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심령]
이성훈 부목사
시 51:10~17
여러분, 신학 교과서를 끝까지 보다 보면 토투스 크리스투스(전체 그리스도)라는 신학적 개념이 나옵니다. #039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인 우리가 연합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이 온전한 그리스도를 이루는 지체#039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제가 전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 깨달아져서 너무 부담되었지만, 말씀드린 #039토투스 크리스투스#039에 따라 성도님의 상한 심령의 삶과 적용에 힘입어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본문을 통해 상한 심령#039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믿음의 사람 다윗도 백전백승하니 타락하게 되어 충성된 장수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고, 그를 전장에서 죽게 만듭니다. 그 후 일 년 동안 그것에 대해 침묵했습니다. 그러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찾아와 그 죄를 정면으로 지적합니다. 승리를 거듭하며 최고의 왕권을 누리던 다윗은 선지자의 고발에 얼마든지 회피하며 발뺌할 수 있었지만, 그는 무릎을 꿇고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고백하며 회개하였습니다. 다윗이 회개하며 깨달은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바로 자신이 날 때부터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상한 심령은 그냥 상처받은 마음, 상심이 아닙니다. #039산산조각 나서 완전히 부서지고, 무너진 영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조각들을 다시 모아 반죽해서 전혀 새로운 그릇으로 빚어가십니다. #039상한 심령#039은 아직 완성은 되지 않은, 여전히 제작 중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오늘 크고 작은 상처, 죄와 연약함 때문에 절망하고 계신다면 이미 새로운 피조물의 증거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죄악에 대해 맞서 싸우며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곧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처와 갈등이 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나아가 성령 충만하게 해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즐거운 사명자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 중에 유일하게 영원한 것은 구원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즐거움만이 영원히 이어지는 진정한 즐거움입니다. 하지만, 이 즐거움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합니다. 죄는 우리의 구원을 빼앗을 수 없지만, 구원의 즐거움은 빼앗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회개하고 주께 돌아올 때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나를 붙들어 주소서 기도하였는데, 이것은 자신이 넘어질 수밖에 없고, 이미 죄 가운데 넘어져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다윗은 #039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붙들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내 이익 때문에 선택하며 노예근성으로, 조건적으로 선택합니다. 자원하는 심령은 순종의 이유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귀한 시간을 하나님 앞에 예배로 드리고, 하루를 시작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그래서 오늘 자원하는 심령을 한마디로 말하면 사랑입니다.
구원의 즐거움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시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적용이 바로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의 삶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내가 이 복음을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다윗은 죄인은 심판받고 혼나야 한다.가 아니라, 죄인은 주께 돌아와야 한다.라고 담대히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의 확신 때문에 절망 할 것밖에 없는 상한 심령은 즐거운 사명자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제사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은 형식적인 예배와 거짓 예배입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왜 제사를 바라시고 구하실까요?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기쁨과 사랑 때문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 말씀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예배는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이며, 존재이고 삶 자체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상한 심령입니다. 다윗은 상한 심령을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라고 표현합니다. 통회는 깊이 뉘우치고 깊이 회개한다는 뜻인데 이것을 원어로 보면 완전히 뭉개져서 가루가 되었다라는 뜻입니다. 진짜 예배는 이처럼 부서지고 으스러진 상한 심령으로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공동체 고백은 아주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신 한 성도님의 간증입니다.
결혼하면 행복할 줄 알았지만, 시댁살이는 더 힘들었다고 합니다. 결혼 전에는 자상하던 남편이 결혼 후에는 시댁 편에 서서 입에 담기 힘든 욕을 퍼부었고, 집사님은 결국 참지 못하고 가출해 다른 남자를 만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 아들이 큰 교통사고를 당해, 남편에게 맞아 죽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사이 남편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남편은 무릎을 꿇고 눈물로 용서를 구하며 아내를 안아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분은 은혜를 잊고 오히려 남편을 괴롭혔고, 이어서 암과 재정 문제 등 큰 시련들이 찾아와 많은 고난을 겪고서야 자신이 돈과 남편을 우상 삼았던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바람피운 아내를 버리지 않고 함께 살아주고 가정을 지켜준 남편이 최고이며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라는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상한 심령의 고백입니다.
여러분, 상한 심령은 새로운 피조물이고 즐거운 사명자, 하나님의 제사입니다. 우리가 두 손을 들고 상한 심령으로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 주님이 기쁘게 받아주시고 안아주시고 즐거운 사명자로 하나님의 제사로 만들어 가실 줄 믿습니다. 우리의 상처 입은 마음을 상한 심령으로 새롭게 창조해 주시도록 기도하는 성도님 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