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헤립 때문에]
왕하 19:20~28
우리는 너 때문에 못 살겠어가 주제가입니다. 히스기야에게 산헤립이 그런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산헤립 때문에 힘들 때 우리는 절망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내 편이신 하나님께서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가 산헤립의 무서운 편지를 받고 여호와 앞에서 기도하니, 이사야 선지자가 보낸 사람들이 도착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하시며 급박한 상황에서 드린 간절한 기도에 지체 없이 응답하십니다. 히스기야에게 산헤립은 생각만 해도 무서운 존재이고 싫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이런 힘든 사람, 어려운 문제와 상황 때문에 슬퍼하고 분노하고 원망하고 절망합니다. 우리에게는 떠나고 싶고, 이혼하고 싶고, 죽고 싶은 온갖 이유와 각양각색의 때문에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산헤립들 때문에 내 마음대로 저지른 일들은 또 다른 때문에로 이어집니다. 이 땅에서 당하는 모든 고난은 불평하고 억울해할 이유가 아니고, 하나님께 기도할 이유이자 기도 제목입니다. 22절에 하나님은 '네가 누구를 꾸짖었으며 비방하였느냐 누구를 향하여 소리를 높였으며 눈을 높이 떴느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그리하였도다' 하시며 자기 백성과 자신을 동일하십니다. 이처럼 우리 주님은 우리를 자기 생명보다 더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착하고 잘나서가 아니라 주님이 자기 생명을 버려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산헤립 때문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그럴 때일수록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내 편이시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산헤립도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23-24절에 하나님은 '내가 많은 병거를 거느리고 여러 산꼭대기에 올라가며 레바논 깊은 곳에 이르러 높은 백향목과 아름다운 잣나무를 베고 내가 그 가장 먼 곳에 들어가며 그의 동산의 무성한 수풀에 이르리라' '내가 땅을 파서 이방의 물을 마셨고 나의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강들을 말렸노라 하였도다' 하시며 산헤립이 하나님을 비방하며 한 말을 직접 알려주십니다. 여기서 제일 많이 반복되는 단어가 바로 내가입니다. 산헤립의 관심사는 온통 자기 자신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산헤립의 교만이 있습니다. 나의 산헤립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과 사건이기도 하지만 바로 내 자신이기도 합니다. 25절에 '네가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은 내가 태초부터 행하였고 옛날부터 정한 바라 이제 내가 이루어 너로 견고한 성들을 멸하여 무너진 돌무더기가 되게 함이니라' 하십니다. 산헤립은 자신이 세상을 움직이는 줄 알았지만, 하나님께서 산헤립을 움직이고 계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세상을 지배했던 앗수르왕 산헤립은 유다를 징계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구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산헤립 때문에 걱정하고 고민하고 두려워할 게 아니라 산헤립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산헤립의 악을 하나님께서 다 아십니다.
하나님이 산헤립을 심판의 도구로 쓰시니, 당시 서로 높음을 자랑하던 많은 민족과 나라들이 앗수르에 망해서 무너진 돌무더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심판당한 그들보다 심판의 도구가 된 앗수르의 악은 커져만 갑니다. 앗수르는 자신이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분수를 지켜야 했지만, 자기도취에 빠져서 자기가 주연인 줄로 착각했습니다. 27절에 '네 거처와 네 출입과 네가 내게 향한 분노를 내가 다 아노니''네가 내게 향한 분노와 네 교만한 말이 내 귀에 들렸도다'고 합니다. 거처는 존재를, 출입은 행위를 가리키는데, 하나님은 산헤립이 어떤 사람인지 그의 모든 행위를 다 아십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말과 속삭임, 심지어 마음의 생각까지라도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전부 다 하나님 귀에 들리는 줄 믿습니다. 그리고 28절 후반부에 '그러므로 내가 갈고리를 네 코에 꿰고 재갈을 네 입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끌어 돌이키리라 하셨나이다'합니다. 하나님이 산헤립이 왔던 길로 돌아가게 한다는 것은 영원한 심판과 멸망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산헤립 같은 고난 때문에 낙심될 때 하나님 편에 서서 내 죄를 보며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모든 때는 목적이 있고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과 공간에서 그 작은 일에 순종하면 시공을 초월할 수 있는 엄청난 선물을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자유입니다.
우리들교회 협동 목사님이신 황성주 박사님의 칼럼에 따르면, 영국은 명목상 기독교 인구가 많지만, 실제 거듭난 신자는 9% 미만으로, 영적으로 쇠퇴한 상태에 놓였다고 합니다. 반면, 나이지리아는 매우 열악한 환경과 부패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기도 운동과 부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가 이 나라를 뒤덮고 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교회의 기도와 간구가 살아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한국은 과거 가난하고 힘들던 시절에 부흥을 경험했지만, 지금은 믿는 분조차도 하나님께 묻지 않는 영적 침체기에 있습니다. 여러분, 나라의 문제가 심각하고 믿는 성도가 소수이더라도 각자의 산헤립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산헤립 때문에 기도해야 할 이유는 내 편이신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산헤립은 하나님이 징계로 쓰시는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산헤립의 악을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믿는 성도가 소수에 불과할지라도 산헤립 때문에 드리는 나 한 사람의 회개 기도가 가정과 나라를 살리게 될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