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김상건 장로
창 4:26
추수감사절 전도 축제에 오신 VIP 여러분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저는 김상건 장로입니다. 오늘 본문에 '에노스'라는 단어는 전적으로 무능하고 부패한 인간을 뜻한다고 합니다. 저와 제 가족이 에노스 같은 가정이었기에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가인의 집안은 세상적으로 잘되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고, 반대로 셋과 에노스의 집안은 약하고 무능한 집안이었지만 놀랍게도 인류 최초로 공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에노스 관계에는 어떤 특징이 있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에노스를 찾아가 만나주십니다.
제 인생은 가인의 인생이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저를 ‘김 독사’라고 불렀습니다. 돈 버는 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돌보지 않고 술과 음란에 빠져 살다 3년 만에 이혼 소장을 받았고, 재결합했다가 다시 헤어지고, 결국 혼자 사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골프 동호회의 지인으로부터 “교회 한 번 나와보라”라는 말을 듣고 2008년 처음 예배당에 들어섰습니다. 솔직히 말씀은 어렵고 잘 몰라서 포기하려던 차에 마지막으로 부부목장에 나갔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먹는 집밥과 된장찌개가 너무 맛있었습니다. 식사 중에 한 여자 집사님이 “부인은 왜 안 오셨어요?” 3번이나 물어보셔서 “이혼했으니까, 혼자 왔죠!”라고 짜증을 내면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놀라지 않아서 제가 더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 ‘내 이야기를 못하고 사는 게 지옥이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혹시 이 자리에 오신 분 중에 지옥을 사시는 분이 계신다면 너무 잘 오셨습니다. 숨기는 게 얼마나 힘들고 눌리는지 너무 잘 압니다. 그때 그분들이 아무도 놀라지 않았던 것은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는 담임목사님의 양육을 그동안 너무 잘 받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목장 마지막 순서로 기도가 있었습니다. 제 차례가 되었는데 망설이다가 다들 기다려서 어쩔 수 없이 '하나님 아버지!' 한마디를 했습니다. 이날이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날입니다. 눈물이 하도 나서 그다음 말을 잇지를 못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에노스의 고백을 기뻐 받으십니다.
저는 회사에서 흠이 될까 두려워 이혼 사실을 숨기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날 간증에서 한 집사님이 안마시술소를 다녀왔다고 회개 간증을 하시는 것입니다. 당시 저도 회사에 제 이야기를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용기도 얻고 양육을 받으면서 은혜가 더해져서 오픈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회사 이메일로 "그동안 성공을 위해 일, 술, 음란 중독으로 가정을 돌보지 못해 이혼까지 하게 되었고,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중이고 저 때문에 상처받은 분들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하며, 꼭 교회에 나가보시라"는 내용을 고민 끝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또 아무도 놀라지 않는 겁니다. 오히려 많은 위로의 답장을 받았고 이렇게 적용하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구나!’를 깨달았습니다.
또 한 분의 에노스를 소개합니다. 교회 다니기 전 함께 술 마시던 동생이 있었는데 약물중독으로 구속되었다가 출소 후 제게 다시 연락해 왔고, 교회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다시 구속되고, 출소 후에도 믿음 생활을 오래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13년 후 다시 연락이 와서 만나게 되었는데, 몸이 아파 목장도 안 나가겠다는 그 동생을 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하지만 그 동생은 저에게 “형은 믿음 소망은 있는데 사랑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침, 그날이 회사에서 해고 통지받은 날이어서 마음이 더 힘들었고, 동생의 그 말이 오래 묵상 되었습니다. 결국 제가 교회 봉사를 열심히 했지만, 사람을 차별하고 어깨에 힘만 들어갔던 것을 깨달았고 제 인생의 결론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연약한 가정이라도 지키는 것을 가장 기뻐 받으십니다.
교회로 인도해 준 지금의 아내와 결국 재혼을 결심했습니다. 목사님께 찾아가 상담을 드렸더니, “재혼은 아프리카 선교보다 어렵고, 가시밭길이라고 반드시 전처에게 돌아가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혼해 보니, 정말 재혼은 ‘죽음’이었습니다.
한번은 큰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말씀이 생각난 것이 아니라 장유유서가 생각나서 전처에게 물을 먼저 주었고, 집에 오는 차에서 지옥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현처가 전처에게 우리들교회 성도의 귀한 간증이 실려있는 '이슬비'라는 책자를 건네주었습니다. 2016년 송구영신 예배 때 전처가 큰 아들과 교회에 왔습니다. 그날 저는 강단에서 ‘아버지 대표기도’ 순서였는데 가정을 파괴한 제 모습이 부끄러워 아이들에게 미안했습니다. 저는 이혼은 삼대가 고통인 것을 알기 때문에 누가 이혼한다고 하면 애통함으로 말리고 있습니다.
큰아들이 중학교 때 청소년부 수련회에 참석했었는데, 둘째 날 저녁 기도회 때 눈물을 흘리고 기도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 앞에 가슴이 무너져, 무릎을 꿇고 아들을 안고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하며 서로 통곡 하며 기도 했습니다.
오늘 공동체 고백은 저의 큰아들이 하겠습니다. 제가 세 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성인이 되기 전까지 친엄마와 살았습니다. 초등학교 때 아빠를 따라 처음 교회에 갔고, 4학년 때 아빠는 재혼하셨습니다. 하지만 새엄마도 이혼 가정의 고난이 있으셨고, 그 나눔을 들으며 마음이 조금 열렸습니다. 20살 무렵 친엄마가 저를 돌보시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 아빠 집에 들어갔지만, 잦은 싸움과 어색한 환경 속에서 감정을 숨기며 방안에만 머물렀습니다. 이런 상황에 지친 저는 공동체에 나누며 제 이야기를 하다 보니 회피만 하며 나만 생각했던 죄를 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 감정들을 큐티 책에 적어 내려가다 보니 어린 시절의 외로움과 서운함을 직면하게 되었고, 낯선 환경인 새엄마와 아빠의 집으로 들어오게 되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짖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부모님의 이혼과 재혼으로 상처가 있는 분들도 공동체와 함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이 자리에 처음 오신 VIP분들, 살아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발걸음이 하나님께 드리는 첫 수확의 예배’가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