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어 치게하셨더라]
왕하 15:27~38
2024년 한 해 거주할 처소를 세웁시다.를 표어로 힘차게 달려왔습니다. 지난 일 년간 여러분들을 찾아왔던 손님 가운데 기억에 남는 분이 계십니까? 반갑고 감사한 분도 있지만 불청객도 있습니다. 오늘 북이스라엘 왕 베가와 남유다 왕 요담 두 사람은 모두 인생의 불청객을 맞이합니다. 오늘은 여호와께서 보내어 치게 하시는 심판에 대해서 함께 생각하겠습니다.
첫째, 내 멋대로 살면 불청객처럼 옵니다.
베가는 옳고 그름이 매우 강해 므나헴이 죽고 약한 아들 브가히야가 왕이 되자 2년 만에 그를 죽이고 스스로 북이스라엘 왕이 되었습니다. 베가가 왕이 되자 '므나헴 왕조는 가짜다! 이스라엘 왕조에 오를 자격이 없다!'라고 주장하며 므나헴 왕조 12년을 자신의 통치 역사로 편입하였습니다. 그래서 베가의 통치가 20년이 되었습니다. 역사를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이용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베가가 추진한 정책이 반 앗수르 외교로 이스라엘과 철천지원수인 아람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베가는 경호 대장을 할 만큼 겉으로는 너무 믿음직한 사람이었지만 이상한 역사의식과 명분에 사로잡혀 제멋대로 앗수르에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앗수르 군대에 의해 북쪽 지역인 납달리 영토를 전부 빼앗기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에 잡혀갔습니다. 북이스라엘에 보낸 불청객 앗수르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남유다는 하나님이 보내셨다고 합니다. 똑같이 전쟁했는데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이고, 남유다의 결론은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왜죠? 북이스라엘 모든 열왕들이 한결같이 여로보암의 길을 따르고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했기에 내 멋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사로잡히고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둘째, 좋은 조건이라도 막을 수 없습니다.
베가의 반 앗수르 정책으로 납달리 영토를 상실하고 거기 살던 사람도 다 잡혀가자,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반역해서 베가를 쳐서 죽이고 자신이 왕위에 오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봐야 하는데 인간의 생각으로 개혁을 외치면서 자기 실체를 보지 못하고 자기 합리화의 반역을 지겹게 계속 반복하니 멸망의 문 앞에 서게 됩니다.
남유다에서는 웃시야가 인생 마지막 14년을 별궁에 격리되어서 나병환자로 살았고 그의 아들 요담이 대신 왕좌를 지켰습니다.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으며 좋은 사람으로 잘 자란 요담은 다윗의 자손답게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는 정직히 행하였으나입니다. 좋은 조건이면 반드시 좋은 사람일 것이고, 그러면 반드시 잘 돼야 한다는 게 우리 고정관념인데 이것을 뒤엎는 반전이 있습니다. 인생은 끝까지 가봐야 압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어 치게 하시는 심판은 우리가 가진 조건으로는 결코 막을 수 없습니다.
셋째, 그러나 다시 회개로 부르시는 사랑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요담은 정말 흠잡을 게 하나 없이 좋은 조건, 정직한 행실, 게다가 성공까지 모든 걸 다 갖춘 사람이었지만 오직 산당은 제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건축왕으로 성전 건축에 힘을 썼지만, 성전에는 들어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는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는 것이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아버지가 성전에서 나병에 걸린 심판을 해석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나병으로 쳐서라도 아버지를 돌이키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하는데, 그날 거기서 받은 상처에 갇혀서 우리가 뭘 잘못했냐? 이럽니다. 왕이 그러니 백성도 자연스럽게 예배를 소홀히 하게 되었고, 여전히 부패한 상태에 머물렀습니다. 우리는 안 믿는 자에게는 도덕과 윤리로 본을 보여야 하고, 믿는 자에게는 내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 말씀으로 양육을 행해야 합니다. 차차 될 거야! 크면 되겠지! 그러면 안 됩니다. 베가에게는 앗수르왕 디글랏 빌레셀이 불청객으로 왔지만, 요담에게는 동맹 맺은 이스라엘 왕 베가와 아람 왕 르신이라는 불청객을 여호와께서 보내어 치게 하셨습니다. 이는 재수 없게 온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요담에게, 유다 백성에게 보내신 사납게 때리는 손님입니다. 왜 이런 무서운 불청객을 보내실까요? 그리고 그때 보내신다고 하시는데 그때는 언제일까요?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께 물으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는 그때, 그러면서도 그 죄책감을 좋은 조건과 정직한 선행으로 가리기 바쁜 그때,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불청객을 보내어 치게 하십니다. 망하는 사건이 아니라 구원의 사건이니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쳐서 깨우시는 사건임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 스스로 살려고 하지 않고, 살 수도 없으니까, 하나님이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무서운 불청객 같은 사건을 보내어 치게 하십니다. 택자의 특권인데 안 들으면 심판으로 끝납니다. 2025년도에도 보내어 치게 하셨더라의 사건은 계속 올 테지만, 나를 가장 잘 아시고 가장 사랑하시는 주님이 보내셨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영육 간에 더욱 성숙하고 강건해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주 공동체 고백은 오신 지 얼마 안 된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아내가 바람난 것을 상상만 해도 못 참겠고 화가 나는데, 나 때문에 수고하는 거라는 생각이 드니 화가 가라앉았고 아내가 만에 하나 돌아온다면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아내가 나보다 옳고 나를 위해 수고했다는 고백 하나밖에 없다고 합니다. 사랑부 봉사도 열심히 하시는데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6살 자폐아를 한 시간 반만 봐도 이렇게 힘든데 가족은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며 오히려 많이 배우고 은혜를 받고 온다고 합니다. 살아난 사람들이 있으면 인생의 목적이 구원이니까 그렇게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습니다. 집사님께서 잘 깨닫고 회개하시니까 여호와께서 보내어 치신 사건이고 구원으로 연결되니까 잘 섬기고 계십니다. 바로 이것이 구원입니다.
여러분, 모든 것이 일원론인 줄 믿고 어떤 일에도 놀라지 말고 자신이 회개하는 것이, 회개케 하는 것이 구원으로 인도되는 지름길인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