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성전]
김성철 초원지기
눅 19:45~20:8
안녕하세요! 김성철 장로입니다. 저는 기도의 집이 되어야 하는 곳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죄인으로, 자격 없는 제가 감히 예수님께서 저를 어떻게 가르치시며 여기까지 오게 하셨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는 각자가 성전이기에 강도의 소굴이 되어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나와 내가 있는 곳이 기도하는 성전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첫째, 내 속의 강도를 내쫓아야 합니다.
주님은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인데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다고 하십니다.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성전에 와서 성전세를 내는 과정에서 이익을 취하고 제물로 바치는 비둘기를 몇십 배로 팔아 폭리를 취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통칭해 예배하는 백성이 아니라 장사하는 자들이라고 꾸짖으시며 내쫓으십니다. 이렇게 교회에 각자의 유익을 감춘 채 주님의 집에 나의 유익과 복을 구하며 기복으로 오는 발걸음이 강도의 발걸음입니다. 또한 가족들을 주의 일꾼이 아닌 돈과 성공의 일꾼으로 부추기는 것이 강도의 소굴을 만들고 장사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저는 지긋지긋한 개업의를 그만두고 자유롭게 여행 다닐 수 있도록 아내가 재테크를 공부하며 돈을 불리고 자녀의 공부를 책임지며 제가 못 이룬 대학 교수의 꿈을 이루어 주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개업의로 승승장구할 때 아내의 거식증과 알코올 중독, 외도로 정점을 찍으니 이혼하려는 목적으로 교회에 왔습니다. 이것이 제가 첫 번째 강도의 소굴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첫 예배에서 담임 목사님은 '어떤 중독자라고 해도 친엄마보다 더 좋은 엄마는 없다, 아프다고 버린다면 개, 돼지와 다를 게 무엇이냐?'는 말에 이혼은 접었지만, 그다음은 아내의 병 낫는 것이 목적이 되어 교회를 이용하는 두 번째 강도로 이어졌습니다. 저의 모든 주장은 결국 강도의 소굴을 만들지 못해 억울했던 장사하는 자의 논리와 주장이었으니, 내쫓으셔야 마땅한 것은 바로 제 속의 강도들이었습니다.
둘째, 날마다 귀를 기울여 가르치심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강도의 소굴이 되었던 성전에 들어가셔서 직접 부패함을 내쫓으시고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내내 치유와 기적과 이적을 모두 복음 전파에 사용하시며, 십자가 죽음으로 나아가는 그 순간까지 가르치심을 이어가셨고 기도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에 의해 자신들의 악이 드러나는 것이 불쾌하고 기득권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니 어떻게든 예수님을 잡아 죽이기 위해 끊임없이 음모를 꾸몄습니다.
저 역시 피해자라는 생각에 가득 차 듣기를 거부하며 예수님을 죽이려 꾀한 지도자들처럼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고, 아내를 더욱 핍박하며 교회와 공동체를 조롱하고 비판하며 다시 강도로 무장했습니다. 그러다 저 푸른 초원 위에서 굿샷을 외치며 골프를 친 다음 날 허리디스크 파열로 응급수술을 받는 사건이 왔습니다. 이것이 아내와 공동체가 함께 저의 구원을 위해 기도한 응답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공동체가 하나 되어 귀를 기울여 말씀을 들으며 기도하니 결국 디스크 사건이 임했을 때, 제가 더 이상 우리 집에 예수님이 들어오시는 것을 막을 방도를 찾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하늘로부터 오는 권위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기쁜 소식, 복음입니다. 복음을 통해 영원히 살길이 열리고 하나님과 막힌 관계가 열리는데, 비리로 하나가 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그리고 장로들까지 예수님께 자격을 물으며 산헤드린 공회가 인정하지 않는 권위는 용납할 수 없고 그 권위는 결국 자신들에게 있다는 논리를 가지고 따집니다. 권위와 권력은 다른데, 권력은 인간이 부여한 이기적인 도구이지만 영적 권위는 하나님의 뜻을 따릅니다. 영적 권위는 십자가 지고 죽는 권위이고 나의 자아를 죽여 한 영혼을 살리고자 하는 권위입니다. 우리에게 권위를 주시는 이유는 오직 복음 때문입니다. 그러니 죽을 권도, 누군가를 죽일 권도 우리에게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넷째, 성령의 의논을 통해 대답할 때 이르시되의 응답을 듣습니다.
주님은 자격을 따지는 그들을 향해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묻습니다. 하늘로부터라고 하면 요한이 선포한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믿는다는 것이 되고,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는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우니 '모르겠다.'고 회피합니다. 성령의 의논은 구원을 위해 살리고 세우는 의논인데, 예수님을 모르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는 그들의 의논은 예수님을 신성 모독죄로 몰아가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스스로 신성 모독죄를 인정하게 되는 올무에 빠지게 됩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으면 날마다 옳고 그름으로 따질 것도 많고 자꾸 걸려서 넘어가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공동체 고백은 가족 우상과 내가 옳다고 외치는 세속사로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할 가정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던 김성철 장로의 고백입니다. 아내에게 교회 오기 전에도 협박성 메일을 썼었지만, 교회 온 이후에도 목자, 마을지기, 초원지기의 때마다 메일을 썼던 것을 이번 말씀 준비하며 다시 찾아 읽어보았습니다. 우리들교회에 와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아내가 살아났지만, 제가 원하는 가정의 모습으로 제 통제권 안에 들어오지 않아 끊임없이 분노했던 때였습니다. 메일 내용은 번호를 매기며 모든 부서를 내려놓을 것과 주일에 교회에서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나에게 먼저 보고할 것, 교회의 제안을 거절하고 나에게 토스할 것, 주일예배는 한 번만 드릴 것 등등이었습니다. 아내가 더는 못 하겠다고 힘들다고 할 때, 당시 중학생인 된 아들이 '오늘 말씀 듣고 은혜받은 사람이 엄마라면 엄마가 아빠를 받아주시는 게 맞죠. 무조건 먼저 사과하시고 잘못했다고 하세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나중에 들으며 아들이 저보다 백배 훌륭하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키워주신 우리 공동체에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나와 내가 있는 곳이 기도하는 성전이 되기 위해서는 내 속의 강도를 내쫓고, 날마다 귀를 기울여 가르치심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오는 권위를 받고 성령의 의논을 통해 대답할 때 이르시되의 응답을 듣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실수하고 사라질 것에 마음을 두며 헛된 것을 바라보는 우리이지만, 오늘도 우리를 붙드시는 예수님을 보고 성도님이 있는 모든 곳이 기도하는 성전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