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손윤상 부목사
렘 34:1~7
안녕하세요? 원주에 개척을 준비하고 있는 원주의 남자 손윤상 목사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호와의 말씀, 구속사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기복과 성공 야망으로 돌아가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시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들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첫째, 자신에게 절망해야 합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모든 군대와 나라, 백성을 동원해서 예루살렘을 빠르고 확실하게 함락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에도 지금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해 의지할 것이 없고 일어날 힘이 없는 그때를 맞이하고 계신 분이 계십니다. 그런데 이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였다고 합니다. 말씀 전해주는 한 사람이 있다면 거기에 살길이 있습니다.
저희 가정도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온 것처럼, 아버지 사업이 망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오니 빚쟁이들이 돈 내놓으라고 하여 사방에 욱여쌈을 당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도망가듯 울산으로 내려가 빛도 들어오지 않은 단칸방에서 내팽개친 것 같은 삶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여자 집사님이 찾아오셔서 예수 믿으라는 말에 어머니가 교회에 나가면서부터 살길이 열렸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늘어나는 조공 때문에 바벨론을 배신하고 애굽과 손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완전히 정복하고자 침공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셨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시드기야는 말씀을 듣지 않고 오히려 예레미야를 시위대 뜰 옥에 가두어버렸습니다. 그는 성이 무너지고 도망가다 잡혀 자기 앞에서 아들이 죽는 것을 봐야 했고, 바벨론 왕의 눈과 입 앞에 서는 철저한 패배와 수치, 자기 절망을 경험했습니다. 시드기야가 너무 교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루살렘 성보다 견고한 것이 우리 자아의 성입니다. 바벨론 왕의 눈과 입을 보는 자기 절망의 사건이 없이는 십자가가 보이지 않고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깨어지고, 무너지고, 십자가밖에 없는 은혜가 무엇인지 아는 그 사람을 쓰십니다.
둘째, 진정한 평안이 있습니다.
본문 4-5절을 보면, 그러나 유다의 시드기야 왕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네게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느라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평안히 죽을 것이며 하십니다. 그러나라고 하면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면 역전의 은혜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칼은 헤레브로 심판을, 평안히는 하나님의 최고 축복 샬롬입니다. 시드기야의 삶을 구속사로 보면 눈이 뽑히고 묶이고 갇힌 그 자리가 말씀이 임하는 축복의 자리입니다.
평원 사역을 하면서 장례 예배에 많이 인도하는데, 그때마다 모두가 별 인생 없이 공평하게 죽는다는 것을 봅니다. 남는 것은 신앙 하나밖에 없다는 것과 인생의 최대 복은 회개하고 예수 믿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여러분, 시드기야는 왕복을 입고 나라를 다스릴 때는 존경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죄수가 되어서 회개하니 모든 백성과 고관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자기 삶의 주어진 자리에서 회개하고 말씀 붙들고 가는 것이 자신에게는 평안이고,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평안을 누리는 사람들의 특징은 집착하고 일등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편안해지는 겁니다. 편안한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을 제가 보았습니다. 저도 불편한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누가 '목사님! 왜 그러셨어요?' 하면 '그게 아니고'라고 마음 상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송하다. 맞다. 저는 더 실망할 것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기도해달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자기 죄를 나누며 허락하신 환경에 매여서 안목의 정욕을 뽑고 날마다 큐티하고 주신 말씀으로 해석해 가면서 사람 살리는 인생 되기를 소망합니다.
셋째, 멸망 중에도 구원받을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6절에 보면 예레미야가 모든 말씀을 시드기야게에 아뢰었다라고 하는데, 이는친절하게 안내자가 되어 설명한다. 신부에게 구애하듯이 애절하게 말한다.입니다.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왕을 구원하기 위해서 칼날 위에 물방울과 같이 호호 불어가면서 그 모든 말씀을 누락시키지 않고 다 전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 때가 임하는 것을 보면 절망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완전히 심판하시리라 하시는 그 말씀 속에 하나님이 찾으시는 남은 자들이 있습니다. 심판과 구원이 공존하기 때문에 에레미야는 남은 사명을 바라보면서 영혼들을 찾고 섬기고 애통해하며 구원을 위해 수고한 것입니다.
원주 개척을 앞두고 제가 어떻게 영혼을 섬길 수 있을지, 매주 어떻게 말씀을 전할 수 있을지, 목사의 자격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자인데 두려운 마음이 들고 엎드릴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모든 말씀을 무턱대고 무례하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심판 속에서 찾아야 할 영혼이 있다는 것을 믿고 애통하면서, 영혼을 사랑하며 칼날 위의 물방울처럼 구애하듯 설득하며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무너진 인생 가운데 구속사의 말씀이 들리는 은혜를 우리 모두에게 주셨으니,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속사의 말씀을 끝까지 증거해서 주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을 구원하는 복된 증인 공동체로, 말씀 공동체로 세워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원주에도 이런 구속사의 말씀을 전하는 도피성 교회가 세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여호와의 말씀이 들리려면 자기 자신에게 절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절망 중에도 평안을 주시고 남은 자가 있게 하십니다. 날마다 말씀이 들려 내 죄보며 말씀에 매여 무너진 수많은 영혼에게 인생을 해석해 주고 사명 감당하게 하는 사람 세우는 공동체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