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의뢰가 무엇이냐?]
왕하 18:9~19
3월 1일은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하여 독립 만세운동을 일으킨 지 106주년을 맞습니다. 그 당시 크리스천이 1.6% 불과했지만, 민족 대표 33인 중 크리스천이 16명이나 되었습니다. 게다가 만세운동의 75%가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났습니다. 그 후 26년 뒤에 광복이 되었으니 3.1 만세운동은 실패라고 말하지만 성공한 운동이었습니다. 이것을 성경적 관점으로 해석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주신 고난도 축복도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히스기야에게 닥친 사건을 보면서, 우리가 진정으로 의뢰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내게 유리한 상황이 아닙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침략을 받은 사건이 다시 한번 기록됩니다. 그런데 그 시점이 호세아 7년이 아니고, 히스기야 4년입니다. 이것은 사마리아 함락 사건을 남유다 히스기야의 상황에서 보자는 것이며 여러분들의 모든 사건을 믿음의 관점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는 구속사적 의미입니다. 아버지 아하스는 하나님의 성전에 앗수르식 제사를 드리며, 자기 아들을 우상에게 제물로 불살라 바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조공을 바치던 북이스라엘이 앗수르 심기를 건드렸다가 잔인한 최후를 맞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 덕에 믿음으로 자란 히스기야는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았음을 알고 아하스가 죽자 강력한 종교개혁을 단행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께만 연합하니 하나님도 히스기야와 함께하셔서 그 모든 개혁에 성공하여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역사상 가장 유명한 왕 다윗이 성공의 정점에 있던 때에 끔찍하고 수치스러운 간통죄를 저지릅니다. 인간은 자기에게 유리한 상황에 놓이면 누구라도 예외가 없다는 것입니다. 맹자는 성선설,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합니다. 맹자는 사람이 착하니 덕과 인의로, 순자는 사람이 악하니 교화를 위해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인의 의미가 아닙니다. 누구나 노력해서 이상적인 인간상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인본적인 사상입니다. 그러나 우리 본성에 맞아 더 옳게 보이고, 멋져 보이고, 깨어있는 것으로 보여 이런 사상에 끌립니다. 히스기야도 예외가 될 수 없었습니다. 형통하는 축복이 최고조에 달했던 그때 앗수르가 쳐들어옵니다. 인본적으로 생각하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연합했는데 너무 억울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유리한 이 상황이 내 노력이기에 대접받아 마땅한 존재라라고 여기며 하나님보다는 내게 유리한 상황 자체를 더 의뢰하는 태도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복이고 인본주의입니다.
둘째, 내 힘도 아닙니다.
히스기야는 최선을 다해 수비 태세를 갖춥니다. 그러나 당시 세계 최강 앗수르 군대 앞에서 그런 노력은 의미가 없었습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충고했었지만, 앗수르 군이 삽시간에 예루살렘 방어의 마지노선이었던 라기스를 점령하니 히스기야는 반 앗수르 정책을 편 것을 잘못했다고 항복문서를 전합니다. 요구조건을 들어준다며 돈의 힘으로 망국을 막을 수 있기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는 성전과 왕궁 곳간을 다 털고 성전 문의 금과 기둥에 입힌 금까지 전부 벗겨 바칩니다. 이 문은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의 상징이자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연합하기로 다짐한 결단이었는데, 돈이라는 가치 앞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게 됩니다. 믿음이 있으나 없으나 정말로 모든 것의 끝에는 돈이 있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의뢰할 수 있는 모든 힘이 앗수르 앞에서는 전적으로 무력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세속사로 보면 해석할 수가 없어 억울해서 살 수가 없는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인본주의 사상의 끝은 죽음이고 허무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구원이기에 인생이 구속사라는 것을 믿는 사람은 자신이 구원이 필요한 죄인임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구속사적인 고백은 '주님이 저보다 옳으십니다. 당신이 나보다 옳도다.'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의뢰는 내 건강, 성품, 지식, 학벌, 지위, 재산, 인맥, 명예, 권력, 인기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고난은 이 구속사적인 신앙고백을 받아내시려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입니다.
셋째, 오직 이 의뢰, 즉 하나님뿐입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앗수르의 대군은 히스기야 왕을 부릅니다. 이에 히스기야는 3명의 신하를 보냅니다. 그러자 앗수르를 대표해서 랍사게가 그들에게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말하라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네가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고 말합니다. 랍사게는 히스기야가 무엇인가를 의뢰하는 것은 알겠는데, 그것이 뭔지 모르니 이 의뢰라고 합니다. 히스기야의 중심에는 다른 것보다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의뢰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잠깐 의뢰가 될 수 있지만,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의뢰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나를 배신하고 떠나도, 신실하신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1919년 4월 11일 발표한 임시선언문에 '우리는 조국 조선의 정치적 민족적 자주독립만이 아니라 신국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려 하였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해주었고, 하나님을 의뢰하니까 이런 위대한 선언을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일본 침략이 고난이 되어 이 나라가 예수 믿는 나라가 되기를 선언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이 고난으로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일본이 수고한 것이고, 그래서 불쌍히 여기게 되는 것이 바로 구속사인 줄 믿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면 또 친일파 아냐? 그럽니다. 그래서 구속사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전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진정한 의뢰는 첫째 내게 유리한 상황이 아닙니다. 둘째, 내 힘도 아닙니다. 셋째 이 의뢰, 즉 하나님뿐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한 시간도 견딜 수 없고, 살 수없는 듯한 환난을 겪으셨습니까? 하나님은 절대로 떠나지 않으시고 언제나 우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지금 당한 환난은 우리의 진정한 의뢰가 오직 하나님뿐임을 깨닫게 하는 사건입니다. '네 의뢰가 무엇이냐?'라는 사건을 통해 주님이 물으시는 답에,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응답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