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앞에 앉아서]
이성훈 부목사
삿 20:18~28
여러분, 사사기 전체의 교훈은 아무 소망을 가질 수 없는 죄인인 우리가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 앞에 앉아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 여호와 앞에 앉아 있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답이 있을 때는 아닙니다.
18절에 이스라엘의 열한 지파가 베냐민 지파를 치러가기 전에 하나님께 '누가 먼저 올라가서 싸울까요?' 묻습니다. 하나님은 '유다가 올라가라' 라고 하셨지만, 전투결과는 대참패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물었고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 데다, 군사 수도 압도적으로 많으니 당연히 이긴 싸움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패배라는 결과에 몹시 억울하고 화가 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 불만과 억울함과 분노가 사인입니다. 문제의 원인이 상대방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들이 틀렸다고 평가받을 때 화가 나고 억울해하며 불평합니다. 내가 확신했던 정답이 오답이라고 하니까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기브아에서 일어난 극악무도한 범죄와 그것을 두둔한 베냐민 사람들은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확실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했고,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 기브아를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자기들끼리 전쟁하기로 다 결정해 놓고, 하나님께 '누가 선봉에 설까요?' 묻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 앞에 앉아서 질문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자기들 앞에 앉혀놓는 거만한 선택을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패배를 통해서 그들 스스로 정한 답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겁니다.
둘째, 힘이 있을 때도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큰 패배를 당했지만 곧 #039스스로#039 용기를 내어 회복합니다. 이만 이천 명이나 죽었지만 아직 삼십칠만 팔천 명이 남았으니 극복할 힘이 자기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번에도 싸울 준비를 다 해놓고 전열을 다 갖추어놓은 다음에 여호와 앞에 올라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날이 저물도록 울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회개의 눈물이 아닙니다. 이 눈물은 이해되지 않는 패배에 대한 분노와 서러움의 눈물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 다시 나아가서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비장하게 묻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아직 힘이 있으니 다시 싸울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에 동의만 해주시면 됩니다!'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물었다면 전열을 갖추기 전에 패배한 채로 하나님께 그대로 나와서 물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번에도 올라가서 치라고 답하시는데, 너희 마음대로 해.라고 그냥 허락하시는 겁니다. 그들은 이번에도 패배합니다. 피해를 감수할 힘이 남았다고 자신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진심으로 구하지 않은 그 악에 대한 결론입니다. 우리는 잘못된 길에서 결코 스스로 돌이킬 수 없습니다. 힘이 빠져야 열심히 가던 길에서 멈추게 되고 그때야 비로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할 수 있습니다.
셋째, 울며 회개할 때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세 번째로 하나님 앞에 올라갑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039온#039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갔다고 기록합니다. 지금까지 그들에게는 답이 있었기 때문에 #039모든#039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올라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답이라고 믿고 의지하던 것이 사라지니 비로소 하나님을 찾고, 실패한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올라갑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날이 새도록 앉아서 금식하고 울며 회개합니다. 그리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립니다. 예배가 회복된 것입니다. 그러자 질문이 싸우리이까? 말리이까?로 바뀝니다. 여러분, '말리이까?'가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는 전적인 죄인이기 때문에 사명을 감당하다가도 내 야망과 욕심이 생깁니다. 그래서 '말리이까?' 질문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게 제대로 된 질문을 하면서 하나님께 뜻을 맡기니 하나님은 승리를 약속해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앉는 것의 반대는 무엇일까요? 사사기 전체를 커다란 종이에 써서 반으로 접었을 때, 여호와 앞에서라는 구절이 있는 끝단 20장 26절과 만나는 구절은 2장 12절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다.입니다. 그리고 중간에 접히는 부분은 10장 10-16절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렸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고 버릴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그것이 우리의 실체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건져주시기 위해 그 사사, 바로 하나님이 우리의 사사가 되어주십니다.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스스로 나아가서 앉을 수 없기 때문에 #039그 사사#039되신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공동체 고백입니다.
무서운 어머니 밑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한 성도님은 자신의 외도로 이혼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어머니께서 알렸을 때, 불같이 화내실 줄 알았는데 '우리들교회에 오라'는 한마디만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분이 공동체에 오셨고, 가정을 지켰습니다.
최근 어머니께서 천국에 가셔서 장례 예배를 드렸는데, 암 투병 중이신 가족 한 분이 사업을 하며 대출받는 과정에서 가족들에게 많은 상처 준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셨다고 합니다. 다른 형제들도 그동안 섭섭했던 마음을 다 털어놓으시면서 화해를 청하는 나눔을 이어가셨다고 합니다. 걱정 가득 시작한 나눔이었지만 가족들 안에 오랫동안 쌓였던 깊은 골이 채워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유독 눈물을 많이 흘리던 한 분이 가족들의 나눔을 들으면서 은혜받고 우리들교회에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천국 가신 어머니를 비롯한 모든 유가족이 각자 그 자리에 앉아 말씀으로 나누고 회개하면서 화해하였습니다. 이것이 여호와 앞에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답이 있을 때 여호와 앞에 앉을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답이 없어지고 힘이 사라져서 울 수밖에 없을 때, 여호와 앞에 앉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 왕이 되어 내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려는 나의 교만을 회개합시다.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신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왕으로 모시는 모든 성도님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