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심하지 않는 기도]
송민창 부목사
눅 18:1~8
큐티엠에서 단행본 편집부 사역을 맡고 있는 송민창 목사입니다. 얼마 전, 저는 헌신이 너무 힘들다는 한 청년의 메모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너무 공감되었습니다. 우리들교회는 구원을 위해 서로 죄의 때를 밀어주는 목욕탕 교회니까 '우리의 헌신은 영적 세신이다'라는 말을 만들어보았습니다. 사랑과 결혼에는 헌신이 필요한데, 지금 세대가 결혼이 힘들고 아이 낳는 것도 두려운 이유가 기성세대인 우리를 통해 그 헌신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닌지 회개가 됩니다. 오늘 본문 억울한 과부의 비유를 통해 어떻게 낙심치 않고 헌신을 드릴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기도의 대상이 누군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낙심의 원어는 악함에 사로잡혀라는 뜻있는데, 악에 사로잡히니 소망을 잃어버리고 포기합니다. 낙심의 사전적 의미는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마음이 상한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낙심할 것을 아셨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면서 낙심하지 않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세상 나라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불의한 재판장 이야기를 기도에 넣으시며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장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낙심하는 이유는 잘못된 대상에게 기도하고 하나님을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그 대상이 신실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불의한 재판관 같은 저의 아버지로 인해 힘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이 전쟁과 슬픔을 멈춰달라고 골방에서 수없이 기도했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몰랐기에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분으로 오해했고, 언제부턴가 공구함에 있는 망치를 꺼내 들고 이 싸움을 끝내버리고 싶다는 무서운 생각을 반복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멍하니 현관에서 망치를 들고 있는데, 아래층에서 싸우는 소리를 듣고 올라오신 아주머니께서 제 모습을 보시고 눈물로 호소하셨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 이 일은 예수님께서 기도할 수 없었던 제게 아주머니의 모습으로 찾아오신 사건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둘째, 원수 갚음이 아닌 구속사로 응답받아야 합니다.
당시 과부는 약자 중 약자였고 착취의 대상이었는데, 그럼에도 과부는 불의한 재판관을 번거롭게 하며 끈질기게 찾아갑니다. 복수를 부탁하려면 불의한 재판관이 아니라 복수해 줄 다른 사람을 찾는 것이 더 나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 개인의 원수를 갚아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한을 풀어주는 것이 기도 응답의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 내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위해서 십자가 지신 그 예수님이 참 메시아이신 것을 알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끈질기게 지치지 말고, 기도하고 응답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장년부 예비목자를 인도할 때 저처럼 아버지 고난이 있으신 분이 원수에 대한 나눔을 하는 것도 시간이 충분히 필요하다고 하셨고 구속사가 깨달아질수록 아버지를 더욱더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저 역시 '아버지의 목자가 되어드려라, 아버지를 안아드려라, 아버지 얼굴에 입 맞춰 드려라.' 등 여러 가지 처방을 받았는데 구속사를 깨달을수록 아버지를 깊이 사랑하라는 말씀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불의한 재판장임을 인정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겐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십 대 때 어머니도 여윈 나이 차이 크게 나는 처남이 있습니다. 그에겐 아버지 같은 존재의 손길이 필요했을 텐데, 저는 게임에 빠져 방황하며 누나들을 폭행하여 피시방 갈 돈을 구하는 처남을 보고 분노하여 한 시간가량 폭행했습니다. 처남의 머리가 점점 부풀어 올라 황급히 병원에 가서 터진 피를 빼냈지만, 말씀으로 해석해 주는 공동체가 없었기에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생 아들을 보며 처남과 오버랩 됐고, 내가 과부처럼 의지할 곳 없는 처남의 구원을 막은 자가 아닐까 하는 마음 때문에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불의한 재판관 같은 아버지를 죽이겠다는 원한을 품은 제가 죄인이었음을 깨닫는 구속사가 해석되는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목장에 가서 원한을 풀어달라고 끊임없이 나누면 우리 구원을 위해서 이것이 마땅히 있어야 할 일임을 끊임없이 가르쳐주십니다. 언젠가 말씀이, 구속사가 들리면 우리에게 구속사의 응답이 임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오늘 말씀하십니다.
셋째, 구원의 애통함으로 끈질긴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향해 '인자가 다시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8절)?' 질문하십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낙심치 말고, 믿음을 지킬 것을 당부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끈질긴 기도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하고, 택하신 자들(7절)은 자신의 죄 때문에 애통해하는 사람들, 오늘날 저와 여러분입니다.
몇 해 전, 처남댁이 두 조카를 데리고 한동안 예배에 나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처남의 별거와 이혼 소식을 들었습니다. 의지할 곳 없는 과부 같은 처남 가정이 보낸 SOS에 제가 무심했습니다. 아내는 대성통곡하면서도 낙심하지 않고 계속 연락하며 관심을 보였고, 드디어 처남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제게도 네 의뢰가 무엇이냐?는 목사님 설교를 통해 우리 가정도 불리한 상황이었을 때, 하나님은 때마다 구원의 일을 행하여 주셨고 이것을 기억하며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안위를 위한 적당한 헌신이 아니고 신실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와 낙심치 않게 되도록 끈질기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고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내 죄 때문에 애통해하는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우리가 낙심하는 이유는 진짜 구원을 위해 적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다른 곳에 헌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보다 더 큰 헌신은 없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보이신 예수님을 따라 구원을 위한 애통함으로 끈질긴 기도와 낙심치 않는 믿음을 보이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