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하여 구원하리라]
왕하 19:29~37
지난 한 주간, 새벽 예배를 통해 큐티 목회하시는 목사님들과 함께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THINK HUB 교회 목사님과 사모님들의 구속사 간증은 큐티 목회가 강에서 바다로 나아가는 것을 실감하는 기도회였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구원받지 못한 것 같은 현실 앞에서 실망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를 어떻게 보호하여 구원하시는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여호와의 열심이 이루십니다.
히스기야가 산헤립 때문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더니 놀랍게도 말씀뿐 아니라 징조도 주십니다. 말씀은 들려주시는 것이고 징조는 보여주시는 것인데, 들은 말씀을 확실히 믿을 수 있도록 하나님은 징조를 통해서 확신을 주십니다. 그 징조의 내용은 백성이 농사는 못 지었지만, 금년에는 밭에서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고 후년에는 다시 농사지어서 얻은 수확물을 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예루살렘이 앗수르 군대에 포위되어 있으니 저장한 식량이 떨어지면 먹을 게 없습니다. 밭에 나가 농사도 짓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아직 굶어 죽지 않고 살아있는 암담한 현실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최고의 징조입니다. 겪을 일 다 겪고 살아남아 깊은 슬픔과 절망에 놓여 내일을 생각할 수 없는 사람에게 다시 뿌리를 내리고, 다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피하고 남은 자가 되어 갇혀있는 현실의 목적지는 멸망이 아닌 다시!의 회복입니다. 열심은 무엇을 잃지 않으려는 불타는 사랑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절대로 빼앗기지 않으시려는 이 열심으로 자기 백성에게 다시 뿌리를 주시고 다시 열매를 주십니다. 모든 악으로부터 다시 살아나게 하는 유일한 힘은 여호와의 열심입니다.
둘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시기 때문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 성에 이르지 못한다고 강조합니다. 세계 최강 앗수르 군대가 자신들에게 이미 포위된 예루살렘을 향해서는 전쟁을 위한 화살을 쏘지 못하고 방패를 세우지 못하며 토성도 쌓지 못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을 공격하지 못하고 오히려 오던 길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들이 돌아가도 예루살렘을 스스로 지킬 힘이 없으면 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닌 하나님과 다윗을 위하여 베푸신다고 합니다. 보호하리라로 번역한 히브리어 가나는 성경에 딱 일곱 번만 쓰였는데 일곱 번 모두 보호하는 대상이 예루살렘입니다. 문자적인 예루살렘이 아닌 영원한 하나님의 도성인 새 예루살렘 즉 교회와 성도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기 생명보다 귀하게 여겨 자기 아들을 죽이신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이 대신 맞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떠하든지 모든 성도 대표인 다윗과 맺으신 언약 때문에 우리를 반드시 보호하여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인간은 양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양은 연약하고 미련한 동물로, 겁도 많고 집단 심리에 잘 휘둘리며 혼자 힘으로는 길도 못 찾고 넘어지면 일어나지도 못합니다. 목자는 이런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 깨어 있습니다. 하지만 양은 목자가 보이지 않으면 없는 줄로 착각합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돌보심 속에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쉽게 불안해하고 신뢰를 잃습니다. 그래서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이 우리와 늘 함께하신다는 목자의 음성을 날마다 듣고 신뢰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셋째, 이 밤에 말씀대로 역전하십니다.
예루살렘을 보호하여 구원하시겠다는 말씀이 임한 그 밤에 하나님은 천사 한 명을 보내 앗수르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치십니다. 앗수르가 자기 힘을 믿고 교만하게 하나님의 백성을 빼앗으려 하니까 하나님이 바로 응징하십니다. 말씀대로 상황을 바꾸어 역전하시는 겁니다. 하룻밤 새 모든 군대를 잃은 산헤립은 말씀대로 앗수르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이 밤이 산헤립에게도 불현듯 찾아옵니다. 이 세상에 반역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자신한 그의 두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십팔만 오천 명의 군대가 순식간에 송장이 된 그 밤의 사건은 그가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갈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산헤립에게는 아직 앗수르라는 대제국과 돌아가 편안히 거할 니느웨와 궁궐이 남아있어 하나님께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산헤립은 비참한 죽음에 이르는 역전의 주인공이 되었고, 반면에 히스기야와 예루살렘은 살아나는 역전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이 밤과 같은 고난이 오면 즉시 하나님의 방패 아래로 도망해야 합니다. 내 방패를 믿고 세상의 방패 찾아 방황하지 말고, 하나님의 방패 아래로 그 날개 밑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곳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입니다.
공동체 고백입니다. 저는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들을 쉽게 정죄하며 살아왔습니다. 얼마 전, 재혼한 아내의 자살 시도를 겪으며 내가 이렇게 헌신했는데 왜?라는 생각 속에 무너졌습니다. 그 주 주일설교에 목사님의 '저의 죄를 용서하지 말아달라'는 기도를 듣고, 이 사건은 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치리임을 깨달았고 그때부터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낳은 자녀도 힘든데 남이 낳은 자녀 두 명에 자기가 낳은 우리 자녀 두 명까지 돌본 아내가 힘들었겠구나! 생각이 들면서 아내의 고통에 대해 애통함이 생겼고 저의 태도와 시선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드라마를 보는 아내를 비난했지만, 지금은 관심을 갖고 함께 보기도 하고, 아침에 늦잠 자는 아내를 더 자라고 배려할 만큼 달라졌습니다. 재혼 가정의 어려움 속에서 자녀들과의 관계에도 많은 아픔과 깨어짐이 있었지만, 말씀과 공동체가 있어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고 말씀 안에서 다시 살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구속사로 말씀을 깨달아 내 삶을 해석할 수 있는 게 가장 보호하여 구원받는 비결입니다. 내가 말씀을 깨달으면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현재 어려운 상황과 고난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최고의 징조입니다. 고난 가운데 살아남아 가장 깊은 슬픔과 절망에 놓인 우리가 피하고 남은 자가 되어 다시 회복시키시는 은혜로 모두 역전의 주인공이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