 모일 때 단단해지고, 목장과 공동체 안에 있을 때 보호받습니다.
사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회개와 죄 고백입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낼 때 예수님이 주인이 되시고, 동일한 고난을 함께 나눌 때 믿음은 반석처럼 세워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 자리에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셋째, 다음 세대를 세워야 합니다
13절에서 베드로는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한다”고 전합니다. 여기서 바벨론은 로마를 상징합니다. 극심한 박해와 혼란의 한가운데서도 성도들이 피할 수 있는 도피성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교회였습니다. 예수님의 피 값으로 세워진 교회는 어떤 시대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환경이 아무리 험해도 성도는 교회를 통해 다시 주님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의 마지막에는 한 사람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바로 베드로의 영적 아들, 마가입니다. 그는 혈통의 아들이 아니라 믿음으로 낳은 아들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평강만을 위해 살지 않았습니다. 박해의 시대 속에서도 교회와 나라의 평강을 바라보며 복음을 이어 갈 영적 후사를 세웠습니다. 다음 세대를 세우는 것이야말로 고난의 시대를 통과하는 교회의 사명임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디모데가 있었고, 베드로에게는 마가가 있었습니다. 다음 세대를 세우지 않으면 교회의 미래는 없습니다. 니느웨는 회개했지만 세대를 잇지 못해 결국 무너졌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 역시 동일한 도전 앞에 서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말에 따라 자라지 않습니다. 부모의 삶을 보고 자랍니다. 행복과 성공을 좇아 사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란 자녀는 염려를 유산으로 받지만, 사명을 위해 살아가는 부모의 등을 보며 자란 자녀는 복음을 이어 갑니다. 그러므로 다음 세대를 세우는 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입니다.
우리들교회 청소년부는 가정 심방을 통해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깊은 걱정과 염려를 마주합니다. 심방의 자리에서 교사들은 가르치기보다 먼저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부모들은 자녀를 주님께 맡기고 영적 후사를 세우는 교사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교사로 섬기며 다른 자녀들의 삶을 바라보며 비로소 내 자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문제 부모였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믿음의 아들이었던 마가가 베드로 곁에서 설교를 듣고 배운 것을 바탕으로 기록한 책이 바로 마가복음입니다. 우리가 마가와 같은 믿음의 다음 세대를 키워 갈 때, 우리의 자녀도 마가복음과 같은 예수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참된 평강이 임하려면 예수님께서 우리 삶의 주인이 되어 주셔야 합니다. 나의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근신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를 세워 가야 합니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이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성도님들과 우리의 다음 세대 위에 충만히 임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