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왕하 18:1~8
개혁과 형통이란 말은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개혁을 하면 보통 많은 반대와 저항에 부딪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혁자들은 고난을 통과하게 되는데, 마르틴 루터도 여러 고난을 겪었지만 결국 복음이 승리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히스기야도 유다 역사상 가장 과감한 종교개혁을 단행했는데, 성경은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했다'고 기록합니다. 히스기야가 개혁을 하면서도 형통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믿음의 어머니가 중요합니다.
히스기야의 어머니 이름은 아비야를 줄인 아비로 여호와는 내 아버지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그 아버지 스가리야는 여호와는 기억하신다라는 뜻으로 믿는 집안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 왕들보다 더 악을 행한 아하스가 그래도 신결혼을 했습니다. 아하스는 자녀가 우상이니 자식을 위하는 우상으로 다른 자녀를 불 가운데 지나가게 하며 가문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몰렉 우상을 섬기며 자녀를 위한다고 자녀를 죽이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닌데, 자기 열심이 강해 누구 말도 듣지 않으니 그를 말릴 자가 없습니다. 히스기야는 이런 무섭고 잔인한 아버지 밑에서 악의 평범성으로 자랄 수 있었지만, 아버지를 분별하고 눈물 흘려 기도한 어머니 덕분에 상처와 원망 슬픔 속에 빠지지 않고 나라를 회복시킬 수 있었습니다. 열왕기 저자의 관심은 남유다의 왕들에게 집중되고 있는데, 아하스가 아무리 악하고 형편없어도 다윗 왕조인 남유다의 예수씨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은 쿠테타로 왕위가 바뀔 때마다 부계를 언급하지만, 남유다는 모계를 기록합니다. 유대인들은 모계만 확실하면 유대인으로 쳐줍니다. 히스기야는 어머니 믿음으로 여호와께서 강하게 하셨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다는 이름처럼 개혁을 할 수 있는 아들로 준비되었습니다. 악한 부친 밑에서 성군이 나오고 최고의 성군 히스기야 밑에서 가장 악한 왕 므낫세가 나오는 구조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믿음의 원리를 보여줍니다. 물론 성군 밑에 성군, 악한 왕 밑에 악한 왕도 나오는 네 가지 모델이 골고루 존재하지만, 고정관념을 버리고 오직 믿음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믿음을 가지면 여호와께서 강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둘째, 뿌리 깊은 우상을 제거해야 합니다.
히스기야가 다윗처럼 정직히 행한 일은 산당을 제거하고 주상을 깨트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산당 자체를 제거하고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까지 박살 내서 놋 조각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이렇게 대대로 내려오는 뿌리 깊은 우상을 제거한 것을 하나님은 주목해서 보십니다. 우리도 개인마다 가정마다 뿌리 깊은 우상이 다 있는데, 습관처럼 익숙하고 중독된 것을 제거하고 깨트리고 찢고 부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중독을 끊어내는 통로는 목장밖에 없습니다. 자기의 악함은 죄인들의 공동체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먼저 공동체에서 오픈하며 닫혔던 마음들을 여는 것이 성전의 문을 수리하는 첫걸음입니다.
셋째, 여호와를 의지하고 연합하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수천 년 동안 이어진 뿌리 깊은 우상숭배를 제거하는 것은 아무리 권력이 대단한 왕이라고 해도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제사장 레위부터 모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만 의지했는데, 자기편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딱 달라붙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문제 하나 생기면 저마다 구원자를 찾아 헤매다 헛된 수고로 끝나는데, 두렵고 불안하고 염려하는 지금 상황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떠나보내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 연합한 사람은 계명을 지키고 말씀대로 하고자 애를 씁니다. 그래서 말씀과 공동체를 귀하게 여깁니다. 형통은 구원 때문에 지혜롭고 통찰력이 있고 가르치다라는 말인데, 히스기야는 형통의 복을 받아 국내적으로는 종교개혁에 성공하고 국외적으로는 번영했습니다. 여러분, 형통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시고 성령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적용해 주시는 구원의 복입니다. 여러분도 어디로 가든 형통한 이 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공동체 고백은 어제 새벽 설교를 하신 권사님의 고백입니다.
양육 교사를 통해 큐티는 성경을 읽는 것임을 깨닫고 그때부터 날마다 큐티를 했습니다. 고난이 많았지만, 휘문 성전에 온 날부터 눈물을 흘리며 설렘으로 예배드렸습니다. 예배와 말씀이 너무 좋으니까 큐티 본문을 셀 수 없이 읽었고, 그러다 보니 내가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읽어가며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의 거울로 실체를 보기 시작하니까 주님은 고난으로 말을 걸기 시작했고, 외로워서 한 불신 결혼과 이혼과 재결합까지 허무한 인생이 해석되기 시작했습니다. 공동체에 와서 믿음으로 재결합했지만, 남편의 폭력과 딸의 조현병 아들의 가출로 힘든 상황에도 말씀이 너무 좋아 기쁘고 설렜고, 하나님이 내 아버지인데 내가 맞아 죽으면 가만 계실까! 하며 고난 뒤에 감춰진 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고난으로 변장하고 나타나신 예수님이 저 아이가 나를 못 알아보면 어떻게 하나, 지금 당하는 고난이 다가 아닌데. 하시며 저보다 더 마음 졸이셨을 주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고비마다 말씀을 깨달으니, 주님이 용케 알아냈구나 하면서 기뻐하셨고, 온 우주가 나를 돌보고 있는 것 같아 기뻤습니다. 여러분,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여호와를 의지하고 연합하여 딱풀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함께하시니까 어디로 가든지 형통합니다.
여러분,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의 인생은 믿음의 어머니가 중요합니다. 믿음의 어머니 때문에 뿌리 깊은 우상을 제거합니다. 힘든 상황을 날마다 여호와를 의지하고 딱풀 성도로 연합하며 갈 때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