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할 자]
임대선 목사
나훔 3:1~7
안녕하세요? 선교국을 섬기고 있는 임대선 목사입니다. 오늘은 선교국 헌신 예배로 드립니다. 선교국은 구속사의 말씀이 필요한 곳에 큐티인을 통해 복음으로 삶을 나눌 수 있도록 돕는 선교사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들교회는 국내외 Think Trip에 전 세대가 동참하고 있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 전 세계를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시는 그 일에 저와 여러분들 모두 함께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 생명을 살리는 일에는 먼저 위로받은 자가 위로자가 되어서 구원을 위해 고난의 약재료를 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곁에 진정한 위로를 받아야 할 그 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약재료를 잘 나누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위로할 자'는 어떠해야 하는지 말씀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화 있을진저’도 외쳐야 합니다.
나훔 선지자는 니느웨를 향해서 ‘화 있을진저' 외치며 망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자신들을 핍박했던 니느웨가 망한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유다 백성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아마도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과거 요나의 외침에 회개했던 니느웨는 130여 년이 지나 다시 죄악의 길로 ‘유턴’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힘을 의지하여 다른 민족들을 더 잔인하게 괴롭히는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돌이켜 회개했다면 공동체와 함께 십자가 말씀을 따라 사명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들은 또다시 죄를 반복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부러울 것 없는 군사력과 경제력을 갖춘 니느웨에게 축복이 아닌 ‘화’를 선포하십니다.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라는 외침은 니느웨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우리는 죄를 죄라 말하지 않는 위로에 너무 익숙합니다. 그러나 회개 없는 평안, 십자가 없는 은혜는 영혼을 살릴 수 없습니다.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통을 존중하되 우상은 우상이라 말해야 합니다. '위로할 자'는 공동체에 묻고 분별하며 때로는 불편한 말도 해야 합니다. 2026년 새롭게 개편된 목장에서 ‘화 있을진저’의 말도 잘 듣고 외치며 서로 위로하고 받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저는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며 스스로 위로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아버지께서 교회 개척을 하셨는데 어머니의 외도와 불법 다단계 문제로 이혼하셨고, 교회와 가정은 모두 무너졌습니다. 동생과 저는 옥탑방과 지하방을 전전하며 살았습니다.
우리들교회에 와서 처음으로 제 이야기를 했을 때, 담임목사님의 눈물 섞인 공감과 “약재료가 많다”라는 말씀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후 사역 중 담임목사님께서 제게 “말씀은 들리니? 얼굴이 어둡다.”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소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지금 그것이 진정한 위로임을 깨닫습니다.
둘째, 거짓 위로에 미혹되면 안 됩니다.
니느웨는 겉으로는 강하고 화려했지만, 실상은 사람들을 속이는 성이었습니다. 달콤하고 현실을 가리는 거짓 위로의 특징은 듣기 좋고 부담이 없고 회개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변화가 없어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현실에 안주하게 하는 것이 사탄의 가장 무서운 전략입니다. 니느웨는 자신들은 괜찮다고 믿었기 때문에 심판이 왔을 때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습니다.
참된 위로는 '오직 예수님만 길이요 진리'라고 전하고 우상숭배에서 돌이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SNS에서 사람의 인정을 통해 위로 받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주는 위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말씀의 위로가 그 영혼까지 살립니다.
하나님이 니느웨를 망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유다의 회복이 목적입니다. 앗수르의 멸망을 보여주심으로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라는 경고의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변함없는 위로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듣기 좋은 달콤한 위로에 미혹되지 말고, 말씀으로 위로받고 위로하는 저와 모든 성도님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위로는 ‘위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5절에서 하나님은 '니느웨의 치마를 걷어 올려 그들의 본모습인 죄악과 부패를 만천하에 공개하겠다'라고 경고하십니다. 실제로 니느웨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며 국제적인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죄는 사람을 벌거벗게 하고 부끄러움을 드러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자기들의 벗은 몸을 보고 부끄러워 무화과나무잎으로 자신을 가렸던 것처럼, 하나님 없는 성공과 우상숭배의 결말은 수치와 능욕뿐입니다. 죄로 인해 황폐해진 니느웨에는 그를 위해 울어줄 사람도, 위로해 줄 사람도 한 명 남지 않았습니다.
'나훔'은 위로자라는 뜻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심판을 선포합니다. 나훔은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니느웨에 심판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런데 이 심판의 말씀으로 인해 유다 백성은 '위로부터 오는' 참된 위로를 받습니다.
위로는 내 말과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위로는 한계가 있고 변하지만,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위로는 자비와 긍휼이 결코 변하지 않는 신실한 은혜입니다.
이 위로를 받은 우리는 한 영혼을 찾아가 그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Think Trip은 그 한 영혼 만나러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한 영혼을 만나러 갈 때, 하나님께서 바로 그곳에서 우리를 만나주실 것입니다.
작년에 코스타리카 선교사님의 요청으로 Think Trip을 준비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거리와 비용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고, 팀원 모집도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꼭 필요한 여덟 명의 팀을 꾸려 주셨습니다. 선교사님은 코스타리카에서 22년 동안 선교하셨는데, 우리들교회 선교팀이 한국에서 오는 첫 팀이라며 감격하셨습니다. 선교사님 부부는 말할 수 없는 위로를 얻었고, 우리 팀은 여러 교회를 방문하며 많은 사람에게 큐티와 복음을 전했습니다.
올 한 해도 전국 방방곡곡 전 세계에 큐티인을 전하며 귀한 사명 감당하시는 저와 우리 모든 성도님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화 있을진저’의 말씀이 나를 살리는 하나님의 진정한 위로입니다. 달콤한 위로에 미혹되지 않도록 위로부터 오는 말씀으로 회개하고 돌이켜 참된 위로를 전해야 합니다. 올해 표어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리라(겔 47:12)' 말씀 붙들고 생명 살리는 귀한 사명 감당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